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색성야(食色性也)] 여자 없으면 술을 못 마시는 민족? (2)

공맹의 도리를 말하고 명분에 죽고 사는 성리학자들이 만든 나라 조선! 만약 이들이 평소와 같은 모습을 그대로 견지하였다면, 조선에서 기녀는 추방당했을 것이다.

"걔들 생계도 걱정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걔들이 없으면 군바리들은 어떻게 하냐?"

"왜 갑자기 군바리들을 걱정하는 거야?"

"생각해 봐라. 변방에 있는 군인들의 근무환경이 얼마나 열약하냐? 그나마 마누라라도 있으면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쌓인 것도 풀 텐데... 하긴, 요즘은 마누라 있어도 단신 부임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걔들 여자라곤 구경도 못한다고. 전방 병사들의 사기함양 차원에서 기녀들은 필요하다고."

"그렇겠지? 성기발랄한 나이에 전방에 끌려갔으니 치마만 둘러도 눈이 휙휙 돌아간다니까. 걔들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않으면, 반가의 여식들이 성폭행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어. 요컨대 필요악이다, 이거지. 건전한 여성들의 정조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기녀는 필요해."

예와 도리를 따지던 조선시대에 이런 이유로 성매매를 허용하다니, 심하게 말하면 종군위안부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이들이 말했던 전방의 병사들이란 양반 출신들로 군무에 종사하는 이들을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려시대의 기녀와 조선시대의 기녀는 그 '신분'부터가 달랐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기녀들을 그대로 이어받겠다고 결정한 조선은 이들 기녀를 국가 소속의 공무원(?)으로 관리 감독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기녀들을 관리, 교육시키는 관청이 장악원(掌樂院)이란 곳인데, 각 지방마다 기녀를 뽑아서 서울로 올려보낸 것이었다.

문제는 이 기녀들의 숫자가 폭증하자 기녀들도 다시 일패, 이패, 삼패로 세분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일패(一牌)는 말 그대로 기생을 말하는 것인데, 사대부를 상대로 연회에서 춤도 추고 접객도 하는 무리이다.

이패(二牌)는 은근자(殷勤者)라 불리는데, 말 그대로 은밀하게 매춘을 하는 기생들이었다. 기생이긴 기생이지만 좀 수준이 떨어지는 부류였다. 마지막 삼패(三牌)는 탑앙모리라고 불렸는데, 매춘을 주업으로 하는 기생들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삼패의 경우 접객행위를 할 때 함부로 일패가 부르는 노래나 소리를 할 수 없다고 규제되어 있었다. 이들이 부를 수 있는 건 잡가뿐이었다. 보면 아시겠지만, 이들은 술 마시며 노래 불러주고, 그러다 흥이 돋아 몸을 파는 케이스로 매춘을 했던 것이다.

"어디 보도방 나가는 것들이 텐프로 노는 곳에 얼굴을 들이밀어?"

"다같이 웃음 파는 애들이라도 급이 달라, 급이!"

확실히 급이 다르고, 노는 물이 다른 건 사실이었다. 중앙의 기녀들은 경기(京妓), 그 나머지 지방의 기녀들은 지방기라 불렸는데, 경기는 주로 궁중 연회의 가무가 주업이었고, 지방기는 수청이라 하는 벼슬아치와의 동침을 주업으로 하였다.

"네들이 몸 파는 애들이라면, 우리는 연예계 종사자라고! 엄연한 연예인이라구!"

경기로서의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어차피 몸을 파는 건 사실이었다. 다만, 파는 사람의 수준이 달랐을 뿐이다. 지방기가 주로 수령이나 하급관리들을 상대한 반면, 경기들은 중앙의 고급관리들이나 왕실종친들을 상대했던 것이다.

성매매를 이제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그걸 다시 '급수'별로 나눠서 차등화했던 조선!

예와 도리를 따지는 조선의 성문화, 따지고 보면 공창제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정신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노래방 도우미를 찾는 작금의 우리나라를 보면, 옛 전통을 그대로 계승했다고 좋아해야 하는 것일까? 음주가무라면 다른 민족에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이제 좀 건전한 방향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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