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원혼붙어 밤이면 집 나가는 딸, 결국 신내림 굿

아침 첫 손님으로 온 젊은 부인이 기가 막힌 사연을 털어놓는다.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까 점집을 아주 많이 다닌 것이 분명했다. 열한 살 된 딸아이가 밤만 되면 집을 나간다며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묻는다.

방문을 잠그면 창문을 깨고서라도 나가 새벽녘에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다고 한다. 그동안 굿도 해보고 절에서 천도제도 해봤으나 아무 소용이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신기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한참 사주를 보고 있는데 내 몸에서 이상한 열기가 느껴지더니 나도 모르게 대뜸 방울 부채를 들고 부인에게 호령을 했다. 얼떨결에 당한 부인은 놀라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빈다.

한참 동안 호통을 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얼굴이 파랗게 질린 부인이 아직 빌고 있었다.

이 집 딸은 만신인 외할머니의 혼령과 신병을 앓다 집을 나가 몹쓸 사람을 만나 객사한 고모의 원혼이 붙어 다녔다. 날이 궂거나 생리가 있어도 밤마다 뛰쳐나가 제멋대로 몸을 굴리는 것은 그 때 고모의 신풀이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딸의 처지가 아주 심각합니다. 일단 내일 아이를 한 번 보고 싶네요.”

“워낙 제멋대로라서 말을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내가 했던 이야기를 하면 올 것입니다.”

다음날 아주머니는 딸을 데리고 왔다. 시커먼 얼굴에 흰자위뿐인 눈은 더 커 보였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몸을 흔드는 모습은 불량기가 넘쳤다. 측은해 보여 한참 보고 있으니까 버릇없이 앉는 모습까지 고모를 빼닮았다고 한다.

무병을 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굿 할 날을 잡고, 이틀 동안 딸은 내가 돌보기로 했다. 날이 저물자 아이의 얼굴엔 불안한 빛이 역력했고, 밤이 깊을수록 발광이 심해서 부모를 불러 그날 밤 굿상을 차렸다.

굿상을 보는 동안 잠잠해지더니 신복을 거는 순간 갑자기 대성통곡한다. 굿을 도와주는 신딸들이 밖으로 데려가 허주(나쁜 귀신)를 벗겼다.

얼마 후 아이는 물을 달라고 해서 물을 떠다 주니까 대뜸 눈을 치켜 뜨고 ‘동이로 떠와’ 한다. 나는 얼른 알아차리고 ‘예…예…’ 하면서 그 아이를 물동이 위에 태우고 굿을 서둘렀다.

“천지신명 일월성신 일곱 칠성님 불사대신…” 서럽게 울음 반 호령 반으로 신들을 읊는다. 스스로 조상의 넋을 받아 조상굿 놀음까지 해냈다. 꿈 많은 소녀가 평범한 꿈을 접고 신의 딸 운명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02-577-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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