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작이나 외모 관련 이미지 등 스타에게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훈장'이자 '짐'이다. 무명에서 단숨에 스타가 되면서 꼬리표를 달게 됐지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그 꼬리표를 잘라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들은 자신에게 달라붙은 '○○ 영화의 주인공' '코믹배우' '섹시 스타'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모 배우는 기사나 인터뷰에서 자신이 출연한 특정 영화나 장르에 대한 언급을 피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탤런트 한은정 앞에는 늘 '섹시 스타'와 '도회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코카콜라 CF의 도발적인 분위기와 SBS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에서의 세련된 이미지가 뒤섞이면서 상승작용을 한 결과다.

그는 최근 몇년 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MBC '남자의 향기'에서 청순 가련형 캐릭터를 소화했고, KBS '풀하우스'에서는 요조숙녀 이미지에 도전했다.

이처럼 새로운 이미지를 가꾸려는 꾸준한 노력이 최근 빛을 봤다. 이달 초 종영한 KBS 1TV 드라마 '서울 1945'(극본 이한호ㆍ정성희, 연출 윤창범ㆍ유현기)에서 일제하부터 한국전쟁기까지 관통한 격동의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간 김해경 역을 소화하면서다.

드라마에서처럼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그는 "예전의 섹시 이미지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이 드라마를 통해 도시적인 이미지와 김해경 역 같은 캐릭터 등 양면적인 연기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또 "이 드라마를 하면서 시청자들이 나를 연기자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가 맡은 김해경은 일제하에서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좌익 쪽의 최운혁과 우익 쪽 이동우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해방전후 혼란기 이념의 틈바구니 속에서 사랑을 가꿔가는 인물로 간첩활동 혐의로 한국전쟁 직전 총살된 실존인물 김수임이 모티브다.

무난하게 소화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사실 한은정은 극초반 '캐스팅 논란'에 휩싸였다. 화려한 이미지의 한은정이 김해경에 맞지 않는다는 네티즌의 지적이었다.

"그런 산을 넘기가 쉽지 않았어요. 논란이 생길수록 드라마에서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각오가 생겼죠. 연기자가 배역을 잘 소화하면 논란이 묻힐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논란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잦아지기 시작했죠."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캐릭터가 흔들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운혁을 사랑하는 듯 하지만 동시에 이동우에게도 마음을 주는 듯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동우에 대한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연민이었을 것"이라면서 "드라마가 짧은 시간에 역사와 사랑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느라 김해경의 마음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이념에 몸을 바치는 최운혁 보다는 따뜻한 마음의 이동우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최운혁과 함께 산다면 내가 힘들고 외로울 것 같다. 수시로 북한에 넘어가 1~2년씩 있다가 내려 오면 어떻게 사냐"며 "내 여자를 지켜주면서 최고로 생각하는 남자가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앞으로 더욱 선이 굵고 깊은 연기를 하고 싶다"며 "작품을 선택할 때도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배역보다는 나를 한 발 발돋움시킬 수 있는 배역을 찾게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 1945'를 통해 소탈한 연기에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일까. 그는 화장기 없는 얼굴 그대로 스튜디오 사진 촬영에까지 응했다. 일반 연예인으로서는 좀처럼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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