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제품들이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친근한 상호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제품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은 대표 제품군과 그 제조업체의 성장 이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스포츠한국 조민욱 기자] 과거 대가족 중심이었던 우리 사회는 이제 3~4인 구성원이 주축인 핵가족으로 변화했다. 최근에는 만혼과 비혼 문화의 확산으로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사회의 가구 형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나홀로 소비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혼밥족’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가정간편식 시장이 식품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는 2014년 약 1조1600억원에서 2019년 약 2조2900억원으로 5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성장했다. 2023년에는 약 3조7552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식품업계는 가정간편식 시장에 잇달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오뚜기는 이미 50여년 전 국내 가정간편식 시장 개척에 나섰다. 오뚜기가 국내 가정간편식의 원조로 불리는 배경에는 국민브랜드 반열에 오른 ‘오뚜기 카레’가 있다.

오뚜기 카레
◆ ‘3분’ 만에 국민 입맛 사로잡은 오뚜기 카레

‘오뚜기 카레’는 오뚜기의 대표 브랜드이지만 폭넓게 보면 우리나라 카레를 대표하는 제품이기도 하다. 오뚜기 카레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카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 카레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40년대다. 하지만 특유의 향신료 냄새 때문에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오뚜기 창업주인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은 카레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우리 국민의 주식이 쌀인데다, 매운 맛을 즐기는 한국인의 기호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1969년 함 명예회장이 설립한 오뚜기의 전신인 풍림상사는 국내 최초로 분말카레 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오뚜기 카레는 1970년대 들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시대 변화와 함께 제품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1981년에는 상온에서 보관하는 ‘레토르트’ 형태의 ‘3분 카레’가 등장했다. 3분 카레는 즉석에서 다양한 맛의 카레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출시 첫 해에 400만개를 웃도는 판매 기록을 세웠다.

오뚜키 카레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4년에는 건강에 좋은 강황의 함량을 늘린 ‘백세카레’를 출시했다. 또한 2009년에는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더욱 간편하게 카레를 조리할 수 있도록 ‘과립형 카레’를 선보였다. 기존의 카레 조리 방식처럼 물에 개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었다는 점에서 또 한 번의 진화를 이끌었다.

오뚜기는 품질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다양한 카레 제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경쟁사들이 잇달아 카레 신제품을 출시하며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곧이어 철수하거나 낮은 점유율을 유지하는 등 오뚜기 카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오뚜기 진라면, 진짬뽕
◆ 진라면·진짬뽕…‘진’의 진화는 어디까지

오뚜기는 1987년 청보식품을 인수하면서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라면 시장에는 경쟁사들이 일찍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라면 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회사 내부에서도 라면 사업에 대한 찬반 대립이 일었다. 하지만 오뚜기는 면 튀김용 팜유와 유지를 생산하고 분말스프에 들어가는 농산물 가공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라면 사업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이후 1988년 국물이 ‘진’한 라면이라는 의미를 담은 ‘진라면’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라면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깊고 진한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앞서 경쟁사들의 라면 제품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오뚜기는 라면 시장에 도전하고 20년이 지나도록 만년 3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오뚜기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오뚜기 정신’을 발휘하며 라면 품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2012년 라면 시장 2위에 올라서는 결실을 맺었다. 특히 진라면 순한맛은 매운 라면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라면 사업에 탄력을 받은 오뚜기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갔다. 특히 야구선수 류현진을 모델로 앞세운 진라면 광고가 큰 인기를 끌면서 진라면을 1000억원대 메가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오뚜기 라면 브랜드 ‘진’은 진라면을 필두로 성장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2015년 선보인 ‘진짬뽕’은 출시 50일 만에 판매량 1000만개를 돌파했다. 최근에는 지난 3월 선보인 ‘진비빔면’이 출시 2개월 만에 판매량 2000만개를 넘어서며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착한 기업 ‘갓뚜기’로 불리게 된 배경

오뚜기는 무언가를 치켜세울 때 표현하는 유행어 ‘갓(GOD)’을 합친 ‘갓뚜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기업은 냉철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데 가장 큰 목적을 두는 만큼 소비자들로부터 ‘착한 기업’ 이미지를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뚜기는 갓뚜기, 말그대로 착한 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창업주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의 장남인 함영준 오뚜기 회장의 상속세 납부 일화가 있다. 함 회장은 2016년 9월 선친인 함태호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주식 46만5543주를 물려받았다. 상속세만 1500억원에 달했다. 함 회장은 1500억원의 상속세를 편법 없이 5년간 분납으로 납부하겠다고 밝히면서 대중의 호감을 얻었다. 이후에도 심장병 어린이 후원, 장애인 자활을 돕는 복지재단에 300억원대 개인 주식을 기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착한 기업 이미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오뚜기 진라면은 지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동일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물가 상승을 이유로 다른 제품들이 가격을 줄줄이 올리는 가운데서 유독 진라면이 10년 넘게 동일 가격을 고수하고 있는 중심에는 ‘서민’이 있다. 라면은 서민 먹거리의 대명사다. 서민 먹거리인 라면 가격이 오르면 물가 상승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다. 진라면 가격에는 서민 가계에 부담을 주지않겠다는 오뚜기의 의지가 담겨있다. 오뚜기가 갓뚜기라는 별명을 얻게 된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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