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퍼슨 "혼외정사는 죄가 안된다니까! 나랑 한번만 하자 응?"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가졌던 친구 아내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전 회에 설명을 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부적절한 관계는 이후 백악관에 입성할 대통령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했다. 제3대 미국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경우는 워싱턴보다 다종다양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는데….

"워커 부인…, 아니 베치…, 아니 베치 워커! 난 당신밖에 없어. 나랑 같이 찐하게 육체의 대화를 나눠 보면 안 될까?"

"저기… 제퍼슨, 당신 우리 남편이랑 죽고 못 사는 친구잖아?"

"친구니까 그렇지! 불알 친구끼리는 콩 한 쪽도 나눠 먹잖아? 좋은 건 서로 나눠 쓰고 함께 하고, 그게 진정한 친구 아니겠어?"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했고 국무장관을 거쳐 미국 3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제퍼슨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잭 워커의 아내인 베치 워커에 반해 수시로 애정공세를 펼쳤다. 한 번은 잭이 사업상의 이유로 출장을 떠나자 곧장 베치를 찾아갔다.

"혼외정사라는 게 죄가 될 거 같지? 안 된다니까! 요즘 애인 없는 유부녀가 어딨어? 그러니까 나랑 한번만 하자 응?"

제퍼슨에게 다행(?)이라고 한다면, 그의 아내였던 마사 웨일즈 스켈턴 제퍼슨(Martha Wayles Skelton Jefferson)이 일찍 죽었다는 점일 것이다. 제퍼슨과 결혼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자기야, 헉헉…. 나… 나 죽으면…, 재혼… 재혼하면 안 돼. 알았지?"

"그럼, 나 그냥 독수공방으로 혼자 살게. 됐지? 그럼 편히 가 있어. 나중에 천천히 따라갈 테니까. 알았지?"

과연 제퍼슨은 약속을 지켰을까? 절반은 지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혼은 안 했지만 여자관계는 상당히 복잡했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이, 미국 대통령들의 불륜상대의 상당수는 유부녀였고 그것도 친구나 가까운 지인의 마누라들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제퍼슨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친구 잭 워커의 아내를 찝쩍거렸는데, 제퍼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784년 프랑스 대사로 부임했던 시절에는 당시 미술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마리아 코스웨이(Maria Cosway)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뭐 미혼남녀가 사랑을 나눴다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당시 마리아는 유부녀였다. 충격적인 건 마리아의 남편은 제퍼슨과 친구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는데 당시 마리아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와 제퍼슨의 관계를 인정하고, 이를 허용했다는 점이다(마누라를 양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제퍼슨의 끝없는 여성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야, 너 죽은 우리 마누라랑 똑같이 생겼다."

"…죽은 마님하고는 자매였으니까, 비슷할 수밖에요."

"글치? 거 봐!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여자 보는 눈 하나는 죽이거든. 그런 의미로 이리 가까이 와봐. 응?"

"주…주인님, 이…이러시면 안 되는데요."

"어허! 어린 것이 쓸데없는 건 배워 가지고, 튕기는 건 나중에 하세요."

제퍼슨은 자신의 노예이자 아내의 이복자매였던 샐리 해밍스와 부적절한 관계에 들어갔던 것이다. 당시 샐리의 나이가 14세, 제퍼슨의 나이가 44세였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이후 38년간 7명의 자녀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이 좋아 흑인이지 샐리의 몸에 있는 피 중 흑인의 피는 1/4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 몇 번 가졌다고 탄핵까지 갔지만, 제퍼슨은 부적절한 관계가 그의 대통령 재임시절 불거졌지만 탄핵까지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물론 국민들의 비난은 받았다). 역시 부적절한 관계도 시간대를 잘 맞춰 하면 탈이 없는 것이던가?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