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노출이냐" 질문 많이 받아… 정사신은 영화 흐름일 뿐
꼬박 4개월 욕망의 화신으로… 이제부터는 관객들의 잔치

혹자는 "또 노출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영화는 보고 노출을 논하느냐?"고. 막상 영화 '후궁:제왕의 첩'(감독 김대승ㆍ제작 황기성사단ㆍ이하 후궁)을 보고 '야한 영화'라 평하는 이는 많지 않다. 노출은 '후궁'이라는 영화의 흐름 속에 담긴 부속일 뿐, 결코 주(主)가 되진 않는다. '방자전'에 이어 또 다시 노출로 관심이 쏠릴 부담을 떠안고 배우 조여정이 '후궁'을 선택한 이유다.

조여정은 이 영화에서 살기 위해 변해야 했던 비운의 후궁 화연 역을 맡았다. 데뷔 후 첫 타이틀롤을 맡은 조여정은 흰 도화지같던 여인이 욕망의 화신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매끄럽게 소화하며 영화 전반에 힘을 불어넣는다. 타이틀롤로서 부족함이 없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 내내 '나만 잘 하면 돼'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죠. 지금껏 제가 해왔던 연기와 사뭇 다른 연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어요. 그만큼 잘 해내고 싶은 마음도 강했죠."

조여정은 꼬박 4개월을 화연으로 살았다. 사랑하는 이를 두고 궁으로 들어와 후궁의 자리에 앉고, 권력의 암투 속에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고 왕좌에 앉히기 위해 처절하게 변해가는 화연의 감정선을 따라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지만 과연 그 끝에 행복이 있을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후궁'은 던지고 있다. 조여정이 "'그래서 당신은 행복하신가요?'라고 묻는 영화"라 설명하는 이유다.

"화연은 궁에 들어온 후 단 하루도 편히 지낸 날이 없을 거예요. 죽어야만 궁을 나갈 수 있지만, 살아 남은 자 역시 고통 속에 살아야 하죠.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자신이 이룬 욕망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예요. 이런 화연의 마음을 안고 연기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후궁'을 선택한 조여정은 만족을 얻고 있다. 관객들에게 가벼운 웃음과 즐거움이 아니라 진지한 고민과 질문을 던지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4개월을 살았다는 것이 조여정의 자부심이다. 배우로서 그의 깊이가 한층 깊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곱씹을 게 참 많은 영화예요. 동료들이 영화를 보고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죠. 영화의 행간에서 읽을거리가 많고, 뭔가 화두를 던지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기쁨이 컸어요. '내가 이런 영화를 하다니'라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 대견해지기도 했죠. 때문에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도 노출 이야기를 넘어 당당히 작품 자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조여정은 '후궁'의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주저없이 엔딩신을 꼽았다. 화연을 취하기 위해 대비 일파를 처단한 성원대군(김동욱)과 격렬한 정사를 나눈 후 화연이 예기치 못한 행동을 실행에 옮기는 엔딩신은 '후궁'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정사신에는 노출이 수반됐지만 결코 야할 수도, 야해서도 안 되는 장면이었다.

"엔딩 장면은 실제로도 맨 마지막에 촬영했어요.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회의가 이어졌죠. 결국은 '원래 대본대로 가자'는 결론이 나왔어요. 처음 시나리오에 있던 내용 만이라도 제대로 보여주는 게 맞다는 의견이 모아졌죠. '단순한 볼거리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감독님을 끝까지 믿고 나를 던지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아 후회는 없어요."

최선을 다한 만큼 기대도 클 법하다. 전작인 '방자전'으로 300만 관객을 모은 터라 욕심이 생길 만도 하다. 하지만 조여정은 "이제부터는 관객들의 잔치인 것 같다"며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영화를 만들고 소개할 때까지는 저희들의 몫이지만 이제는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하고 즐길 때가 온 것 같아요. 솔직히 어떻게 봐주실까 떨려요. 과연 관객들이 제 연기를 어떻게 봐주실까 궁금하고요. 원래 긴장을 안 하는 성격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좀 다르네요. 많이 떨리고 긴장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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