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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제품들이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친근한 상호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제품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은 대표 제품군과 그 제조업체의 성장 이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스포츠한국 이슬 기자] 한 기업의 회장이 임종 직전 회사에 남아 있는 일가 친척을 모두 해고했다. 가족 세습 경영을 막기 위해서였다. 회사에서 잘린 회장의 동생은 형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퇴직금을 너무 많이 받았다"며 이를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퇴직금 반환 소송'이었다. 제약회사 유한양행에서 실제 벌어진 이야기다.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은퇴하며 자식이 아닌 회사 임원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다. 현재 유한양행 그룹에는 창업주의 일가 친척이 단 한명도 남아 있지 않다.

  •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 정치 보복으로 받은 세무조사, '성실납세' 훈장으로 돌아오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의 투명한 경영철학과 관련된 일화들로 유명하다. 유 창업주는 1926년 일제 식민 치하에서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초기에는 미국 의약품을 수입해 판매하다 1933년 '안티푸라민'을 시작으로 국산 의약품 개발 및 판매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유한양행은 1936년 부천시에 생산공장과 제약연구소를 세우고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이 때 유일한 박사는 대한민국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했다. 유 박사는 자신이 가진 주식의 52%를 종업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유일한 창업주의 투명경영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성실 납세'다. 유 창업주는 평소 직원들에게 철저하게 세금 납부를 하도록 강조했다. 회계과 직원들은 철저하게 납부 기일을 지켜 정확하게 세금을 납부했다. 한 번은 직원의 실수로 세금 납부가 누락됐다. 세금 납부 마감일 다음날 누락 사실을 안 회계과 직원이 세무서로 달려갔지만 규정상 가산세 5%를 내야 했다.

회계과 직원이 낙담하며 회사로 돌아온 뒤 세무서에서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세무서 법인세 계장이었다. 계장은 "유한양행이 수년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거나, 납부 기일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어제부터 유한양행 세금을 신고할 칸을 미리 비워두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빈칸을 이용해 기한 내 세금 납부를 한 것으로 처리해주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일은 잘 처리됐지만 회사는 회계과 직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징계로 인해 회계과장은 해당 월의 상여금을 받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일한 창업주는 회계과장에게 상여금보다 많은 위로금을 지급했다. 실수를 했더라도, 그동안 창업주의 지침에 따라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해온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성실 납세로 인한 일화는 또 있다. 유 창업주는 평소 정경유착을 철저하게 배척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치자금을 건네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정부의 보복으로 유한양행은 국세청으로부터 수개월 간 세무조사를 받았다. 당시 유한양행은 세무조사원이 "아무리 털어도 먼지 안 난다"고 할 정도로 깨끗한 납세내역을 자랑했다.

세무조사 결과가 깨끗하자 정부는 유한양행 제조약품에 대한 조사로까지 범위를 넓혔다. 당시 유한양행은 약품 제조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분까지 고려해 원재료 성분 함량을 정확하게 맞췄다. 약품 조사결과까지 완벽하다는 것을 보고 받은 정부는 '이런 기업이라면 오히려 훈장을 줘야 한다'며 1968년 유한양행에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 기업 운영 목적이 '사회 환원'… 창업주 전 재산 기부

유일한 창업주가 기업활동을 한 이유는 '사회 환원'이었다. 유 창업주는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1952년 고려공과기술학원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는 유한중학교,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유 창업주는 시간이 되는대로 학교를 찾아 학생 교육에 힘을 쏟았다.

유일한 창업주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인 1965년 유한교육신탁기금 관리위원회를 발족하고, 자신의 주식을 전부 기부했다. 1970년에는 유한재단을 설립하고, 유언장을 통해 전 재산을 기증했다. 당시 기증한 주식은 유한양행 총 주식의 40%로 현재 가치로는 9000억원에 달한다.

유일한 창업주는 당시 7세인 손녀에게 1만 달러의 장학금을 남긴 것을 제외하고, 전 재산을 모두 사회에 기부했다. 유언장에는 해당 내용과 함께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고 남겼다.

유한양행은 1962년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처음, 국내기업 중에서는 두번째로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이 해에 미국 맥스팩토와 제휴해 화장품을 만들었고, 1970년 미국 킴벌리클라크와 합작해 유한킴벌리를 세웠다. 유한킴벌리를 세운 다음해에 국내 최초의 미용티슈인 크리넥스가 탄생한다.

유한양행은 국내 처음으로 전문경영인 제도를 이끈 곳이기도 하다. 유 창업주는 196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혈연관계가 아닌 회사 임원에게 사장직을 물려줬다. 유한양행에는 현재까지 전문경영인 제도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경영인은 내부 인사 승진이 원칙이다. 현재 유한양행의 대표이사인 이정희 사장은 1978년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현 위치에 올랐다.

유한양행은 유일한 창업주가 타계한 뒤 외국계 회사와 합작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1977년 미국 코락스와 합작투자로 유한락스를 세웠다. 1982년에는 유한사이나미드를, 1983년에는 한국얀센을 각각 세웠다. 1997년에는 서울 대방동에 본사 신사옥을 준공했다.

유한양행은 여전히 국민 생활에 밀접한 제품을 취급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계열사가 다양한 만큼 생산품목도 의약품, 생활용품, 건강기능식품, 동물약품, 화장품, 임플란트 등으로 다양하다. 대표 브랜드로는 안티푸라민, 삐콤씨, 유한 비타민씨, 유한락스 등이 있다.

유한양행은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유일한 창업주의 경영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유한양행의 주요 주주현황을 살펴보면, 최대주주는 개인이 아닌 유한재단(15.6%)으로 공익 기업에 가깝다. 전체 주주 구성도 비영리단체가 51%, 기관투자자가 33%, 개인 16%로 공익적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올해로 창립 94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은 신약 개발과 함께 '제약회사가 만드는 생활용품'이라는 콘셉트로 '유한락스'를 비롯해 표백제 '유한젠', 살충제 '해피홈' 등 꾸준히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손세정제 등 생활용품 수요가 늘면서 매출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유한양행의 사회 환원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향할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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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20/07/15 08: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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