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무협에 절절한 사랑 담겨 매력 솔솔…

깜찍한 ‘요정’인 줄로만 알았더니 제 몸만한 검(檢)을 든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치렁치렁 늘어진 옷깃을 여미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내뿜는 모습이 마치 천상의 요정같다.

배우 김태희가 안방극장을 벗어나 스크린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녹록치 않은 작품과 배역을 맡았다.

총 104억 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판타지 대작 ‘중천’(감독 조동오ㆍ제작 나비픽쳐스)에서 천인 ‘소화’로 등장한다. 기존 이미지를 반복하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마다했다.

예쁘기만 한 배우라는 껍질을 깨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귀엽고 지적인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배제하려는 듯 사내들 틈에서 강인하고 당찬 모습으로 변모했다.

첫 주연작을 맡으면서 오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뒤섞인 표정이다. 배우 김태희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장르의 한계를 넘어라

영화 ‘중천’에서 김태희가 맡은 역할은 천인(天人) ‘소화’다. 죽은 영혼이 49일간 머문다는 중천에서 인간의 기억을 지우고 해탈한 존재다. 죽은 영혼들을 계도하고 중천이라는 공간을 수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배역에서 드러나듯 영화 전체는 다분히 판타지적 요소가 주를 이룬다. 그간 한국 영화계에서 중국을 무대로 한 판타지 영화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장대한 스케일에도 CG 작업 등이 관객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현실성과 이야기 구조를 중시하는 한국 관객에게 여전히 낯선 장르라는 점도 작용했다.

김태희는 작품 출연을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

“단 한번도 흥행에 성공한 적이 없는 장르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예전 영화들과 많이 달라요. 기본적인 판타지와 무협 요소에 절절한 사랑이 녹아 들었어요. 수준 높은 볼거리도 있죠. 그래서 한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김태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기존 판타지 무협 영화와 차별성이었다. 오히려 작품에 임하면서 김태희도 판타지의 매력에 빠졌다.

“이전에는 판타지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논픽션 쪽을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촬영을 하면서 판타지 영화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영화를 보는 관객도 복잡한 세상살이 다 잊고 환상적인 이야기에 빠져들면 어떨까요.”


# 체력의 한계를 넘어라

김태희는 남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해왔다. 여리고 풋풋한 이미지는 전작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서 ‘수인’ 캐릭터에서 만발했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소화는 극중 원귀들의 반란으로 질서가 흐트러진 중천에서 천인으로 살아 남기 위해 칼을 들고 싸움에 나서야 한다. 이런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김태희는 한달 넘게 하루 3시간 이상 액션스쿨에서 수업을 받았다.

처음에는 목검을 제대로 부딪히지도 못했다. 하지만 힘겨운 훈련 뒤에 점차 그럴듯한 여검사의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천’이라는 현세가 아니라는 공간적 특성으로 주로 촬영이 밤에 이뤄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버티기 어려운 환경 조건이었다. 김태희는 낮과 밤이 뒤바뀐 채 촬영이 계속돼서 컨디션 조절이 어려움을 겪었다.

판타지 무협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와이어 액션 장면도 김태희를 힘겹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물리적 어려움에서 김태희가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생각했죠. 이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 이건 나밖에 못한다, 스스로 믿으려고 노력했어요. 쉽지 않았지만 꼭 해내고 싶었어요.”


# 심리적 부담을 넘어라

김태희는 예상 밖으로 새침하거나 예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했고 털털한 웃음도 빼놓지 않았다. 김태희 스스로 자신을 ‘둔녀’라고 표현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작품 몰입을 위해서 일부러 예민해지려고 노력을 할 정도라고 한다. “시청률에 대한 부담을 한번도 느낀 적이 없어요. 첫 주연 영화지만 초반에는 흥행에 대한 부담도 사실 크지 않았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김태희는 달라졌다.

“중국 촬영 부분도 고생이 많았어요. 딱 한 장면을 빼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후시 녹음을 했어요. 작품을 한 번 더 찍은 셈이죠. 이렇게 고생을 했던 작품은 없었어요. 스태프와 동고동락하다 보니 이번 작품 잘돼야 하는데 라는 욕심이 막 생겼죠. 고생한 대가를 못 받으면 아쉽잖아요.”

김태희가 넘어야 할 산을 많다. 관객에게 여전히 친숙하지 못한 판타지 무협물이라는 장르를 비롯해 첫 주연작 성적에 대한 부담감까지 넘어야 할 관문이 앞에 있다.

관객은 어쩌면 이번 작품에서 그녀의 용기에 집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누가 봐도 가깝고 쉬운 길이 아닌 험난하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김태희의 용기 있는 선택이 관객을 통해 지혜로운 선택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지, 그 결과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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