소재 다양화 추세 속 쏠림 현상 우려도

드디어 한국에도 '장르 드라마' 시대가 열리는가.

그동안 국내에는 제대로 된 장르 드라마가 없었다. 의학드라마는 병원을 무대로한 사랑이야기, 법조드라마는 법정을 무대로 한 사랑이야기였다.

그만큼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한류 열풍'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사랑이라는 한정된 소재에 집착해 왔다. 다른 종류가 있다면 사극이나 주부층을 위한 아침ㆍ주말연속극이 전부이다.

시청자들은 점차 똑같은 소재가 반복되는 드라마를 멀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방송사들과 외주제작사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소재의 드라마들을 준비하고 있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 장르 드라마 '봇물'

일단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의학드라마이다. 현재 방송 중인 KBS 2TV 월화드라마 '구름계단'은 '실낙원'의 저자인 와타나베 준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내년 초 MBC에서 방송 예정인 '하얀 거탑' 역시 일본 작가 야마자키 도요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안판석 PD가 준비 중인 '하얀 거탑'은 일본에서 78년과 2003년 두 번에 걸쳐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다모'와 '패션 70s'의 이재규 PD는 '옥탑방 고양이'의 민효정 작가와 함께 의학드라마 '이발사'(가제)를 준비중이다. SBS도 내년 초 '굳세어라 금순아'의 이정선 작가가 집필하는 의학드라마를 방송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94년 MBC에서 방송돼 큰 인기를 모았던 '종합병원'에 이은 '종합병원2'도 관심을 모은다. 당시 대본을 맡았던 최완규 작가가 소속된 외주제작사 에이스토리는 1년여 동안 '종합병원2'를 준비한 끝에 내년 봄 방송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CSI 과학수사대' 류의 수사물도 시도되기 시작했다. 현재 KBS 2TV에서 4부작 '특수수사일지:1호관 사건'이 방송 중이며, 옐로우필름은 내년 방영을 목표로 설경구ㆍ손예진ㆍ차인표 등이 출연하는 범죄 수사 드라마 '에이전트 제로'를 사전 제작한다.

그 외 다음달 방송되는 하지원 주연의 KBS 2TV '황진이'와 김희선ㆍ박지윤이 캐스팅된 '해어화(解語花)'도 조선시대 기생이라는 새로운 소재의 드라마들이다.

◇ 왜 장르 드라마인가

이처럼 장르 드라마가 활발히 제작되는 것은 소재의 한계로 인한 차별화의 필요성 때문이다. 뻔한 '사랑놀음'에 시청자들이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에 의존한 트렌디 드라마들이 외면당하고 있으며 수많은 드라마 기획안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방송가에서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런 기류 속에서 장르 드라마들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위기에 처한 한국 드라마가 그 돌파구로 '장르'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의학드라마 등 장르물의 제작은 시청률 면에서도 효과적이다. 국내 사례를 봐도 '종합병원' '의가형제' '허준' '동의보감' 대부분의 의학 관련 드라마들은 성공적이었다.

MBC 드라마국장 출신인 배우학교 한별의 김승수 교장은 "최근 크게 성공한 미니시리즈가 없고 연속극도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면서 "드라마가 양은 많아졌으나 정형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한 장르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출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장은 이어 "특히 의학드라마는 삶에 대한 인간의 본능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신뢰성이 더해져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에이스토리의 이상백 대표는 "의학이나 범죄물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고 이는 시청률에도 좋은 아이템이 된다"면서 "해외시장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고유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 쏠림 현상은 '우려'

분명 장르 드라마의 출현은 드라마의 다양성 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갑자기 같은 장르의 드라마들이 쏟아져나오는 현상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새로운 소재를 내세운 의학드라마가 트렌디 드라마만큼 많다면 그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하나의 유행처럼 붐을 타고 치밀한 준비작업 없이 제작에 뛰어든다면 드라마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물론 '의학드라마'라는 타이틀을 건 작품 중에도 전문적인 의료 지식을 다루는 작품이 있는 반면 인간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든 전문적인 내용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이상백 대표는 "깊숙하게 연구를 하지 않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전문성 없이 다룬다면 결국 다시 멜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장르물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멜로물만을 선호하는 현상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국 김남원 부국장은 "현재로서는 'ER'과 같은 본격적인 장르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보다는 장르 드라마에 대한 모색이 이뤄지고 있는 차원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분명 한가지 장르가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것은 제작자나 시청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닐 것"이라며 "외주제작사가 많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는데 자연스럽게 조절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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