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키워드-퀴즈 프로그램] 스포츠한국 기자 퀴즈쇼 체험담

잊을수 없는 '삑~' 부저의 손맛
[엔키워드-퀴즈 프로그램] 스포츠한국 기자 퀴즈쇼 체험담

TV에 퀴즈 프로그램이 넘쳐 나고 있다. 퀴즈 자체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물론, 예능 및 교양 프로그램에도 퀴즈 포맷을 도입한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의 주요 요소인 '인포테인먼트'(인포메이션+엔터테인먼트)의 총아로 부각된 퀴즈 프로그램을 빼놓고는 TV를 논하기 힘들 정도다.

퀴즈 프로그램의 핵심은 지식 겨루기와 팽팽한 긴장감이다.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시청자들에게 교양과 오락적 재미를 동시에 주는 퀴즈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담았다.

 • 상금 커지고 흥미거리 다양
 • '바보상자' 오명 벗긴 일등공신
 • 참을수 없는 '짠~' 반전의 즐거움
 • '인생역전' 꿈꾸는 소시민들
 • 한가인 등 발굴 '스타탄생' 무대

출연자들의 얼굴에선 초조감 혹은 확신의 표정이 묻어난다. 초를 다투는 부저 누르기. 정답을 맞혔을 때 전해져오는 쾌감, 그리고 오답의 아쉬움. 그 사이에서 출연자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백문은 불어일견(百聞은 不語一見)’. 본지 이인경 기자가 지난 2003년 1월 ‘백조’ 시절에 MBC ‘퀴즈가 좋다’에 출연했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 체험담은 퀴즈 프로그램의 묘미를 한껏 담아내며 독자 여러분에게 퀴즈 프로그램을 간접 경험하는 매력을 전한다.

2003년 1월 셋째주 일요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 가운데 하나다. 처음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공개적으로 대망신(?)을 당한 날이다. 당시 ‘백조’ 6개월차에 접어든 채 꼭 갖고 싶은 물건(프린터)을 사기 위해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때 가장 인기 있는 퀴즈 프로그램은 임성훈이 진행하던 MBC ‘퀴즈가 좋다’였다. 출전자가 10단계까지 모두 통과하면 상금이 무려 1,000만원이나 됐으니 ‘견물생심’이라, ‘백조’에겐 재벌 부럽지 않을 거금이었다.

‘퀴즈가 좋다’를 볼 때마다 객관식 문제 단계를 통과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때문에 출연 신청 전 ‘최소한 5단계는 통과해 프린터 살 돈은 얻겠지’라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했다. 인터넷을 통해 예심에 응모했다. 그 확신은 “거금 1,000만원이 내 손 안에 있다”는 야심으로까지 커져버렸다.

인터넷 출연 신청 인원은 매주 1,000명 이상에 달했다. 그 중 서류전형을 통과한 200여명만이 예심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져 1년 이상을 출연 신청만 하기도 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내게 유난히 순탄하게 다가왔다.

‘백조’라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출연해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서류에 적어넣었다. “꼭 우승을 해 취업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싶고,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싶다”는 게 요지였다. 평소 취업 준비를 위해 신문을 꼼꼼히 읽어 온 덕에 시사상식을 기초로 한 예심을 무난히 통과했다. 10명의 예심통과자 중 인터뷰를 통해 최종 출연자 7명 가운데 설 수 있었다.

드디어 생방송. 협찬 의상인 꽃무늬 남방과 스커트를 입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한 순간 연예인이 된 기분으로 살짝 흥분되기 시작했다. 사전 리허설을 했지만 ‘어느 쪽에서 등장해서 어느 쪽으로 퇴장하라’는 지시와 부저 누르는 요령, 진행자 임성훈이 퀴즈 사이사이 출연자에게 하는 질문과 대답을 외워 맞춰보는 것 정도였다.

시계바늘은 정확히 5시를 가리켰고 생방송이 시작됐다. 세 번째로 등장했지만 앞 출연자들이 줄줄이 일찍 탈락해 예상보다 빨리 무대에 서게 됐다. 그제서야 생방송이라는 사실이 실감나면서 순간의 긴장감이 몰려왔다.

첫 문제는 OX 퀴즈. 문제가 귀에 잘 들리지 않아 당황한 채 얼떨결에 풀었다. 다행히 정답. 두 번째 문제부터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5단계에 이르러 완전히 적응했을 때 의외의 문제를 만났다. 가장 자신없던 자연과학 분야의 문제가 주어졌다.

‘소가 트름할 때 나오는 가스는?’였다. ‘다른 사람 문제는 쉬워 보였는데 왜 내 문제만 어렵지?’라는 원망이 밀려오면서 머리 속은 이미 ‘아노미’ 상태가 됐다. 답은 메탄가스였지만 ‘찬스’까지 썼음에도 결국 ‘아황산가스’라는 오답으로 ‘대망신’을 당했다. 그 뒤 다리에 힘이 풀려 어떻게 무대에서 내려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방송의 여파는 상당히 컸다. 주위에 거의 알리지 않았는데도 방송이 끝나고 오만군데서 전화가 걸려왔다. “찬스를 쓰고도 어떻게 떨어질 수가 있냐” “화면에 얼굴 크게 잡히더라” "왜 굳이 백수라고 밝혔느냐, 정말 취업 못했냐” 등등…. 다행히 6개월 후, ‘백조’ 딱지를 뗐지만, 그 때 긴장감은 지금도 가끔 꿈에 등장하곤 한다.

인터넷 ‘다시보기’로도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얼굴 빨개지는 기억이다. 그래도 그 때 4단계까지 통과한 상금으로 결국 프린터를 샀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도 창피했던 기억인데 또 한 번 나가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는 것이다. 퀴즈도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신청해볼까?

/이인경기자 lik@sportshankook.co.kr



입력시간 : 2005-03-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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