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대조영'의 최수종이나 '이산'의 이서진처럼 유독 시대극에서 자신의 매력을 온전히 드러내는 배우들이 있다.

1998년 작 '엘리자베스'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호주 출신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에비에이터', '바벨' 등에서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인물들을 창조해냈지만 역시 그녀가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어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인 것은 한 시대를 통치한 위대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로 분했을 때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여왕의 카리스마와 외로운 한 여자로서의 적막감을 동시에 표현할 줄 아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전작의 셰카르 카푸르 감독과 함께 다시 한 번 엘리자베스 1세의 삶을 재조명한다.

절대적인 열세의 상황에서 열강 스페인과의 해상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영국을 '황금시대'로 이끈 엘리자베스 1세의 삶을 다룬 영화 '골든 에이지'를 통해서다.

전작에서 엘리자베스 1세가 사형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 여왕이 되고 왕좌를 굳건히 지키는 일에 몰두했다면 '골든 에이지'에서는 외침 세력을 강하게 제압하고 '황금 시대'를 이끈 여왕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프랑스, 스페인 등 열강들의 정략 결혼 제의를 거부하고 처녀 여왕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는 그녀의 의지와 신대륙 탐험가인 월터 라일리(클라이브 오웬)를 향한 감정적인 동요가 맞서며 내적 갈등도 깊어간다.

'골든 에이지'는 16세기 말 신교도와 구교도의 대립이 극에 달해 대륙간의 전쟁이 한창인 시기 영국을 통치한 신교도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삶을 다뤘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아 '버진 퀸'으로 불린 엘리자베스 1세는 당시 구교도가 주권을 잡은 유럽 최강국 스페인 필리페 2세에게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 스페인은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메리 스튜어트(사만사 모튼)과 손을 잡고 엘리자베스의 암살을 시도하지만 엘리자베스의 충신 프란시스 윌링엄(제프리 러쉬)에 의해 암살 시도는 무위에 그친다.

메리 스튜어트의 처형을 주장하는 중신들의 의견에 엘리자베스는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되고 그런 그의 곁에는 유일하게 마음을 의지하며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는 존재인 신대륙 탐험가 월터 라일리가 있다.

결국 중신들의 주장에 밀려 메리 스튜어트의 교수형이 집행되고 그녀의 유일한 사랑 라일리 경은 여왕인 그녀 대신 아름다운 시녀 베스와 하룻밤을 보낸다. 메리 스튜어트의 처형을 빌미로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이끌고 전쟁을 선포해오는데….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을 만든 영국 최고의 로맨스 영화 제작사인 워킹 타이틀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삶을 조명한 '골든 에이지'에서도 '로맨스' 명가의 명성을 놓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면서도 전쟁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 "내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 것, 그리고 다시는 하지 않을 그 것"이라며 월터 라일리에게 키스를 갈구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첫 날 밤을 앞둔 신부의 심정 못지 않게 순수와 격정으로 묘사됐다.

로맨스신에 못지 않은 최고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영국과 스페인간의 거대한 해상전투 장면이다. 500년 전 실제로 존재했던 대형 함선을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 대영도서관에 있는 당시 서적의 삽화를 참고한 제작진은 길이 55미터, 높이 50미터, 폭 20미터 크기의 거대 함선을 실제로 제작해 엄청난 해일이 불어오는 가운데 폭탄 전술을 이용해 스페인을 격파하는 영국 해군을 그려냈다.

절대적으로 수세에 놓인 영국군 앞에 직접 은빛 갑옷차림으로 말을 타고 나타나 "전쟁이 끝나면 천국에서 만나던지 승전의 끝에서 만나리라"라며 용기를 북돋우는 여왕의 모습도 눈부신 볼거리다.

여기에 낮에는 강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채 대신들과 외국의 대사들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정략가로서의 여왕의 모습과 밤에는 화려한 복식과 다채로운 가발들을 모두 벗어 던진 채 가녀린 몸으로 거울을 응시하며 외로움에 떠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맛깔 나게 그려낸 케이트 블란챗의 연기는 소름이 오소소 돋을 만큼 매력적이다.

지나치게 영국 중심의 역사관에 엘리자베스 1세를 영웅화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영화적 재미를 살리는 데는 충실했다.

영화는 22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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