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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혜영 기자
상처 입은 청춘의 불안한 내면과 빛나는 순수를 이렇게 다양한 표정으로 드러냈던 배우가 있었던가.

KBS-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 역으로 주목 받은 유아인(25)이 김려령 원작의 인기 소설 '완득이'를 영화화한 '완득이'(감독 이한)로 가을 스크린 점령에 나섰다.

'완득이'는 장애인 아버지에 정신 지체 삼촌과 함께 사는 소년 완득이가 자신을 둘러 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담임 동주(김윤석) 선생과의 교감 속에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유아인(25)을 처음 인터뷰 했을 때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감독 노동석)의 주연을 맡았던 2007년이었다.

당시 유아인은 자신이 스크린과 드라마에서 연기하던 그 인물들처럼 세상에 대한 응어리 혹은 반항기라는 단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뭔가를 독기처럼 품은 소년과 청년의 중간쯤 어디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완득이'의 홍보 인터뷰를 위해 지난 15일 삼청동에서 유아인을 만났다. 4년 전처럼 세상을 향해 반항기 섞인 날카로운 시선과 연기에 대한 끝도 없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은 비슷했지만 링 위에서 무장 해제된 미소를 짓던 영화 속 완득이의 모습처럼 꼭꼭 닫아걸었던 내면의 빗장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는 듯 했다.

유아인은 "이제야 대표작이라 불릴 만한 작품을 내놓게 됐다. 내가 19살 때, 23살 때 이었더라면 더 완득이의 실제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성균관 스캔들'의 출연 이후에야 이런 작품이 왔다는 사실에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필모그래피에 유독 반항아 캐릭터가 많았던 그는 "삶 속에서 반항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완득이처럼 소심하게 자신의 삶에 순종적이면서도 내적 갈등을 겪는 것도 반항 아닌가. 반항이라는 단어가 넓은 의미로 청춘을 대표하는 말 같다. 내 나이인 20대 청춘을 대변하는 배우이고 싶다. 영화 '데스노트'나 '트레인스포팅'처럼 20대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완득이'를 보며 유아인의 대표작이 나왔구나 싶더라.

▲ 연기를 8년 가까이 해왔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단 한 편 외에는 이 정도 비중이 큰 역할은 처음이다. 내가 출연한 많은 작품 중 흥행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대표할 작품이 없었다. 주류 상업 영화 중에서는 '완득이'가 내 첫 주연작이다. 다만 좀 아쉬운 건 '성균관 스캔들'(이하 '성스')을 하고 난 뒤에야 이런 작품이 내게 왔다는 점이다. 내가 19살 때, 23살 때에도 충분히 이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었는데 오히려 완득이의 나이에 더 가까운 그 때 더 잘 표현할 수도 있었는데 드라마 출연 후 인기가 더 오른 후에 내게 이 작품이 왔다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걸 깨달았다고 할까. 다행히 이한 감독님이 '성스'를 안봤더라도 나를 택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셔서 위안이 됐다.

- 출연작 대부분에서 반항아 캐릭터를 맡았다. 실제로도 유아인은 세상에 적대적이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느낌인데.

▲ 예전과 좀 다르다. 예전에는 무조건 아웃사이더였다. 눈과 손과 발 모두 꽁꽁 묵고 살았다. 드라마는 내가 하면 안되는 일인 줄 알았다. 내가 없어지는 줄 알았다. 무슨 단순 노동자처럼 연기를 기계적으로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컸다. 오히려 이제는 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여유로워지고 나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게 됐다. 돌아갈 내 세계가 굳건하기에 발은 이 곳에 두고 팔은 내밀 수 있다. 전에 아웃사이더 밖에 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다면 이제는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아웃사이더라고 할까. '연기력으로 승부해서 예술혼을 인정받겠어'라고 생각하는 나와 명품도 좋아하는 내가 모두 유아인이다.

- 데뷔도 드라마고 '성스'는 큰 인기와 팬덤까지 안겨줬는데.

▲ '반올림'으로 데뷔하긴 했지만 드라마의 메커니즘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최강칠우'를 찍을 때 죽을 뻔 했다. 마치 1번이 없는데 2, 3, 4번을 하는 느낌이랄까. 온통 가짜인 것 같고 삶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연기하는 느낌이었다. 23살 때였는데 에릭 형과 동갑내기 역이었고 심지어 자객이었다.

하지만 한 번 외도해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한 '성스' 때문에 생각이 바뀌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인정하게 됐다. 영화가 좀 더 내 세계인 것 같지만 드라마도 이제 내가 갈 수 있는 세계가 됐다.

- '성스'는 유아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 완득이가 복싱을 하게 되면서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늘 자기 세계 안에서 살다가 밖으로 한 발 내딛는 느낌이랄까. 완득이도 그렇잖나.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지만 완득이만 놓고 보면 완전체에 가깝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나쁜 친구도 사귀지 않지만 말이다. 연기자 유아인도 마찬가지다. 내 세계에 갇혀 있었다. '성스'를 통해 바깥세상도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고 세상과 악수도 나누게 됐다.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 완득이 캐릭터를 표현하려 가장 크게 신경 쓴 점은.

▲ 완득이 자체가 감정의 진폭이 넓어서 100가지의 다양함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웬만한 영화의 기승전결 속에서 한 인물이 보여줄 수 있는 진폭의 반의 반 밖에 보여줄 수 없었지만 그 안에서 다양하게 쪼개서 보여주려고 했다.

-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소감은.

▲ 매우 균형이 잘 잡힌 영화였다. 제목은 '완득이' 이지만 완득이의 모든 감정을 토해 냈다기 보다 동주 선생이나 다른 캐릭터들 사이에서 균형을 잘 이뤘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웃음과 감동의 균형, 신파와 웃음 가운데의 균형 말이다.

- 킥봉식 장면에서 유아인의 100가지 표정이 나오던데.

▲ 정말 킥복싱 때 최선을 다했기에 그렇게 일그러진 표정이 나올 수 있었다. 링 위에서 3분을 버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정말 못생기게 나올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만일 광고 같은 걸 즐겨 하는 배우였다면 절대 그런 표정을 짓지 못했을 거다. 배우라면 언제든 못생겨져도 상관없다는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 김윤석과 함께 한 소감을 말할 때 '존경한다', '많은 걸 배웠다' 식의 상투적 답변을 하지 않던데.

▲ 제 몫은 제가 했다고 굳이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김윤석 선배님은 내가 놀이터 안에서 재미있게 놀도록 허락해 주셨다고나 할까. 사실 촬영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뭘 그렇게 굳이 가르쳐주는 분들은 없다. 대신 배우로서의 자세를 배우는 부분이 더 크다. 그리고 어떤 관찰의 눈으로 바라보느냐는 후배들 몫이다. 굳이 뭘 가르쳐 줘서가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선배들을 바라봤느냐에 따라서 배움의 천국이 될 수 있다. 이게 김윤석 선배에 대한 내 진심이다. 그리고 항상 진심을 말하자는 게 내 원칙이다.

- 완득이가 링 위에서 짓는 미소 속에서 세상을 향해 조금은 너그러워진 유아인의 여유가 느껴지던데.

▲ 예전에는 싸우고 투쟁을 해야만 했던 내 자아와 정체성을 지킬수 있었다면 이제는 덜 싸우고 안 싸워도 그것들이 내 안에 내제된 것 같다.

영화 속 웃음과 관련해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편안한 느낌은 있었다. 특히 어른들이 모두 모여 백숙을 먹고 술을 마시며 춤추는 장면은 정말 쉽지 않았다. 완득이에게는 여전히 해결된 게 없다. 아버지는 여전히 장애인이고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이고 삼촌은 지적 장애인이다. 가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완득이가 끌어않은 짐은 덜어지지 않았다. 완득이의 심정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감독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심지어 울컥했다. 하지만 활짝 웃는다고 완득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완득이의 심정이 돼서 웃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

- 또래 배우 중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 있나.

▲ 두 명 있다. 김수현과 이제훈이다. 두 사람 모두 나를 신경 쓰게 만든다. 특히 김수현은 예전부터 좋아했다. 비주얼 자체도 준비된 친구이고 연기에 매우 진지하게 접근하는 모습이 좋더라.

- '성스'의 박유천, 송중기, 박민영 등과 연락하며 지내나.

▲ 현장에서는 친하게 지냈지만 드라마 이후에는 연락을 끊고 지냈었다. 내 또래 연예인에 대해 선입견이 심한 편이다. 꼭 연예인 뿐만 아니라 내가 마음의 문들 닫고 지내는 편이다. 이번 팬미팅 때 송중기 형이 갑자기 깜짝 등장해서 너무 놀랐다. 유천이나 민영이도 영상 편지를 보냈더라. '가장 연락 안받는 아인아'라는 내용으로 말이다. 참 고마운 친구들에게 내가 마음의 벽을 쌓고 있더라. 내가 일그러지고 구겨진 아이였다. 중기 형이나 유천이 등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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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1/10/28 08:34:35   수정시간 : 2013/04/25 11: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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