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집 아무나 하나. 집안, 학벌, 나이, 얼굴, 애교 정도는 돼야지"

▲ 이성주.
"요즘 남자들 약았어."

반 년 만에 만난 여자후배의 첫마디였다.

"살기 팍팍해서 그렇지."

전업 작가의 길을 가겠다며 직장생활을 접고 방구석폐인으로 사는 후배였기에 대충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남편의 경제적 도움을 밑천 삼아 데뷔할 때까지 버텨냈다는 미담(?) 아닌 미담을 꿈꿔 볼 수 있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꿈도 못 꿀 일이라는 것이다.

"취집(취직+시집)은 아무나 가나. 집안, 학벌, 나이, 얼굴, 애교 5-tool player가 되어야지만 가는 게 취집이라는데…. 그거 없으면 최소한 직장이라도 있어야지 소개팅이라도 들어온다네. 이 험한 세상 혼자 벌어 가정 꾸리긴 힘들고 무조건 맞벌이래. 선배 적게 벌어도 좋으니까, 순진하고 착한 남자 없어?"

언제부터 맞벌이를 요구하지 않는 남자가 순진하고 착한 남자가 됐을까? 우리 아버지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혼자 벌어도 가정생활이 유지됐었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서는 웬만한 전문직 아니고는 혼자 벌어서는 도저히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러다 보니 남자들도 자연스레 직장을 가진 여자를 찾게 되고, 결혼하고 나서도 직장생활을 계속 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한다(미국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베이비붐 세대까지만 해도 가장 혼자 벌어 가계를 꾸렸지만 지금은 맞벌이가 대세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맞물린 성의식의 변화다. 이문열 씨의 베스트셀러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나왔던 시절을 보면 주인공 형빈이 여자친구 윤주가 순결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쳐 발광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대배경이 60, 70년대라지만 그땐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아마 요즘 세상에 이랬다가는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가출시킨 남자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속마음은 별개로 치겠다).

원래 여성의 섹스가 봉인되고, 정조를 강요받은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잉여자산이 생기고, 이 잉여자산을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욕망이 구체화된다. 문제는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자식의 DNA를 검사할 수 없었기에 남자들은 여자들의 정조를 강요하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태어나는 아이의 10% 정도는 법적인 아버지와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다르다).

"원래 세상에는 공짜가 없잖아. 내가 남의 자식 키워야겠냐?"

어쩔 수 없었다. 농업혁명은 남성들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산업구조였기에 여성들은 체제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이후 산업혁명 시기에도 이런 구조는 계속 이어졌다). 그 결과가 바로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회구조였다.

역시 물주가 최고인 걸까? 어쨌든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여성들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그 결과 여성들에 대한 순결강요도 상당 부분 후퇴한 지금이다. 어찌 보면 남성들이 의무를 포기하고 실리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같은 세상에 혼자 벌어 어떻게 사냐? 너희들도 나서서 벌어라. 대신에…, 그래 너희들 노는 건 대충 눈감아 줄게. 어때?"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아왔고, 그걸 직접 보고 자라왔지만 그런 삶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팍팍한 삶. 그렇기에 가부장적인 삶을 포기한 남자들! 그러나 머리는 인정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삶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들(그리고 일부의 여자들). 취집이란 단어의 의미를 고민하게 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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