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제품들이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친근한 상호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제품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은 대표 제품군과 그 제조업체의 성장 이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스포츠한국 이슬 기자] 2014년 겨울. ‘감자칩은 짭짤하다’는 고정관념을 깬 과자가 등장했다. 바로 허니버터칩이었다. 하지만 마트나 편의점 어디에서도 허니버터칩을 구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맛의 감자칩 열풍이 불면서 공급부족 사태가 벌어진 탓이다. 발주량이 치솟아 편의점 점주도 허니버터칩 한 봉지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 웃돈 줘도 못사는 허니버터칩… 해태도 '당황'

오픈 시간을 앞둔 대형마트 앞에는 일주일 내내 줄이 길게 늘어섰다. 대형마트에 입고되는 허니버터칩을 사기 위한 줄이었다. 1인 1봉지 구매 제한에도 매일 오픈 10분만에 물량이 완판됐다. 편의점과 규모가 작은 슈퍼마켓에는 아예 허니버터칩이 입고조차 안 됐다. 당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물건을 파는 일보다 허니버터칩을 사러 온 소비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게 일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판매가의 10배 넘는 가격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상식에 벗어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허니버터칩을 구매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허니버터칩을 출시한 해태제과는 상상치 못한 인기에 당황스러웠다. 공급을 늘려달라는 주문처와 소비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공급을 늘리긴 해야 하지만 생산을 늘릴 수는 없었다. 생산 라인을 늘리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어간다.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내릴 사안이 아니었다.

해태제과는 1여년을 지켜본 뒤 2016년 초 결국 생산 공장을 증설했다. 최근 허니버터칩의 인기는 출시 당시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인기 품목 중 하나다.

◆ 부라보콘, 태어날 때부터 떠나는 날까지 효자 노릇 '톡톡'

해태제과는 허니버터칩 외에도 탄탄한 히트상품 라인업을 자랑한다. 히트상품의 시초는 '부라보콘'이다. 1970년 해태제과는 덴마크 호이어사에서 아이스크림 시설을 도입해 대한민국 최초 아이스콘인 부라보콘을 출시했다. 부라보콘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당시는 바 형태의 빙과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제품을 사용한 고급 콘 아이스크림을 맛보려는 소비자들이 몰려 물량을 댈 수 없을 정도였다. 부라보콘은 인기를 지속하며 2001년 국내 최장수 아이스크림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2010년에는 약 40억개 이상 판매한 기록으로 한국 기네스에도 올랐다.

해태그룹이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부도 처리 됐을 때도 부라보콘은 계속 생산됐다. 경쟁사가 줄줄이 콘 아이스크림을 내놓았지만 부라보콘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2005년 해태제과가 크라운제과에 인수돼 크라운해태그룹이 됐을 때도 부라보콘은 회사를 대표하는 간판 상품이었다.

해태는 1945년 10월 창업주 박병규가 경리직원으로 일하던 나카오카 제과 남영동 공장의 생산설비를 적산 불하받아 해태제과합명회사를 설립하면서 출범했다. 이어 6.25 동란의 시련을 이겨내고 비스킷 생산에 주력하며, 1961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3500평 규모의 새 공장을 세웠다.

양평동 시대를 연 후 해태는 출시하는 제품마다 대박을 쳤다. 부라보콘을 시작으로 맛동산, 에이스, 샤브레, 누가바, 바밤바 등이 연속으로 히트를 치며 효자상품 반열에 올랐다. 1981년에는 프로야구 출범과 맞물려 출시한 '홈런볼'이 초대박을 쳤다. 해태그룹은 자타공인 국내 1위 제과기업의 자리를 공고히 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다수의 히트상품을 거느리고도 해태는 1987년 해태제과로 상호를 변경한 뒤 급속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여러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계열사 간에 진행된 무리한 자금지원과 지급보증이 화근이 됐다. 1997년 11월 결국 그룹 주력사인 해태제과가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후 해태그룹은 해체되고 해태제과만 UBS컨소시엄을 거쳐 2005년 크라운제과에 팔리면서 크라운해태제과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를 인수한 뒤 국내 제과시장 점유율을 35%까지 끌어올리며 국내 1위 제과전문 기업이 됐다. 해태-가루비, 글리코-해태 등의 합작사를 설립하고 이탈리아 정통 젤라또 기업인 빨라쪼 델 프레도 인수를 통해 글로벌 제과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크라운해태그룹에서도 대표 상품으로 사랑받으며 효자 노릇을 해오던 부라보콘은 최근 친정과의 이별을 맞았다. 해태가 허니버터칩 이후 새로운 히트작을 내지 못하면서 아이스크림 사업 부문을 빙그레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해태아이스크림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있다.

해태제과는 해태아이스크림 매각으로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고, 각종 투자를 실현해 생산효율성을 높이게 됐다. 부라보콘은 태어날 때부터 떠나는 날까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부라보콘은 친정을 떠났지만 효자 형을 이을 해태제과의 자식 농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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