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 ■ 거룩한 계보
조폭들의 우정과 배신 '친구' 전라도 버전 격, '대중영화' 선언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 번뜩

타협은 또 다른 도전이다.

재기 발랄한 충무로의 보물인 장진 감독은 영화 ‘거룩한 계보’(제작 KNJ엔터테인먼트)로 관객, 더 나아가 세상과 소통을 시도했다. 그 소통은 ‘장진’식이라 불리는 특유의 시선을 조금 줄인 대신 주위 사람들의 입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완성된 듯 하다.

영화 ‘거룩한 계보’는 9일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장진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놀랄 만큼 자신의 색채에 대중적인 감각을 덧씌우는 데 치중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설정과 초반 진행은 이른바 ‘장진’식 유머가 도드라진 반면, 후반으로 진행되면서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혹은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감상적인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로 장진 감독은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편안하고 즐겁게 보는 영화가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비장미마저 드러내는 마지막 총격 장면은 당초 장진의 기획 의도를 살짝 빗겨나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는 동치성(정재영), 김주중(정준호), 정순탄(류승용) 등 세 죽마고우가 조직 세계에 몸담으면서 내부의 배신으로 인해 그 조직에 복수를 꿈꾸는 과정을 담고 있다.

치성은 보스의 명령으로 마약 제작업자에게 청부 폭력을 가하지만 보스가 그 마약 제작업자와 손을 잡으면서 조직으로부터 ‘팽’(烹)당한다. 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먼저 세상을 떠난 줄로만 알았던 순탄을 만나면서 자신을 배신한 조직을 향해 복수를 꿈꾼다.

교도소 담벼락이 무너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면서 탈출에 성공한 치성과 순탄은 보스를 찾아가지만 또 다른 친구인 주중의 제지를 받는다. 주중 역시 친구와 의리, 그리고 조직원의 입장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영화는 수컷으로 불릴 만큼 강인한 사내들의 우정 이야기를 담았다. 어찌보면 경상도 출신 조폭들의 이야기를 다룬 ‘친구’의 전라도 버전으로 해석될 만하다. 영화는 조폭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배신을 다루지만 그들을 미화하지 않는다.

“깡패는 그냥 깡패일 뿐 의리나 협객은 없당게”라는 영화 속 치성의 대사처럼 조폭은 그저 ‘나와바리’나 지키고, 돈 벌자고 마약 제조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조폭이라는 주인공들의 신분을 차용해 인간의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장진 감독은 자신의 패밀리인 정재영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코드를 가진 정준호, 최근 자신의 패밀리에 합류한 류승용 등 삼총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썩소’를 날리는 정재영의 연기는 편안하고, 자신의 색깔이 아닌 감독의 색깔에 자신을 맞춰낸 정준호의 연기 역시 크게 나무랄 데 없다.

더욱이 류승용을 위시로 올해 8편의 영화에 출연한 중견배우 이한위, 연극 ‘품바’의 원조 정규수 등 짱짱한 조연들의 호연은 단연 볼 만하다. 뿐 만 아니라 비행기가 추락한 충격으로 교도소 담벼락이 무너지는 설정이나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을 테니” 등 감각적인 대사는 단연 장진만의 장점이 드러난 대목이다.

영화의 초반에 주중이 경찰서에서 유네스코 회원에다 성금도 내는데 왜 내가 조폭이냐고 대드는 장면 등 장진이 갖고 있는 재치만발 대사가 보는 즐거움을 두 배로 만든다.

영화는 전체적인 완성도만 따진다면 단연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작품이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의 초ㆍ중반에 이어 ‘장진’식 유머로 끝을 맺은 당초 시나리오 설정과 달리 대중과 화합을 시도한 몇몇 장면들이다. 간혹 감정의 굴곡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면서 멜로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감상적으로 인물을 바라보는 몇몇 설정은 장진의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분명 장진의 매력은 연기, 연출, 그리고 시나리오까지 영화의 전편을 관통하는 통찰력과 자신만이 갖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오감을 넘어선 또 다른 감각에 터를 삼고 있다. 차라리 당초 시나리오 설정 대로 자신만의 언어로 관객들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내내 호기심이 남는다. 15세 이상 관람가.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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