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색성야(食色性也)] 대머리는 정력이 좋다?

몇 년 전 일이다. 필자의 선배가 신접살림을 꾸렸기에 집들이 겸해서 후배들과 신혼집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신혼집답게 아기자기,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선배의 집을 보며 다들 미녀와 야수의 결합이라고 덕담 아닌 덕담을 나누는 가운데 화장실 한 켠을 가득 메운 각종 발모제와 대머리 치료제 등을 발견하게 됐다.

"이것 때문에 고민이다."

이미 대학 다닐 때부터 이마가 점점 후퇴해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했던 선배의 머리! 어지간하면, 가발을 쓰든가, 차라리 확 머리를 밀어버리라고 말했지만, 요지부동! 끝까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겠다며 버티더니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뭐 여기까지만 보면, 머리숱이 적은 한 남자의 감동적인 결혼 성공기 정도로 끝날 수 있었겠지만,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너네 형수가 가발은 싫다잖아. 그래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데..."

"병원치료 받으면 머리가 자라난대?"

"확실히 효과는 있어. 근데..."

"그런데 뭐가 문젠데?"

"그게... 우리가 신혼이잖아."

"신혼이랑 대머리 치료가 무슨 상관인데?"

조심스럽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선배! 선배의 고민은 간단했다.

"머리숱이냐, 정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머리숱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던 선배, 그 선배에게 이런 고민을 안겨 준 건 선배의 주치의였다.

"에 또, 원래 대머리란 게 남성호르몬 때문에 발생하는 거거든요? 대머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호르몬을 억제해야 합니다."

"그럼, 남성호르몬만 억제하면 제 머리숱을 지킬 수 있는 겁니까?"

"지킬 순 있지만, 이게 또 부작용이 있어서..."

"머리숱만 지킨다면, 그까짓 부작용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용의가 있습니다! 기껏해야 잠이 안 온다거나, 소화가 잘 안되거나 그런 거 아닙니까?"

"그게... 좀 민감한 부작용이라... 일단 아내 되시는 분하고 잘 상의하시고, 다시 한 번 찾아오시죠?"

"예? 제 마누라랑 상의할 정도의 문젭니까?"

"그게... 정력에 관계된 문제라서..."

"!"

선배의 주치의가 처방한 대머리 치료제가 효과는 좋으나, 그 부작용(?)이 너무 심해 부부간의 합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대머리는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이 많이 생산되는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남성호르몬은 몸에 나는 성모(性毛) 발달은 촉진시키는 대신, 머리카락에는 반대로 작용한다는 논리이다. 대머리인 사람은 머리털이 없는 대신에 온몸에 털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남성호르몬이 대머리와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대머리인 사람들이 정상인 사람들에 비해 남성호르몬이 더 많은 것은 아니다. 두피의 유전자가 안드로겐과 만나면서 특정 부위의 머리털을 빠지게 할 때만 대머리가 생긴다.

간단히 말해서 대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남성호르몬이 존재해야 하고 둘째 남성호르몬에 자극받는 두피의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선배는 형수와 상의해 정력 대신 머리숱을 선택하게 됐다(실질적인 정력보다는 사회적인 정력을 선택한 것이다). 대머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민하는 남성들에게 있어서 대머리가 정력이 세다는 속설은 하나의 위안으로 다가왔겠지만 속설은 어디까지나 속설일 뿐. 다만 대머리 남성들에게 위안이 있다면 유전적으로 대머리는 우성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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