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놈 목소리'로 6년 만에 연기 복귀… "꼭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

단숨에 우려를 날려버렸다. 6년 만에 연기를 재개한 김남주가.

김남주는 22일 공개된 영화 '그놈 목소리'(감독 박진표, 제작 영화사집)에서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 오지선 역으로 2001년 드라마 '그 여자네 집' 이후 6년 만에 컴백했다.

본인은 "CF도 연기활동의 일환"이라고 말했지만 '연기는 안하고 CF만 출연한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런 김남주가 오랜 기간 연기 활동을 쉬었음에도 '그놈 목소리'에서 아이를 유괴당해 숨쉬는 것조차 힘들 만큼 고통스러워 하는 모정을 절절히 연기해 박수를 받았다.

2시간여의 영화 내내 그는 극한의 감정을 연기해야 했다. 도대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장면이 없는 영화를 굳이 컴백작으로 선택한 그의 결정과 촬영하는 동안 부대꼈던 심적 고통, 그리고 실제 '이쁜 짓'을 하는 한 딸의 엄마로서 그의 근황을 들었다.

◇ 두려웠지만 반드시 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너무 무서웠어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시나리오 안에 담겨 있었다. 알려졌다시피 '그놈 목소리'는 싸늘한 주검이 돼서야 돌아온 1991년 이형호 군 유괴사건을 다룬 팩션이다.

"아이 엄마로서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일이죠. 그렇지만 이 역은 제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기를 얼마만큼 해낼지 자신이 없었지만,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이 모순된 발언은 그의 당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시나리오 앞부분에 쓰여 있는 기획의도가 딱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자식을 둔 엄마로서 동참하고 싶었죠. 그나마 제 또래 중 몇 안되는 엄마 배우니까요. 너무 거창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잘 표현한다면 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죠."

'그놈 목소리'는 '현상수배극'이란 낯선 용어를 동원했다. 이제는 공소시효조차 지나버린 형호 군 유괴범 '그놈'을 찾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영화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도발적이며 과감한, 한국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시도를 한다.

"연기하기 정말 힘들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2년 쉬다보니 작품을 고르기가 더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이처럼 오랜 기간 쉬게 됐죠. 늘 매니저랑 이런저런 상의를 했는데, 이 작품은 매니저에게 시나리오를 주며 의견을 구한 게 아니라 '이 작품 꼭 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 가슴에 멍들고, 내내 그치지 않은 울음

"영화에서 보인 우는 장면은 촬영 기간 울었던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내내 울고 살았죠. 가슴은 먹먹하고."

설경구와 김남주의 연기는 관객의 공감을 유발하기 충분하다.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우리 형호, 밥은 먹였나요?"라며 꺽꺽거리는 오지선의 모습을 보면 아이를 둔 엄마가 아닐지라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들 상우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면서도 끝내 인정하지 못해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며 가슴을 펑펑 내리치는 장면은 오래오래 기억된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다 예전 친정엄마가 가슴을 쳤던 일이 생각났어요. 감독님은 '설마 여자가 가슴을 치는데 멍이야 들겠어?' 그러시더군요. 그런데 가슴을 치는 소리를 듣더니 놀라셨다고 합니다."

이 장면을 찍고 진짜 가슴에 멍이 들었다. 영화에서 보이는 멍은 진짜 멍에 색깔만 좀 더한 것.

아이를 잃은 엄마의 자책감을 표현하는 계단 장면 역시 찍고 나서 혼절할 정도였다. 그만큼 극도의 긴장감과 슬픔, 통곡 속에서 보냈던 넉 달이다.

"촬영이 끝나면 감독님과 설경구 씨, 나, 이렇게 셋이서 딱 소주 세 잔씩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소주로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으면 안됐으니까요."

박진표 감독은 끊임없는 격려와 주문으로 배우들을 이끌었다. 김남주, 하면 떠오르는 도회적인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온데간데 없다. 여배우에게는 쉽지 않은 노메이크업과 입는 옷도 고작 서너 벌. 단순히 이미지만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선택.

"저한테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는 걸 알죠. 그런데 그런 김남주에게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끌어내주셨으니 얼마나 고맙겠어요. 감독님이 믿고 맡겨주니까 더 잘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연기할 때 뭔가에 부딪히면 '난 모르지, 난 엄마가 아니잖아'라고 말씀하시며 제가 무언가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해줬죠."

박 감독은 "철저히 부모의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다른 어떤 영화적 장치가 아닌 부모를 연기하는 두 배우 중심으로 만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를 보면 무슨 뜻인지 안다.

◇ 딸 낳은 후 더욱 애잔해진 친정어머니

배우 김승우와의 사이에서 이제 돌 지난 딸 라희를 두고 있는 김남주는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심정 안다더니…"라고 말했다.

아이를 유괴당하는 영화를 찍으면서 라희가 눈에 밟히고 늘 신경 쓰였지만, 그것보다 더 큰 감정은 친정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낀 것이었다.

"엄마는 제가 배우로서 뭔가를 좀 더 이루고 결혼하길 바랐어요. 그때마다 '여기서 뭘 더 바라'라며 제가 큰소리치곤 했죠. 결혼해 보니 자식을 두고 품는 부모의 기대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김남주가 영화로 복귀한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반긴 이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내가 라희는 책임지고 봐줄 테니 넌 연기에만 신경 써라"고 하셨다.

"아이 보느라 힘들어 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어요. 딸 자식 잘하라고 당신의 딸의 딸까지 키우시잖아요."

그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잠시 감정을 추스른 그는 "남자와 여자는 태생부터 다른 것 같다"며 "엄마는 아무리 남편이나 친정엄마한테 아이를 맡겨도 늘 불안한데, 아빠는 애엄마한테 아이를 맡기면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덧붙여 라희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분명하게 말했다. 뒤에서 내뱉는다고 책임감 없이 듣기 민망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라희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하는 오빠(김승우) 뜻이 완강하죠. 무엇보다도 라희 사진을 보고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온다면 그건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 키우는 분들은 알 겁니다."

성공적으로 연기 복귀식을 치른 김남주. 앞으로는 자주 배우로서 만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좋은 작품으로 언제든"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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