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제품들이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친근한 상호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제품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은 대표 제품군과 그 제조업체의 성장 이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스포츠한국 이슬 기자] 한국인보다 외국인 사이에서 더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라면이 있다. 국물없는 매운 라면 '불닭볶음면'이다. 해외에서 불닭볶음면은 'samyang noodle'이라고 불릴 정도로 삼양식품의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끌어 올렸다.

삼양식품은 2012년 4월 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출시 초기에는 국내 유튜버들의 먹방 소재로 쓰이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매운맛 먹방 후기를 남기며 유명세를 탔다. 해외까지 영상이 퍼지면서 외국인들 사이에 불닭볶음면을 먹는 것이 챌린지처럼 퍼져나갔다. 불닭볶음면의 매운 맛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지옥 같은' 후기를 잇따라 올리면서 판매량은 계속 급증했다.

시간이 지나자 소비자들은 불닭볶음면을 다른 라면과 함께 끓이거나, 치즈 등의 재료와 조합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불닭볶음면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불닭볶음면 소스를 활용한 레시피가 연일 등장하자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소스만을 따로 담은 제품을 출시했다. 불닭볶음면 소스는 불티나게 팔렸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꼭 사가야 하는 리스트에는 어김없이 불닭볶음면이 들어 있고, 결국 공항 면세점에서도 소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 국내 최초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 원조 타이틀이 되레 발목

불닭볶음면은 삼양식품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다. 삼양식품은 1963년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삼양라면은 1980년대 초중반까지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80년 후반 경쟁사가 내놓은 라면에 밀리면서 결국 1위 자리를 넘겨줬다.

삼양식품은 1961년 삼양제유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 당시엔 식품회사가 아닌 식용 기름을 만드는 회사였다. 창업주 전중윤 회장은 전쟁 후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 국민들을 보면서 고민하다 일본 묘조식품에서 라면 제조기술을 원조 받아 국내 최초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하며 식품회사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삼양라면의 '원조' 타이틀은 삼양식품에 독이 됐다. 삼양식품이 삼양라면 한 제품에만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공격적으로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한 경쟁사의 공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2010년 3월 전중윤 창업주가 고령으로 물러나고, 2세인 전인장 회장이 취임했다. 전인장 회장 취임 후 회사는 더욱 어려워졌다. 무리한 외식업 진출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삼양식품은 2014년 토종 국내 수제버거 브랜드인 크라제버거를 인수했다. 이후 다양한 외식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손실만 봤다. 크라제버거는 운영 실패로 2017년 결국 파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불닭볶음면의 등장은 삼양식품에게 기적과도 같은 동아줄이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크게 흥행하며 수출액이 2015년 98억원에서 2016년 67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고, 회사는 188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불닭볶음면의 수출 흥행으로 삼양식품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 '불닭볶음면' 해외에선 없어서 못팔 정도… 폭발적 인기

불닭볶음면 흥행 이후 삼양식품은 매운라면을 계속해서 출시하고 있다.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까지 매운맛을 출시했다. 이 외에도 핵불닭볶음면, 치즈불닭볶음면, 까르보불닭볶음면 등 10종 이상의 불닭볶음면 파생상품을 출시했다.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에 올인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불닭볶음면이 멈출 줄 모르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의 수출 증가로 2020년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동기보다 29% 성장했다.

불닭볶음면은 해외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핫하다. 현재까지 불닭볶음면의 누적 판매량은 23억개인데, 이 중 절반 가량이 해외에서 팔렸다. 지난해엔 해외에서만 4억6000만개가 판매돼 국내 판매량(1억4000만개)을 크게 앞질렀다.

최근엔 중동에서도 불닭볶음면 열풍이 불고 있다. 불닭볶음면이 '할랄' 인증을 받으면서 순한 맛이 많은 중동 라면시장에 불을 지핀 것이다. 현지 식문화에 맞는 수출 전용 신제품도 내놨다. 콘불닭볶음면, 불닭김스낵 등이다. 현재 중동에서는 불닭볶음면이 가장 인기 있는 라면으로 꼽힌다.

중국인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한국마케팅협회와 소비자평가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0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의 명품 TOP 10'에 불닭볶음면이 라면 분야 1위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여전히 '파이어 누들 챌린지'가 진행 중이다. 불닭볶음면은 물론 이후로 나온 후속작을 맛보고 후기를 남기는 것이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에만 의존하던 때처럼 불닭볶음면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불닭볶음면은 출혈경쟁이 심한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에서 더 잘 팔리고 있다. 한국인에게 라면의 원조가 ‘삼양라면’이라면, 외국인에게 라면의 원조는 ‘불닭’시리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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