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워' 둘러싼 논란의 본질과 교훈] 네티즌과 충무로 감정 싸움으로 치달아
코미디언 출신인 심형래 감독의 대작 영화 '디 워(D-War)'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디 워' 논란은 거의 모든 평론가들이 혹평했던 영화가 개봉 첫날부터 흥행 기록을 세울 정도로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으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영화계가 의도적으로 심 감독의 영화를 깎아내리고 있다고 반박했고, 이에 대해 영화인들이 재반박하자 일부 네티즌들이 똘똘 뭉쳐 해당 영화인에게 집단적인 비난을 퍼붓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는 논쟁이 영화적 평가에서 벗어나 이른바 '충무로'로 대변되는 주류 영화인 또는 평론가들과 심 감독을 지지하는 네티즌간의 감정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 네티즌의 분노, 어디에서 비롯됐나
사실 충무로 주류 영화인 혹은 평론가들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는 단순히 '디 워' 때문에 갑자기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디워'에 대한 대다수 평론가들의 가혹할 정도의 혹평이 촉매제가 되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그동안 많은 충무로 영화인들과 평단이 보여왔던 행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평론가들이 '디 워'의 흥행 성공 요인으로 영화 자체의 작품성보다는 애국주의 마케팅과 읍소 마케팅 등을 꼽고 있지만, 그동안 많은 충무로 영화인 역시 한국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또는 스크린쿼터를 사수하기 위해 이를 자주 이용해왔다는 측면을 부인하기 힘들다.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 과도할 정도의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대중이, 점점 자기 만족에 빠져 초심을 잃고 단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수준 낮은 아류작들을 양산해 낸 충무로 영화인들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이 같은 외면이 배신감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졸작들도 하나같이 그럴 듯한 과장성 홍보 문구와 자국 영화에 대한 맹목적 애정을 유도하는 마케팅을 동원하다 보니 관객의 불신을 초래, 결국 오늘날 한국영화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평단에 대한 불신도 이와 연계돼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은 많은 평론가나 영화담당 기자들이 상대적으로 한국영화를 밀어주는 듯한 평을 암묵적으로 써왔다고 믿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한편으로는 국내 영화산업에 보탬을 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중 정서와의 괴리를 노출하면서 평단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4월 개봉했던 영화 '천년학'에 대해 거의 모든 평론가와 영화담당 기자들이 극찬 일색의 평을 쏟아냈으나 대중은 영화를 철저히 외면한 것은 관객과 평단의 시선 차이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충무로 주류 영화인들의 이른바 '먹물주의'나 배타적인 분위기도 작금의 '디워'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주류 영화적 문법에 충실한 영화나 의식이 담긴 작품을 만들어야만 제대로 된 영화감독, 영화제작자인 양 대우받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창조적이고 자유로워야 할 영화계에 학연, 출신 등을 은근히 따지면서 배타적으로 끼리끼리 뭉치는 관행이 만연한 것도 충무로가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심 감독을 지지하는 많은 네티즌들이 "자기들은 제대로 영화다운 영화도 못 만들면서, 할리우드에 정면으로 대항할 의지도 없으면서, 의도적으로 '이방인'인 심 감독을 배척하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디 워'를 둘러싼 네티즌과 평론가들의 감정 대립은 이처럼 오랫동안 쌓여온 대중과 평단의 괴리, 주류 영화인에 대한 네티즌의 불신 등이 깔려 있는 상태에서 심 감독 지지자들의 비이성적 대응까지 겹쳐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 포털 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매카시즘
'여론을 장악하려면 포털을 장악하라'
많은 사람들이 '디 워'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정서다.
분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덧 포털 사이트는 여론을 장악하려는 세력들의 주요 공략 대상이 됐다.
심 감독의 열성 지지자들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등에 팬카페를 만들어 놓고 댓글달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심 감독과 '디 워'를 지지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의 '디워' 팬카페 가입자는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 '황우석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이들의 과도한 여론몰이 행태는 종종 사이버 테러 양상으로 번지면서 건전한 비판이나 여론 형성 자체를 막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로 '디 워'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했던 일부 영화감독이나 영화제작자, 평론가들은 이후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사이버 테러 수준의 공격을 받았으며 일부는 신체 위해에 대한 협박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디 워'를 둘러싼 논란을 주제로 9일 밤 MBC '100분 토론'에도 출연 제의를 받았던 많은 영화인들이 광적인 네티즌의 공세에 위협을 느껴 출연을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 감독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디 워' 비판세력에 대한 적개심으로 무장한 네티즌들의 이 같은 광적인 지지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광기로 몰아갔던 매카시즘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판에 대한 반박은 민주주의 사회의 당연한 권리지만 당사자가 정신적ㆍ신체적 위협을 느껴 정당한 비판적 견해를 피력할 수 없을 정도의 분위기라면 정당한 권리 행사의 수준을 뛰어넘어 범죄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평론가는 "'디 워'에 대한 네티즌들의 지지가 심 감독의 인생역정과 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 충무로에 대한 반감 등이 혼합된 복잡한 것이긴 하나 영화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 막아버리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건전하고 이성적인 논쟁의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