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연(27)은 곱게 빗어 내린 생머리에서 풍기는 단아한 외모와는 달리 1시간 남짓의 인터뷰 시간동안 쉴 새 없이 차근차근 속내를 펼쳐내는 모습이 인상적인 배우다.

추자현, 정찬 등과 함께 주연한 영화 '참을 수 없는'과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연출작 '달빛 길어 올리기' 두 편으로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인 대열에 이름을 올린 한수연은 이미 김상경·박용우 주연의 '조용한 세상'(2006)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했고, 베를린영화제 최우수 데뷔작 후보에 올랐던 '너와 나의 21세기'(2009)에서는 주연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기대주다.

영화 '참을 수 없는'(감독 권칠인)에서 싱글녀 추자현의 친구 경린 역을 맡아 의사 남편인 명원(정찬) 앞에서는 정숙한 주부이지만 남편의 후배이자 연인인 동주(김흥수)와는 도발적 사랑을 펼치는 과감한 유부녀를 오가며 열연을 펼쳤다.

그녀의 설명을 빌자면 경린은 뜨거운 감정과 불같은 감정을 지녔지만 실제로는 몸에 맞지도 않는 요조숙녀의 삶을 강요받다가 유혹의 손길을 뻗는 한 남자 때문에 본성을 깨닫게 되는 여인이다.

'참을 수 없는'이 '싱글즈',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을 연출하며 30대 여성들의 고민과 사랑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기로 유명한 권칠인 감독의 연출작인 만큼 품절녀 경린 역의 한수연에게도 베드신은 필수였다. 특히 정찬과 김흥수를 대할 때 경린의 성격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만큼 베드신의 성격도 극명히 차이가 났다.

"총 서너 차례의 베드신에서 격렬한 노출은 없었지만 행위는 제대로 표현해야 했어요. 베드신 촬영에 대해 머리로는 온전히 이해를 했는데 손과 몸이 뻣뻣하게 굳는 거예요. 작품이 좋고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면 노출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하지만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온전히 자유로워지기 어렵더라고요. 결국 팩소주를 마시고 베드신을 촬영한 적이 있어요. 당시로선 최선이었는데 진정한 프로의 자세는 아니었죠. 경린이로 살다가 가끔씩 한수연으로 돌아오는 제 자신에게 종종 '꺼져'라고 주문을 외웠어요."

한수연은 국내 여배우들의 일반적인 프로필과는 다른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초중등학교 시절을 헝가리에서 보냈다. 어릴 적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가 성악 공부를 위해 헝가리 행을 택한 탓에 한수연은 사춘기 시절의 대부분을 헝가리의 한 극장에서 유럽 영화들과 함께 보냈다.

"그 곳에서는 헝가리 말을 모르는 동양 여자 아이라서 왕따를 당하고, 한국에 와서는 또 같은 이유로 왕따를 당했어요. 그러면서 어린 나이에도 우울함이 뭔 지 배운 것 같아요. 헝가리에서 피아노와 미술을 공부하고 또 다양한 영화들을 보며 여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그 때 느꼈던 글루미한 정서와 예술적인 공부들, 심지어 얼굴 표정에 가끔씩 드러나는 그림자까지도 모두 여배우로서의 자양분이 됐죠."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 올리기'에는 대선배 강수연의 강력한 추천으로 캐스팅 됐다. 스태프들이 추천한 다양한 신인 여배우들의 사진 중 한수연의 '너와 나의 21세기' 스틸 컷을 본 강수연이 임권택 감독에게 '딱, 이 친구네요'라며 추천을 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출연한 강수연 선배님 조수 역할이에요. 강 선배님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 딱 달라붙어서 출연했어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민폐만 끼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에요. 촬영 첫 날 임권택 감독님이 '저 친구 누구야? 어디서 데려 왔냐? 너무 잘 한다'며 칭찬도 해주셨답니다."

한수연이 여배우 중 가장 닮고 싶은 사람으로 꼽은 이는 줄리엣 비노쉬다. 그는 "캐릭터에 미쳐 있고 연기와 영화에 취해서 사는 줄리엣 비노쉬의 모든 점을 좋아한다. 내 모토가 '진실한 삶의 이야기꾼'이다. 내 모든 작품에 진실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