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짱] 또다른 도전에 '싸움' 건 배우 설경구
"~척하기 싫어서" 굶고 밤새워 캐릭터 몰입
AAAA형 소심남과 '싸움' 버거웠지만 새로워
멋있다고 느끼면 도전하고파 "드럼 배우려구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어요.” 배우 설경구는 요즘 자전거를 타며 눈과 발로 주변의 아름다움을 돌아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사진=김지곤기자 jgkim@sporthankook.co.kr
배우 설경구는 어느 틈에 한국 영화계의 묵직한 대들보로 자리매김했다. 숱한 후배들이 '닮고 싶은 선배'로 꼽는 연기력을 지녔고, 작품마다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올초 에 이어 연말에는 로맨틱 코미디에 얼굴을 내민다.

12월13일 개봉되는 영화 (감독 한지승ㆍ제작 시네마서비스)이 그것이다. 진하고 걸쭉한 연기력의 배우라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언뜻 의외의 선택이다. 아마도 또 다른 도전이려니 싶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하얗고 맑은 얼굴과 단정한 옷차림으로 분명히 이전보다 상당히 부드러워진 듯 했다.

설경구는 어떤 질문에도 거품 없이 답했다. "남자다운 역을 해 본 적이 없는걸요?" "김태희 때문에 걱정이냐고 물어보려고 했죠?"라며 털털한 입담을 과시했다. 설경구에 대한 선입견이 그의 허물없는 입담에 무너졌다.

#설경구에게 로맨틱 코미디는 쉽다?

설경구는 의외로 이 버거웠다고 고백했다. 콘티대로 맞춰서 찍는 영화라 오히려 힘들었다. 9월에 자주 내린 비는 '머피의 법칙' 마냥 야외 촬영을 예정했을 때마다 내렸다. 세트 촬영을 잡아두면 비가 안 오는 식이라 영화 속 상민의 리듬감을 유지하고 있기가 힘들었다.

"이런 영화가 처음이라 버거웠어요. 사실 다른 영화에서 콘티는 스태프가 준비물을 챙길 때 참고하는 정도로 생각했어요. 이창동 감독님은 아예 콘티가 없어요. 배우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을 하세요. 무엇을 찍을지 모르면 배우가 마음을 비우기 편한데 이번 영화는 철저히 콘티대로 가다 보니 힘들던데요."

의 설경구는 김태희와 이별 후 김태희에게 이리 저리 당하는 울트라 소심남이다. 설경구 표현을 빌면 'A'가 4개 정도는 되는 'AAAA'형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연필을 깎아도 길이를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다. 그 연필을 마구 부러뜨리는 것이 김태희다.

"그동안 보여준 남자다운 역과 사뭇 다른 것 같다"고 하자 설경구는 "남자다운 역? 해 본적이 없어요. 도 아니었고 도 아니었고 도 그렇죠. 하긴 그래도 이렇게 소심한 역은 처음이에요"라고 말했다. 설경구는 "강우석 감독이 를 찍었다면 이건 격이죠"라고 설명했다.

#설경구는 영화 속 배역처럼 산다?

설경구는 작품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김혜수는 "설경구는 에서 실제로 굶고 잠을 안 잤다는데 나는 작품과 사적 생활을 별개로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설경구는 쑥스럽게 웃으며 "내가 그 사람의 감정을 모르겠으니까 피폐해지려고 그런 거죠. '척'으로 안 되니까요. 목동 방송회관을 빌려 놓았는데, 아들을 잃은 앵커 캐릭터에 몰입이 안되더라고요. 촬영 접자고 하고 밤새 술 먹고 밤새 걸었어요. 그랬더니 확 늙더군요"라고 설명했다.

당시 설경구는 400자가 아닌 1,000자 필름을 필요할 것 같다고 제작진에 요청할 정도로 연기에 최선을 다했다. '숨을 곳 없이'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고통의 감정을 연기해냈다.

설경구는 작품 속 캐릭터에 근접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영화 속)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죠. 그냥 텍스트를 연기하는 거에요. 다만 '척'하는 것은 싫어서 이리저리 해 보는데 그게 매력이 있어요. 캐릭터란 첫 장면에서 '오!'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첫 장면 보고 '오! 저렇게 찌웠네'라든가, 의 마르고 머리를 빡빡 민 저를 보고 '어우,쟤 싫어'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 거죠."

이번 은 첫 장면으로 승부를 거는 작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필모그래피의 리듬을 따랐다. 이 작품을 택한 이유를 묻자 설경구는 소파 위에 머리를 내려놓고 천장을 한참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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