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인터뷰] 황정민이 도전한 두번째 멜러 '행복'

허진호 감독의 네번째 멜러 '행복'에는 한석규(8월의 크리스마스), 유지태(봄날은 간다), 배용준(외출)에 이어 황정민이 등장한다.

황정민이 '행복'에서 연기하는 영수를 떠올리면 퍼뜩 드는 생각은 서울 번화가 네온싸인 아래서 술에 취하고 여자를 탐하면서 인생을 태우고 소비하는 전형적 인물로 느껴진다.

연기하는 매번 캐릭터에서 에너지가 불끈 불끈 솟아남이 스크린 너머까지 뿜어져 나오는 황정민, 어떻게 캐릭터와 '접신'을 했을지가 궁금해지는 그는 "이번에는 젊은 관객들에게 욕좀 먹고 싶다"는 바램을 내비쳤다.

사랑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어려워

황정민의 '너는 내운명'은 한국 멜러가 취해온 통속적이고 신파적인 대표작이다. 석중이의 우직하고 한결같은 머슴같은 캐릭터는 비록 몹쓸병인 에이즈에 걸린 연인이라 한 들 마음속에 더 없는 온기와 미더움을 가졌을 법하다. 이번에는 역할 체인지다. '행복'의 영수는 '저 살기 바쁜 몸'이다. 간경변이라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온순해진 양이 되버린 영수는 마지막으로 찾은 요양원 '희망의 집'에서 자신에게 첫눈에 반한 듯한 '폐농양'을 앓고 있는 은희와 조우한다.

은희는 영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올인, 다걸기를 한다. 영수는 이 뜻밖의 사랑에 당황하지만 무공해 사랑, 조건없고 두려움 없는 은희의 사랑에 감동받는다. 그리고 힘들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영수의 병이 나아버리는 상황부터가 차마 눈물없인 볼 수 없는 멜러가 되고 만다.

"허진호 감독님의 전작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처럼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영수처럼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관객들이 보실때 허진호 감독님의 남자 중에 저런 남자도 있었네 하는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랬다. 허감독 멜러에 나왔던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한 우유부단함이 영수에게는 없다. 확실하고 분명하다. 때로는 독하다. 그래서 아마도 관객들은 허진호 감독의 새로운 남자 주인공, 혹은 황정민의 '나쁜 남자' 연기에 일단 주목할 듯 싶다.

"'너는 내운명'이 분명 좋았지만 석중이는 사실 비현실적인 존재잖아요. 하지만 영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캐릭터라 이해하기 쉬었어요. 석중이는 아낌없이 주는 남자였잖아요. 사랑을 주는 것이 훨씬 쉬워요. 받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은 굳이 영화로 느끼기 전에 성인이라면 다들 한번쯤 경험해보지 않으셨을까요?"(웃음)

허 감독의 성인 취향 멜러는 젊은 층에게는 거리감을 줄 수도 있다. 커피의 잔향같은 은은함, 묵은지 같은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허감독의 영화를 보는 젊은 관객들은 혹 영수에 대해 몰이해 할 수도 있겠다 싶다.

"감독님 영화의 한 취향은 인생이란 것을 어떤 식으로든 느껴본 사람들의 이야기란 거죠.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층에게는 제 역할이 아주 못된, 욕먹기 좋은 캐릭터에요. 하지만 나중에 또 한번 보면 끄덕이는 분들도 분명 있을거구요. 왜 그런지는 아시잖아요~ "

멜러의 왕(?) 에이 쑥쓰럽게~

황정민의 '행복'은 즉흥적인 예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제가 이렇게 찍은 영화를 가지고 기자분하고 인터뷰하는 것도 배우로서는 일종의 행복이지요. 날 누군가 찾아 준다는 점에서죠. 제가 나중에 인기없고 찾는 이 없어 배우로서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면 인터뷰 조차 할 수 있을까요?" 행복은 그렇게 주변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일상적인 것 처럼 느껴지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쉼없이 새로운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이야기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난 몇년과 앞으로의 일들도 행복이란다. "늘 기회있을 때마다 말씀드렸지만 전 연기를 오랫 동안 하고 싶은 배우에요. 그것이 어떤 역할이든 어떤 비중이든간에 말이죠. 그럴려면 제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그렇게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진리인데 노력파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쑥쓰럽죠. "

함께 한 임수정에게서도 그는 연기하면서 모성애에 가까운 깊은 느낌을 전달받았고 연기 호흡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근성을 맛봤다. 임수정의 연기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주었던 석중의 느낌, 그리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라는 것, 석중과 닮은 은희 캐릭터를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는 배우로서의 완벽한 소화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황정민은 '행복'의 영수를 통해 젊은 관객의 욕을 먹을 것이다. 영수에 대한 비난은 황정민에게 또다른 '행복'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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