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편제' 이어 '천년학'으로 임권택 감독과 호흡

영화 '천년학'은 세계적인 한국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로 잘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2일 개봉한 '천년학'은 오정해라는 여배우가 임권택 감독과 무려 네 번이나 호흡을 맞춘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 팬이라면 '서편제'라는 당시 최고의 흥행작 안에서 한을 토하며 판소리 장단을 이어나가던 오정해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서편제' 이후 14년여가 흐른 지금. 영화 속이 아닌 현실에서 만난 오정해는 긴 머리에 미니스커트를 곱게 입은 여배우의 모습으로 쾌활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이상하죠. 세월도 많이 지났고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도 많이 했는데 사람들은 '서편제' 때의 제 모습을 너무 깊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정해는 그동안 정말 여러 곳에서 많은 일을 했다. 서울, 경상도, 전라도를 불문하며 여러 곳을 다녔고 영화배우로, 탤런트로, 라디오 DJ로 또 강단에서 쉼 없는 활동을 했다.

다채로운 활동에 '소리꾼' 느낌 벗고 '연기자'로

"'서편제' 이후 단순히 '소리 하는 연기자'로 한정지어지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서편제' 다음 작품인 '태백산맥'에서는 소리를 한다는 사실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연기로만 노출됐죠."

그녀에게는 판소리를 잘한다는 사실이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한정지을까 두려웠던 것. 그런 이유로 여러 가지 활동을 했고 1997년에는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다각도로 재능을 발산했다.

"연기자가 소리도 할 줄 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단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연기를 한다는 말은 싫었거든요. 평소에 한복을 입는것도 아닌데 저를 보면 한복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거든요."

미스 춘향 선발대회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고 '서편제'의 인상이 강한 만큼 한복을 입은 단아한 그녀의 모습이 강한 인상을 가지지만 편안한 평상복의 모습 역시 너무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서편제'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같이 눈먼 소리꾼 '송화' 역을 맡은 '천년학'이 배우로서 두렵지 않았을까.

"'천년학'은 다시 소리꾼으로 영화에 등장한다는 사실 보다 십 수 년 전에 맡았던 역할을 다시 연기할 수 있을까,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심했어요."

아버지에 의해 눈이 멀고 그 한으로 소리의 경지에 이르는 송화의 모습은 '서편제' 개봉 당시 관객에게 연민과 더불어 분노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었다.

"어쩌면 '천년학'에는 그런 울분을 가진 관객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해명 같은 것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억지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장면이 있어요."

오정해 역시 극중 송화처럼 어릴 적부터 스승을 모시고 소리를 배워온 만큼 송화의 모습이 남 같지 않다. 특수한 상황임에는 분명하지만 스스로 동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판소리를 배운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스승은 자식보다 제자를 더 아끼지만 제자의 소리에 대한 욕심이 크기 때문에 자식에게는 못할 정도로 엄하고 가혹할 때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관객이 '천년학' 속 송화의 모습에 선뜻 동감할 수 없어도 그녀의 연기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한 같은 것에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것도 그런 바탕이 깔려 있기 때문일 듯.

극중 '송화'는 내 모습의 일부

"'천년학'이 '서편제'와 다른 점은 역시 동호(조재현 분)와 송화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드러나 있다는 거죠. 이루어질 수 없어 더 안타깝고 마음이 가는 사랑 이야기죠."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직접적이고 강렬한 표현은 영화 속에서 보기 힘들다. 분위기로 느끼고 눈빛 하나로 애정을 표현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 이어졌다.

"사랑이라고 해서 꼭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을 볼 수 없다면 영화적으로 실패한 것이겠죠.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감정의 표현에서는 지난 세월들이 '서편제' 때의 송화 보다는 '천년학'에서의 송화가 더 연기하기에 용이했다. 세월이 지난 만큼 경험이, 또 감정이 커졌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 뿐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사랑, 사제 간의 사랑 등 많은 사랑의 감정들을 느껴본 후 송화를 바라보니 그 느낌이 다르더군요. 어차피 사랑이란 건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의 하나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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