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토크] 영화 '즐거운 인생' 이준익·정진영

충무로의 영화사에서 만난 그들은 사무실을 나서 굽이 굽이 골목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헐렁한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양 걷는 이들의 뒷모습은 그저 지나치는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다. 이들이 자주 간다는 충무로의 허름한 고깃집은 혼자서 찾기 어려워 보였지만 이들의 말대로 끝내주는 맛이었다.

웬만한 배우보다 스타인 이준익 감독과, 혼자 운전하고 스케줄을 정리하는 배우 같지 않은 배우 정진영이 주인공이었다. 별별토크가 영화 감독을 만난 것이나 두 명과 동시에 술을 마신 것은 처음이었다.

이 '감독'과 정 '배우'는 소주에 얼음을 넣고 맥주잔으로 마시는 스타일은 같았지만 음주 스타일은 꽤나 달랐다. 이 감독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고도 현란한 언어의 유희를 선보인 반면 정 배우는 말을 아끼며 술을 연거푸 들이키곤 조금씩 속내를 드러냈다.

별별토크는 에 이어 13일 개봉 예정인 (제작 영화사 아침,타이거픽쳐스), 그리고 차기작 까지 줄줄이 호흡을 맞추는 이들을 칭송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

초면이지만 제대로 딴죽을 걸어보겠다고 마음 먹은 '영화판 초짜' 이재원기자(이하 이)와 영화 의 정진영의 모습을 가슴 깊이 기억하고 있는 김성한기자(이하 김)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이 감독에게)피곤해 보이시는데요?(이)

=철인 50종 경기를 하는 것 같아. 요 몇 년 동안.(이)

=나는 오늘 딱 9시까지만. 내일 스케줄이 있어서.(정)

=인터뷰는 내가 더 많이 해. 50개 매체는 한 것 같아. 근데 왜 인지도가 안 올라가지? 허허.(이)

▲두 분이 최근 계속 같이 손을 잡으시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김)

=내가 요즘 인터뷰마다 을 내세우고 있는데 정진영이 홍명보거든. 스트라이커는 많아도 홍명보는 하나거든. 에서 정진영은 홍명보야. 에서 정진영이 홍명보고 김상호 장근석 김윤석은 스트라이커지. 다음 영화()에서는 수애가 스트라이커고. 홍명보 없이 경기하는 축구감독은 불행한 감독이야. 안그래?(이)

▲홍명보가 연속해서 경기에 출전하는데 혹시 감독을 떠나면 어쩌죠? 해외로 진출한다던가(이)

=왜 없어. 허동구(정진영의 전작 ) 구단에도 갔었잖아. 감독님이 영화 잘 만들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도록 만들어 주니까 경기를 하지.(정)

=변칙 캐스팅도 잘 하잖아. 계백에 박중훈이 어울린다고 누가 생각해. 의 감우성도 그렇고. 이번에 김윤석, 장근석도 그래. 난 의 아귀도 안 보고 윤석이를 택했다고.(이)

▲아,그럼 뭘 보고 캐스팅을 하시나요?(김)

=그냥. 정승혜 이사(영화사 아침 대표)가 시키는 대로 해. 때도 강성연을 처음 봤거든. 10년 했대, 그래서 어디 나왔냐고 물었지. 하하.(이)

=어차피 다 새로 만들기 때문에 이전 작품은 볼 필요가 없어. 독특한 용병술이지. 그래서 감독님 게임이 재미있어. 나는 감독님을 '디렉토리'라고 불러. 디렉터(감독)와 리(이준익의 영어식 성)를 나름대로 붙여봤지. '꺼삐단 리'(꺼삐단은 Captain의 러시아식 발음으로 이인식이라는 일제 시대 의사를 다룬 소설 제목)처럼. 감독님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해서, 디렉토리라고 불러.(정)

▲그 정도로 같이 일하시면 형이라고 할 법도 한데 형이라곤 안 해요?(이)

=(잠시 틈을 두고) 뭐, 내가 형 호칭을 쉽게 하지도 않고…(정)

=(바로) 나도 형이라고 쉽게 불리지도 않아. 예전엔 사장님이라고 다들 그랬지. 허허. 배우하고 감독 사이는 불편한 긴장감이 있어야 해. 난 그냥 홍명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주면 돼. 나랑 하든 안하든 그런 경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좋잖아.(이)

=친하면 술집에서 만나야지. 하지만 영화 만드는 걸 믿고 새롭게 만들고 다행히 나를 편애하니까.(정)

▲어떻게 처음 만났어요?(김)

= 할 때 처음. 제작자랑 배우로.(이)

▲그때부터 홍명보로 보였나요?(이)

=응. 그랬지. 그리고 때 감독과 배우로 만났어.(이)

=황산벌은 문제작인데 사실 함의보다 적게 평가를 받았어.(정)

=맞아, 황산벌은 컬트야. 암,컬트랑게. 하하.(이)

▲두 분의 대화가 속도가 너무 빨라 어지럽네요. 정진영이 홍명보로 보인 계기가 있을까요.(이)

=홍명보도 그렇지만 이 사람 눈 한번 봐. 소눈이잖아. 어? 소눈 몰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모든 걸 담은 눈. 보통 눈은 세상을 향하고 있지만 소눈은 세상을 담고 있지. 노려보는 게 아니야. 모든 현상을 인정한다고.(이)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평을 받을 만한데요.(김)

=그거? 몇 년전에 자기들이 만든거야. 언론이 만든 거라고. 감독과 배우는 원래 페르소나야. 분신이라는 거지.

[사진설명] 이준익 감독과 배우 정진영은 결코 '폼' 잡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당신들은 원래 기자하고 싶었어?"라는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더니 "우리도 원래 감독이나 배우가 꿈이 아니었어. 생계 때문에 시작한 거지.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고"라며 "놀아야 한다"고 충동질을 했다. 심지어 오후 9시에 귀가해야 한다던 정진영은 새벽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소설을 써 봐라" "긴장하지 말고 살아라"며 기자들의 관상, 아니 술상을 봐 줬다. 스포츠한국 사진=김지곤기자 jgkim@sportshankook.co.kr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