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부인이 허리를 잔뜩 굽히고 살금살금 까치걸음으로 신당에 들어오더니 슬쩍 앉는다. 신들을 모셔놓은 신단 쪽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방바닥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내가 뭘 물어보아도 고개는 들지도 않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만 한다.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볼 때 신을 모셔야 하는 팔자인데 무슨 사연이 있어 제대로 못 모시고 있는 게 분명했다.

“네 이놈. 신을 모시려면 제대로 모셔야지!”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장군님이 내게 실려 벼락 같은 호통을 친다. 화들짝 놀란 부인은 장군님을 향해 큰절을 몇 번하더니 빌면서 사연을 털어놓는다. 40대 초반의 이 부인은 첫 남편과 이혼하고 식당에서 일하다 2년 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가게의 단골이었던 지금 남편과 퇴근 후 식당에서 단 둘이 술을 먹다가 눈이 맞았다고 한다.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함께 살게 되었다며 한숨을 내쉰다. 비록 정식으로 혼례는 올리지 않았지만 부부처럼 살아왔다고 한다. 다시 시작한 결혼생활은 무미건조했지만 그런대로 행복했는데 무병(巫病)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었다며 눈물까지 흘린다.

재혼 후 얼마 안 되어 날마다 몸이 아프고 헛것이 보여 하는 수 없이 신을 모셨다고 한다. 무당이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고, 남편이 알까 겁이 나서 다락방에다 초미니 신당을 꾸몄다고 한다. 기도는 남편과 딸이 잠들면 몰래 했다며 그동안 자신도 할 만큼은 했다고 항변하더니 기가 막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얼마 전 피곤해서 곯아떨어져 자는데 딸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깼다고 한다. 딸의 방에 가보니 남편이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날 모녀는 밤새도록 부둥켜안고 울며 신세도 한탄하고 딸의 생부인 전남편에게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특히 노한 신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바른길을 알려달라고 몇 번이고 빌고 또 빈다.

“신을 올바르게 모시면 그런 풍파는 자연히 없어집니다.”

“그럼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원래 이 부인의 친정어머니는 신기가 있는 요정의 마담이었다. 한 집안에 신기가 있는 사람이 둘이나 되면 도화바람 인간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부인의 청을 받아주었다. 지금 이 부인은 장안에서 꽤 유명한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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