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오비맥주 영등포 공장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제품들이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친근한 상호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제품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은 대표 제품군과 그 제조업체의 성장 이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스포츠한국 이승택 기자] ‘맥주하면 오비, 오비하면 맥주’80년 넘게 국내 맥주시장을 이끌어 온 오비맥주의 오랜 광고문구다. 오비는 현재 하이트와 함께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만 여전히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오비맥주는 1933년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일본 쇼와기린맥주의 자매회사로서 설립됐다. 당시 맥주 3상자 가격이 쌀 1석(144kg) 값에 맞먹을 만큼 고가였던 탓에 명동이나 무교동 등 시내 번화가에서만 일부 맥주가 유통됐다. 맥주는 해방 후에도 한 상자를 팔면 반달 치 생활비가 나올 정도로 고가품이었다.

주요 주주였던 ‘박승직 상점’의 상무 고(故) 박두병(1910~1973)이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군정청으로부터 회사 경영권을 넘겨받은 게 오비맥주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이후 1948년 동양맥주㈜로 상호를 변경하고, 1995년 3월 다시 동양맥주에서 오비맥주로 사명을 바꾸고 새 출발을 알린다.

◆ ‘랄랄라 댄스’로 대박 터트린 ‘오비라거’

오비라거는 1997년 '랄랄라 댄스'의 박중훈과 박준형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동안 소비자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오비맥주의 대표 브랜드는 ‘오비라거’와 ‘카스’다. 특히 오비라거는 1990년대 영화배우 박중훈을 모델로 기용하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깨끗한 물, 지하암반수’를 주제로 한 하이트의 광고 캠페인이 큰 성공을 거두며 수세에 몰린 오비맥주가 꺼내 든 반격 카드는 ‘랄라라 댄스’였다. 1997년 ‘투캅스’ 이후 전성기를 누리던 배우 박중훈과 당시 인기 그룹 god의 리더 박준형이 등장했다.

‘맛있는 맥주를 부르는 방법’을 메인 콘셉트로 익살스럽게 추는 랄라라 댄스는 중독성 있는 CM송과 만나 광고계의 전설이 됐다. 국민 모두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랄랄라 광고’는 당시 마카레나춤에 이어 서울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광고로 뽑힐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고, 오비라거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오비맥주가 최근 하이트진로에 맞서 새로 내놓은 야심작은 오비라거의 레트로 제품이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11월 대표 맥주 브랜드 ‘OB’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OB라거’ 뉴트로 제품을 출시했다. 신제품 ‘OB라거’는 100% 보리맥아로 만든 클래식 라거의 DNA를 그대로 계승했다. 알코올 도수를 4.6도로 낮추고 쓴 맛을 줄여 부드러운 음용감을 살렸다.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1997년 박중훈과 함께 광고에 등장했던 박준형을 다시 소환했다. 박준형은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으로 등장했던 김응수와 찰떡호흡을 맞추며, 새로워진 오비 라거의 맛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 ‘부동의 1위’ 카스

국내 맥주 브랜드 중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가 '카스'다. 오비맥주는 1999년 당시 국내 3위 업체인 카스 인수에 성공하며, 명실상부한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원래 카스는 1994년 진로와 미국 쿠어스사가 합작해 만든 진로쿠어스가 내놓은 술이다. 오비맥주가 진로쿠어스를 인수해 맛과 패키지, 이미지 등에서 쇄신을 거듭하며 국내 대표맥주로 자리잡았다.

오비맥주가 역동성을 강조해 리뉴얼한 카스 병과 캔 제품
오비맥주는 올들어 1월부터 4월까지 가정채널 매출액 기준 점유율 49.5%로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지켰다. 2위 경쟁사가 28.9%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격차다. 특히 브랜드 파워에서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카스의 브랜드별 매출액 점유율은 지난해 36%로 1위인 반면 2위 경쟁사 제품은 6.3%에 그쳤다.

오비맥주는 카스 디자인의 리뉴얼에도 나섰다. 새 디자인은 카스 고유의 푸른색 바탕에 더 커진 브랜드 로고를 대각선으로 배치했다. 젊음의 역동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카스 고유의 맛과 향에 대한 자신감을 '콜드 브루드(Cold Brewed)'로 표현했다. 콜드 부르드는 카스가 소비자에게 도달하기 전 저온 숙성과정을 거쳐 신선함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뜻한다.

◆ '카스처럼' vs '테슬라'

오비맥주가 맥주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오비맥주도 수 차례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2001년 6월 두산그룹 구조조정에 따라 인터브루가 대주주가 됐다. 이어 2009년 7월에는 글로벌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2014년 4월 AB 인베브가 오비맥주를 인수한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영원한 라이벌 하이트는 지난해 테라를 출시한 후 이른바 ‘테슬라(테라와 참이슬의 혼합주)’의 인기를 앞세워 ‘카스처럼(카스와 처음처럼 혼합주)’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오비맥주는 맥주시장 부동의 1위 ‘카스 후레시’와 ‘오비라거’를 앞세워 테라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겠다는 포석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소비 감소와 강력한 경쟁 제품에 직면한 오비맥주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맥주 명가’의 위상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비맥주가 지난해 테라에 맞서기 위해 재출시한 오비라거의 ‘오, 부드럽(Love)다’ 신규 TV 광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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