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는 장면 많이 줄었지만 진짜 형사 만날수 있을 것"
"강철중이 내모습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살겠나"
"연기상은 보너스와 같은 것… 지난 5년간 상복 없었다"

거센 풍랑을 헤치고 고향 마을로 무사히 돌아온 선원의 헛헛함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오아시스' 속 홍종두의 느물한 모습과 '사랑을 놓치다'에서의 나른함도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신작 '강철중; 공공의 적 1-1'(감독 강우석, 제작 KNJ엔터테인먼트)의 꼴통 형사 강철중이 되어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영화 '강철중'의 홍보에 한창인 설경구를 초여름 문턱의 오후에 충무로에서 만났다. 첫 만남의 상대에게 드러내놓고 친절함을 가장하지도, 인기 스타의 거드름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언뜻 퉁명해 뵈지만 질문 하나도 허투루 흘리는 법이 없는 성실한 답변이 인상적이다. 설경구는 인터뷰 내내 실질적 데뷔작인 '박하사탕'부터 신작 '강철중'까지 자신이 살아냈던 분신들에 대한 추억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하나씩 되짚어냈다.

강우석 감독이 말한 "설경구는 사생활이 없는 배우다. 아니, 실제 생활도 모두 연기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살아가는 친구다"라는 이야기가 귓전을 때린다.

다음은 설경구와 나눈 일문일답.

- 몸매가 상당히 날렵해졌다.

▲ 애 하나 뺐다. 안고 다니기 힘들어서. 전에는 찌운 살을 다 빼면 놀았는데 이제는 운동을 안 하면 찌는 느낌이 들어 불안하다. '강철중' 쫑파티 끝나고 이틀째부터 운동했다. 하루에 4∼6시간 한다. 트레이너가 일주일에 한 번은 쉬어도 된다고 했는데 일요일에도 몰래 트레이닝 센터에 가서 운동한다.

- 1편에 비해 강철중이 많이 순화됐다. 힘 빠진 강철중의 모습이 낯설더라.

▲ 강철중이 약해진 건 맞다. 이번엔 코미디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했으니까. 1편의 강철중이 들어오면 언밸런스해진다. 1편은 몸에 칼 맞은 게 열 받아서 범인을 쫓아다닌다면 이번에는 증거도 녹음하고 증거 동영상도 보내고 나름 형사에 더 적합해졌다. 진짜 형사다워진 거지. 이번에 철중이가 마약 숨기고, 재영이 얼굴에 화분을 집어 던지고 했다면 오버스러웠을 거다.

반면 강철중이 현실적으로 바뀐 데 대한 아쉬움은 있다. 톤 자체가 이러니 돌출 행동을 할 수도 없고 욕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현장에서 리허설 때 "야, 이 **놈아"하고 욕을 하면 바로 감독님이 "욕 빼라" 하셨다. 15세 관람가로 간다는 계산이 서 있었던 거지. 영화 자체로 6년이 흘렀다. 세월이 강철중을 물들게 한 거 아닐까.

- 1편에서 연기한 강철중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도 컸을 텐데.

1편처럼 살도 찌워야 했고 다시 까칠한 인간으로 변해야 했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강철중 톤으로 해라, 강철중 웃음이 있다. 강철중 눈 빛이 안 나온다"고 하는데 아주 죽겠더라. 그렇다고 1편을 다시 보긴 싫고 본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보통 영화를 기술시사 때 한 번 보고 그 외에는 보지 않는다. 1편 시나리오의 경우 문어체 느낌이 많이 났다. 그래서 대사를 책 읽는 느낌으로 처리한 경우가 있는데 아마 그런 걸 원했던 것 같다. 강철중을 다시 한다고 해서 거저 먹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나를 다시 복제해야 하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자주 툴툴거렸다. "도대체 강철중 톤이 뭐야, 웃음이 뭐야?"라고. 내가 해놓고도 모르는 거다. 답답했다. 그 때처럼 쫓아 하기도 싫은데 감독님은 6년 전처럼 해줬으면 하고. 내 입장에선 재미가 없었다. 그게 시리즈의 단점이기도 하고. 1편처럼 해 줘. 그게 사람 돌게 만들더라. 그 때의 느낌은 비참하다. 새로운 인물이 아니지 않나. 모델이 나라는 게. 사람 아이러니하게 만들더라. 그렇다고 새로운 무엇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게 전 거보다 못하다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나.

하지만 일반 관객 시사 반응이 좋아서 맘을 놨다. 시사 후기를 몇 개 읽었는데 최근 우울증에 걸렸다는 관객이 영화 보면서 2시간 내내 웃었다고 썼다. 관객에게 웃음을 줬다면 된 거 아닌가? 그 정도면 만족한다.

- 몇몇 대사에서 비음을 사용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강철중의 어떤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 글쎄, 의식하면서 비음을 넣지는 않았다. 보통 테이크마다 운율을 달리 해서 대사를 치면 감독님이 어울리는 톤을 결정하는 편이다. 단 평소에 대사를 소리 내서 연습하지는 않는 편이다. 현장에서 상대역과 대사를 치며 연습하지도 않는다. 대사를 칠 때 상대방과 충돌이 있어야 맛이 나는 거지 딱딱 톱니처럼 맞추면 재미가 없다.

다행히 그동안 만난 감독님들이 대사 리딩을 많이 안 하는 분들이었다. '그 놈 목소리' 리딩 때 딱 한 번 리딩을 했는데 "이걸로 뭘 바라지 마라, 나는 책을 읽을 거다"라고 미리 얘기를 했었다. 아니, 앉아서 무슨 연기를 하나. 옷도 안 입고 무슨 감정이 사나. '오아시스' 때도, '열혈남아' 때도 딱 한 번 리딩을 했다. '싸움'은 아예 안 했고. 대사에서 합을 맞추면 재미가 없다. 말을 하다 보면 그냥 씹을 수도 있는 게 대사다.

- 정재영과 호흡은 어땠나.

▲ 편했다. 사람이 워낙 좋지않나. 누구는 그러던데? 재영이랑 나랑 한 고등학교 동창인데 한 놈은 경찰되고 한 놈은 깡패 된 느낌이라고. 다만 1편의 이성재나 2편의 정준호는 세련미가 풍겼다면 재영이는 비싼 옷을 맞춰 줬는데도 별로 옷 테가 안 났다는 아쉬움은 있다.(웃음)

- '공공의 적'의 강철중도, '오아시스'의 홍종두도, '박하사탕'의 김영호도, '역도산'의 역도산도 모두 삶에 치열한 인물들이다. 쉽게 산 인물이 없다. 설경구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관통하는 공통성이 있는 것 같다. 실제의 설경구는 어떤가.

▲ '박하사탕'의 김영호는 원죄가 있기 때문에 숨기 위해 치열히 산 인물이다. 어찌 보면 껍데기로 산 인물이고, 그래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거지. 역도산은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히 산 인물이고 꿈이 좌절돼 외로운 남자였다. '오아시스'의 종두는 결국 희망을 이야기한 인물이다. 경찰서에 잡혀가고 나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공주에게 편지 보낸 걸 봐라. 실제로는 전혀 치열하지 않다. 많은 부분에 관심을 안 두고 산다. 그러면 너무 힘들다. 사람들은 내가 작품마다 살 빼는 모습을 보고 의리가 강하다고 하는데 사실 운동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다.

- 한 작품씩 끝낼 때마다 에너지 소진이 클 것 같다. 캐릭터에서 어떻게 빠져 나오나.

▲ '강철중'이나 '공공의 적'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푸는 영화다. 가장 많이 지쳤던 건 '역도산'이었다. '역도산' 망하고 나서는 우울증까지 심해져서 기가 다 빠져 나갔다. '공공의 적 2' 촬영하다가 그만하자고 한 적도 있다. 그 뒤로 8개월인가 쉬었다. 뭔가 배우는 것도 싫어서 배워야 하는 영화는 다 거절했다. '박하사탕'이랑 '오아시스'는 끝나고 나서 거의 한두 달을 폭음으로 살았다. 거의 망가졌다고 봐야지. 심지어 '박하사탕'은 인터뷰 면서 기자와 함께 소리 내 울기까지 했다. 이제는 안 그런

다. 예전에는 살 뺀다고 운동하며 몸을 학대했는데 이제는 운동으로 푼다. 오히려 몸을 아낀다고 봐야지.

- 강우석 감독과도 여러 작품을 했지만 설경구를 대중에게 각인시켜 준 감독은 이창동 감독이다.

▲ 이창동 감독님과는 '박하사탕'이 끝나고 나서 친해졌다. 막상 촬영할 땐 인사도 안 하고 밥도 같이 안 먹었다. 너무 어렵고 미안하고 원하는 것을 다 못해주는 것 같았다. 결국 끝나고 나서 굉장히 친해졌는데 감독님이 영상원 학생들에게 강의하실 때 "설경구와는 애증 관계다. 되게 사랑하는데 일할 때는 미워한다"고 하셨다더라.

'오아시스' 촬영 때도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사실 종두를 별로 안 좋아했다. 영화를 끝내고 나서 좋아하게 된 인물이다. 감독님도 종두는 너랑 너무 틀리다. 정 못 할 것 같으면 그만둬도 된다고 하셨다. 처음엔 너무 이해가 안되서 감독님께 "얘는 왜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데 늘 배실배실 웃냐"고 물어봤다. 감독님 왈 "개는 주인이 때려도 웃잖니"라며 개와 비교를 하셨다. 내 역할을 개로 비교해서 설명해주시다니…. 어떻게 사람과 개를 비교하나. 결국 나는 종두에 몰입하기 위해 평소 바리깡 두 종류를 가지고 다니며 머리를 아침 저녁으로 밀었다. 어느 날 옆 집 아주머니가 이사 왔다고 음료수를 주러 왔길래 (종두의 모습으로)과자를 주섬주섬 먹으며 문을 열었더니 기겁하며 도망가시더라.(웃음)

- 맡았던 인물 중 실제 모습과 가장 닮았던 캐릭터는.

▲ 지나고 나니 다 닮아 버렸다. '오아시스'의 종두는 나와 너무 틀렸는데도 지금은 내 안에 들어와 있다. 나는 점점 변태가 돼 가고 있다. 역할이 막 다 내 몸 속에 섞여 버렸다. 하루에 마음도 몇 번씩 왔다갔다하고, 한 마디로 정신병자다. 변덕도 심하고. 사실 어떻게 강철중처럼 사나. 저렇게는 못 산다. 근데 욕 잘하고 하는 모습에사람들은 다 나 같다고 한다.

- 최근 칸에서 상영된 '놈, 놈, 놈'이 주목 받았다. 해외 영화제 수상 욕심은 없나.

▲ 기본적으로 영화제는 감독들의 잔치 아닌가. 배우는 불러 주면 가는 거지. 상이라는 게 받으면 기분 좋지만 욕심 낸다고 주는 것도 아니잖나. 그냥 보너스 같은 거다. 근데 내가 언제 상을 받았지? 벌써 4∼5년이나 됐다. 5년 동안 상복이 없었다.

-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영화는.

▲ '오아시스' 때 단편 7편 찍으며 다 해 봤다. 울어도 보고 소리도 질러 봤는데 뭘 더 해보고 싶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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