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아가씨 '악·악·악' 3관왕

[강명석의 TV홀릭] 한 해를 돌아보며
인어아가씨 '악·악·악' 3관왕

벌써 2003년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이런 날까지도 평소와 비슷한 글을 쓰면서 어물쩡 넘어간다는 건 재미없고 지루한 일.

그래서 이번 주에는 한해동안 TV를 보면서 생각한 최고ㆍ최악에 대해 정리해볼까 한다. 그저 올 한해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읽고 웃어 넘기시길.

◈ 최악의 반전= MBC ‘인어아가씨’. 일일 드라마로는 드물게 여성의 강렬한 복수를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연장 방송과 함께 코믹 홈드라마로 바뀌더니 급기야 아리영(장서희)이 희한한 요리법을 소개하는 요리 드라마로 둔갑했고, 막판에는 ‘아리영이 유령이다!’라고 해도 될법한 이상한 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복선도, 개연성도 없는 그 반전 아닌 반전은 충격이기보다는 유머에 가까웠다. 더불어 ‘최악의 스토리’와 ‘최악의 질질 끌기’도 ‘인어아가씨’의 몫이다.

◈ 최고의 커플= MBC ‘옥탑방 고양이’의 경쾌한 동거커플 김래원-정다빈, MBC ‘조선여형사 다모’의 비극적인 삼각커플 김민준-하지원-이서진도 좋았지만, KBS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피끓는 부녀의 정을 보여준 차상두(비)-차보리(송민주)에게는 당하지 못할 듯.

그러나 이들도 ‘대장금’의 한상궁(양미경)과 장금(이영애)의 절절한 사랑을 이겨내긴 힘들다. 한상궁이 미각을 잃은 장금이에게 울부짖으며 “니가 필요해!”라고 말 하는 장면은 어떤 ‘남녀’ 연인들보다도 훨씬 강하게 시청자들의 가슴을 쥐어 뜯게 만들었다.

◈ 최고의 혈압= 요즘 SBS ‘야심만만’에서 김제동과 함께 ‘인간버전 톰과 제리 쇼’를 보여주고 있는 강호동.

자기 얼굴을 시뻘겋게 달궈가며 열과 성을 다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호동의 모습은 쇼를 보는 사람도 들뜨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방송마다 온갖 명언을 쏟아낸 김제동은 가히 ‘최고의 박학다식’이라 할만하다.

◈ 최악의 리메이크= SBS ‘왕의 여자’는 김재형 PD의 전작인 ‘여인천하’ 복사판. 시대만 달라졌을 뿐 ‘여인천하’에 나온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했고, 심지어 화면 구성, 내레이션, 캐릭터 성격까지 너무 비슷했다. 이 작품의 라이벌로 윤석호 PD가 또 한번 첫사랑 계절 이야기를 보여줬던 KBS ‘여름향기’가 있었다.

◈ 최고의 깜짝쇼= MBC ‘한뼘 드라마’가 정말 5분만 방영하고 한 회분을 끝냈을 때. 뒷통수도 이렇게 치면 좋지.

◈ 최악의 깜짝쇼= MBC에서 추석 특집으로 나이트클럽으로 설정한 세트에서 연예인들에게 섹시 댄스를 추게 했을 때. MBC가 성인방송으로 업종 변경한 줄 알았다.

◈ 최고의 스캔들= 한채영-김래원-이나영이라는 ‘환상의 삼각편대’가 출연해 ‘연애가 어떻게 변하니?’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KT CF. 정다빈이 나와 ‘옥탑방 고양이’를 패러디한 케이블TV 버전은 보셨나요?

◈ 최악의 설정= SBS ‘천국의 계단’. 새 엄마와 그의 못된 딸, 학대, 삼각관계, 의붓오빠와의 사랑, 재벌가 아들, 교통사고, 기억상실증… 더 할까?

◈ 그리고 최악의 상상=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정말 최악의 글”이라며 혀를 차는 모습 상상하기. 악! 내년에는 차악(次惡)쯤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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