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업계 MD 4인의 '2007 트렌드' 전망

패션은 남다르고 싶은 욕망의 다른 이름. 유행이 오고 가는 이치도 여기서 비롯된다.

코 앞으로 다가온 2007년, 유행의 최전선에 서 있는 패션업계 MD(머천다이저ㆍ상품 기획 및 구매 담당자)들은 벌써부터 예민한 촉수를 움직여 한 해 장사의 밑그림을 완성시키고 있다. 의류는 물론 신발,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요즘 잘 나가는 패션MD 4인이 전망하는 2007년 패션ㆍ소비 트렌드를 소개한다.

불황의 선물-합리적 소비, 시즌리스 제품 뜬다

유영삼(이하 유): 패션업계에서는 2007년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합니다. 지난 추석부터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니까요. 신발만 해도 요즘 명동거리에 나가보면 10만원대를 넘어가는 나이키 등 유명브랜드는 잘 안보여요. 5만원내외서 팔리는 캔버스화들이 대세죠.

이지선(이하 이): 비교적 경기를 덜 타는 수입의류 매장들도 고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많아도 1인당 구매액수는 줄고있어요. 반가운 건 경기 덕인지 실속파 구매가 많아졌다는 겁니다. 겨울이라도 두꺼운 옷 한 벌 사는 대신 시즌이 따로 없는 얇은 옷을 여러 벌 사서 겹쳐입기로 멋도 내고 사계절 두루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었거든요.

유: 그건 소비촉진용 상술일수도 있잖아요?(웃음)

윤지혜(이하 윤): 합리적 소비는 화장품에서도 두드러져요. 불과 1,2년 전만 해도 브랜드와 무료로 주는 샘플 개수에 따라 구매가 결정됐는데 요즘은 제품 자체를 따지거든요. 올해 토다코사내 색조화장품 매출 1위 제품도 자체 개발한 PB상품 압착 펄가루였어요.

유: 보통 소비자 구매시점 보다 6개월 앞서서 제품 기획 및 바잉 오더를 끝내야하기 때문에 머천다이저로서는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구매한 상품이 안팔리면 엄청난 재고를 떠안아야 하니까요. 제 경우는 판매데이터와 시장조사, 각종 유행정보 등을 종합해 판단하는데 2007년은 불황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아요. 주력상품인 캔버스화가 전에는 신발창이 1cm나 될까 싶게 얇았는데 요즘엔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어요. 이건 불황기 소비자들이 청바지에도 어울리고, 달리기 같은 일상적인 운동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겸용가능성을 높이 친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지요.

▲ 패션의 거리 명동에서 만난 4인의 패션업계 MD들. 2007년에는 강한 여성과 날씬한 남성, 환경주의와 차별화를 위한 신비주의 마케팅이 패션업계 화두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이지선 윤지혜 김윤정 유영삼씨./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남성, 키는 커도 옷 치수는 작아져

김윤정(이하 김): 제 경우엔 시장조사를 위해서 1월과 6월은 거의 해외 컬렉션장에서 사는 형편이지만 국내외 막론하고, 남성복의 경우 갈수록 여성화한다는 것을 주목하고있어요. 2007년 봄여름에는 특히 새틴이나 아주 얇은 저지 등 일반적으로 여성용으로 인식되던 소재들이 남성복에 많이 쓰인 것을 볼 수 있지요. 무늬도 더 화려해지고, 허리선이나 어깨선도 여성스러워졌구요.

이: 저의 매장에서도 키높이 구두가 아닌, 정말 겉으로 드러난 굽만 6~8cm인 남성용 구두가 매진됐어요. 그만큼 남성들이 멋내기에 대담해진 거죠. 요즘엔 옷 사이즈도 작아졌어요. 전에는 이탈리아 치수 기준으로 48~50사이즈(국내 100~105정도)가 주류였는데 최근엔 44(국내 90)가 대부분이에요.

윤: 하지만 남성들 키나 체형은 더 커지고 있잖아요?

이: 몸은 그대로인데 전보다 작게, 꼭 끼게 입는 거죠.

김: 몸에 착 맞는 느낌을 알게 되면 어깨만 살짝 떠도 크다고 싫어해요.

여성, 초미니 스커트로 불황에 화답?

유: 남성이 여성화하는 반면 여성은 오히려 남성화하는 것도 추세죠. 요즘 체육관에 가보면 근육운동을 하는 건 다 여자들이에요. 남자들은 옷에 몸을 맞추느라 다이어트에 열심이구요.

이: 여성복에서는 내년도 마이크로 미니와 핫팬츠가 크게 유행할 거예요. ‘불황에는 치마길이가 짧아진다’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이미지는 강인한 여성에 가까워요. 미니멀한 검정색에 디자인은 단순하고요, 대신 레오파드나 기린 같은 동물가죽 무늬에서 영감을 얻은 대담한 액세서리가 강렬한 포인트 역할을 하죠.

유기농과 환경주의가 뜬다

윤: 화장품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차별화가 아주 중요해요. 올해 화장품은 전동 마스카라나 붙이면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 패치, 고체형 자외선차단제 등 새로운 유형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내년에는 ‘유기농’과 ‘환경’이 화두가 될 것 같아요. 좀 비싸도 공해나 환경오염으로부터 피부를 지켜주는 제품들, 유기농 성분 제품들이 인기를 끌겠죠.

유: 그건 신발도 마찬가지예요. 내년 유행 소재로 뜬 것이 마(린넨) 거든요. 신발이라는 게 알고보면 땅속에 수십년 묵혀도 썩지않는 대표적인 환경오염 제품인데 최근 환경주의가 뜨면서 10년이면 썩는다는 것을 마케팅 컨셉트로 삼아 마소재 제품들을 내놓고 있어요. 신발업계는 특히 후진국 아동 노동력 착취산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서 이를 극복하기위해 내년에는 구매할 때마다 일정액수를 사회사업에 기부하는 등의 기부마케팅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차별화의 새 코드- 뒷골목에 숨기

이: 청담동의 경우 뒷골목에서 ‘숨어 파는(?)’ 곳이 새로운 유통 트렌드로 뜨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에요. 여전히 백화점 파워가 세기는 하지만 다양한 편집매장들이 생기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상품을 원하는 사람들을 많이 흡수하고 있거든요. 이들은 잘 알려진 매장보다 알음알음 소개받아 간 매장에서 특별한 상품을 찾는 기쁨을 추구하죠. 신비주의 컨셉트랄까.

김: 갈수록 패션전문가들 보다 오히려 감각이나 정보에서 앞서가는 소비자들, 최신 트렌드를 즐기기위해 돈과 시간, 찾아가는 수고를 당연히 지불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들은 택(tagㆍ브랜드 이름표) 보다 디자인을 봐요. 2007년은 여성용 목걸이도 서슴없이 선택하는 남성처럼 자기 취향에 솔직한 소비자들이 득세하는 한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 참석자 프로필

이지선(의류편집매장 쿤 여성복 MD실장)

▲쿤(KOON): 분더샵, 무이와 함께 청담동 수입편집매장 빅3중 하나. 남녀 각각 20개 브랜드에 브랜드당 50품목 정도를 소개한다. 주력 브랜드가 50%, 나머지 50%는 봄가을 시즌마다 물갈이를 통해 매장 신선도를 유지한다.

유영삼(신발전문 편집매장 ABC마트 구매기획팀장)

▲ABC마트: 현재 전국 27개 매장에 25개 브랜드, 연간 2,400개 품목을 소개하고 있다. 나이키 아디다스 컨버스 등 유명브랜드외에도 차별화 차원에서 국내에 소개되지않은 새 브랜드를 발굴, 소개하고 있다.

김윤정(의류편집매장 MSF 남성복 바잉MD)

▲MSF: 서울시내 4개 매장에 남성복 위주로 연간 25개 브랜드, 브랜드당 시즌별로 50~70품목을 구매한다. 연간 총 품목 수는 2,500~3,500개 정도.

윤지혜(화장품 편집매장 토다코사 MD)

▲토다코사: 2000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화장품 편집매장. 서울과 수원 등지에 10개 매장이 있으며 국내외 280개 브랜드(백화점 브랜드 제외), 1만2,000여 품목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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