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색성야(食色性也)] 쫓기는 스파이들은 왜 키스를 하는 걸까?
"섹스는 개인적인 일이야!"… 게쉬타포들 봐도 못본척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첩보원들이 적국에 잠입해 스파이 활동을 하다 발각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그래야 영화가 진행되지 않는가?). 이 장면 다음이 바로 영화의 본편이라 할 수 있는 첩보원과 공안요원들의 쫓고쫓기는 필사의 추격전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첩보원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쫓겨 들어간다. 적진 한가운데 홀로 떨어진 첩보원으로서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럴 때 마지막 히든카드로 등장하는 것이 주변의 여자를 붙잡고 으슥한 곳에서 키스를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쫓아가던 공안요원들도 이들 커플에 대해서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달려간다.

"저것들 동태눈 아냐? 뻔히 옆에 있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잖아. 쟤들도 쫓기는 애가 저렇게 대담하게 키스하고 있을 줄 모르는 거지."

"영화니까 가능한 설정이야. 실제로 저랬다간 바로 총 맞아 죽을 걸?"

첩보원의 대명사인 007을 탄생시킨 작가, 이언 플레밍(Ian Lancaster Fleming)의 이력을 잠깐 살펴보면 이런 '회피 장면'이 뻥이 아님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초창기 007(이안 플레밍은 총 14편의 007시리즈를 썼다)에 등장하는 수많은 본드걸들은 이런 식의 '뻔한' 회피 장면을 연출했고, 제임스 본드는 언제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소설이니까 그런 거 아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는 이언 플레밍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언 플레밍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정보국에서 암호명 17F로 활동을 했다. 그렇기에 위기 장면에서 여자랑 붙잡고 키스하는 장면을 넣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스파이들과 연합군 측 조종사들이 이 방법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야, 섹스 같은 건 개인적인 일 아니냐?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인데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쪽팔린 짓이야. 다른 사람이 바람이 피든, 사창가를 가든, 마누라랑 처제 불러놓고 쓰리썸을 하든 그건 걔들 사정이잖아."

"글치,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봐도 못본 척하고,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해. 괜히 하는 애들도 민망해지고, 보는 우리도 민망해지니까. 그런 경우가 눈앞에 벌어져도 쌩 까버려야 해."

이것이 당시 독일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독일군이나 게쉬타포들도 이런 독일민족의 상식을 교육받은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레지스탕스나 연합국 측 스파이들의 본거지를 급습하는 와중에도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녀를 보면, 못본 척 지나쳤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게쉬타포가 들이닥치는 기색이 느껴지면, 스파이들과 레지스탕스들은 방문을 걸어잠그고는 남녀가 섹스를 하거나 섹스를 하는 연기를 했다.

"르네! 살려면 우린 당장 섹스를 해야 하오!"

"아니, 그래도… 갑자기 이러면…"

"게쉬타포에 끌려가 고문 당하는 것보다는 낫잖소!"

"그럼, 하는 척만…"

"게쉬타포가 어떤 애들인데, 연기라니! 실제로 해도 될까 말까 한데…"

소위 말하는 '닫힌 문'이라는 말이 이렇게 나왔다. 닫혀 있는 문에서 남녀가 섹스를 하는 느낌이 나면 게쉬타포들도 못본 척 그냥 넘어갔던 것이다. 거짓말 같겠지만, 사생활은 지켜줘야 한다는 수 십년간의 '독일식 교육'과 설마 이 와중에 섹스를 할까 하는 생각이 겹치면서 수많은 스파이들은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첩보물의 뻔한 클리셰(Cliche : 진부한 표현)인 것처럼 보이는 추격전 사이의 애정씬… 그러나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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