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 성인된후 첫 멜로물 도전

숙녀라는 단어가 싫지 않은 모양이다. 소주를 마신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고 운을 띄웠다. 이젠 대학생이니 소주도 마실 수 있는 나이란다. 낯선 이유는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 때문이다. ‘소녀’ 문근영은 ‘성인’이 됐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호젓한 카페. 소나무로 한옥을 치장해 개조한 곳이다. 신세대 스타의 선두주자를 고풍스러운 카페에서 만난다는 게 색달랐다. 디지털 문화가 넘치는 청담동 분위기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곱씹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아날로그 취향의 성격을 드러낸다. 팬들은 바투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에 눈을 기울이지만 오히려 그녀는 찬찬히 변하고 싶어한다.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감독 이철하ㆍ제작 싸이더스FNH)의 류민 캐릭터 역시 그녀의 작은 변신의 무대다.

▲ 소주마신다는 말을 듣고 기겁했다. ‘국민여동생’이 어찌된 건가.

= 대학에 들어온 후 나도 술마실 나이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인터뷰에서 몇 명이 2병 마셨다는 말이 와전돼서 주량이 센 줄 알더라고요. 기분 좋을 때 1병쯤?

▲ 소녀인 줄로만 알았다. 성인인 된 후 달라진 게 있나.

= 자유가 생긴 게 아닐까요? 뭘하든지 제 의사대로 할 수 있잖아요. 대학생이 되니 주위사람들도 제 의사를 더 존중해주는 것 같아요. 할머님도 예전 같으면 시시콜콜한 스케줄까지 따라다니시면서 챙겨주셨는데 요즘엔 알아서 하라고 말씀하세요. 먼 지방 촬영이 아니면 호자 다니고 있어요.

▲ 할머님의 교육 방법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 저 한테는 할머님이 스승님이에요. 얼마전부터 서울 청담동에서 할머님하고 둘이서 살고 있어요. 따로 일하는 아줌마를 두지 않았어요. 할머님은 저한테 줘도 줘도 끝이 없는 것처럼 사랑을 쏟으시는 분이죠. 가끔 설거지나 방청소를 하면서 할머님 일을 덜어드리는데 바빠서 자주는 못해요.

▲ 벌써 데뷔 8년차다. 많은 게 달라졌을 법한데.

= 지금도 애기지만 그때 더 애기였죠. 나이드신 분들이 들으면 웃긴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도 나이가 들면서 좀더 조심스럽고 신중해지더라고요. 예전에는 낯도 많이 가렸는데 지금은 대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어요.

▲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안으로 숨는 것 같다. 생기발랄한 문근영을 자주 보여달라.

= 얼마전 학교에서 공부하다 잠든 모습이 기사화된 적이 있어요. 저도 사람인데 아차 싶더라고요. 이런 거까지 공개되면 도대체 내 삶의 어디까지 보여줘야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인 것 같아요.

▲ 움츠러든다니, 평소 당찬 성격으로만 보이던데.

= 강해보이지만 소심한 성격이에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곤 해요. A형같나요? 사실 A형 같은 B형이에요. 세상을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생각해요. 아마 ‘국민여동생’이라는 호칭도 저한테 보고 싶어하는 걸 단적으로 표현한 거죠.

▲ 세상의 시선 때문에 도망치고 싶은 적도 있나.

= 씩씩해보나봐요. 힘든 날 힘든 모습을 보여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오히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고 되묻곤 해요. 그냥 힘든 것 뿐인데요. 그래서 혼자있을 때가 편해요. 별의별 생각을 다하죠. 책을 읽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상상도 많이 하죠.

▲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류민 캐릭터가 세상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게 닮았다는 말에 조금 충격을 받았는데.

= 뭐, 불신까지는 아니지만 세상이 무서워요. 영화 속 캐릭터는 세상에 반감을 갖고 있는데, 물론 그 정도는 아니죠. 다만 사사로운 감정을 표현못한다는 거, 그게 쉽지 않아요. 요즘은 상처를 받을 때 그 상처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야 제가 편하거든요.

▲ 만으로 열아홉살, 아직 어린 나이지만 많은 걸 경험하다보면 또래들이 어리게 보이지는 않나.

= 어릴 때부터 습관이 있어요. 자기 전에 오늘은 뭘 했나 떠올려봐요. 작은 일상사에서 많은 걸 깨닫게 돼요. 잘못한 게 있으면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그렇다고 또래보다 다른 건 없어요. 여행도 많이 하고 싶고, 많은 걸 경험하고 싶은, 청춘이죠.

▲ 고시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의외였는데, 한 구절만 들려달라.

= ‘사공은 어데가고 빈배만 걸렸나니’~. 갑자기 하려니깐 중간 밖에 생각이 안나네요(웃음). 학창 시절에 배운 ‘사미인곡’ ‘속미인곡’같은 게 좋았어요. 황진이의 시도 마음에 들어요. 곱씹어보는 맛이 좋아요. 하나의 운율에도 많은 감정이 담겨있잖아요. 아마 제 성격인가봐요. 사람들도 찬찬히 뜯어보고 관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 전지현 장동건 선배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이 눈앞에 왔는데,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욕심은 없나.

= 선배들이 진짜로 좋은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할리우드에 가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은 물론 있죠. 하지만 딱히 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그들과 함께 작업하면 또 다른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가 있을 뿐이죠.

▲ 끝없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 너무 행복하죠. 그래도 작은 고민도 있어요. 젖살 때문에요.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스크린으로 보면 얼굴이 너무 크게 나와서 걱정이에요(웃음).

▲ 앞으로 연기할 날이 수없이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 살고 싶은가.

= 조용히, 넘치지 않게 살고 싶어요. 중용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굽이굽이 흘러가는 물처럼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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