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 여섯번째 장편… 남자들의 '찐'한 우정이야기

"사내들의 땀냄새 물씬나는 영화거든요."

연기인생의 황혼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관록의 배우 민지환, TV드라마를 통해 오랫동안 친숙하게 시청자들에게 다가왔다가 이제는 그 모습이 뜸했던 이 칠순의 배우는 조폭 보스로 등장하는 자신의 영화 '거룩한 계보'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진지함과 유머를 누구보다 적절히 배합시키는 우월적 감각을 보여온 장진 감독은 자신의 여섯번째 장편영화 '거룩한 계보'를 통해 할리우드 대가들이 한번씩은 꼭 찍고 가야할 통과의례 같은 '느와르' 장르에 도전했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경상도 버전의 조폭 느와르라면 이번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는 전라도 버전이랄수 있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장진감독 특유의 독특한 전개방식으로 펼쳐진다.

남자들의 '찐한' 우정을 담은 '거룩한 계보'는 동치성(정재영), 김주중(정준호), 정순탄(류승용) 세 죽마고우가 조직세계에 몸담으면서 외부의 배신과 음모로 인해 서로 엇갈린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폭 보스(민지환)의 명을 받아 청부 폭력을 가한 동치성은 교도소에 가지만 보스는 다시 신종 마약제조업자와 손을 잡으면서 동치성을 제거하려한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친구 정순탄은 동치성과 감방에서 조우하고는 탈옥을 꿈꾸고 밖에서 동치성을 돌보는 김주중은 친구와 조직사이에서 고민한다.

가장 독특한 탈옥방법이 구현되는 '거룩한 계보'는 사격훈련을 하던 조폭들이 허공에 쏜 총알이 전투기에 맞아 격추되고 그 격추된 전투기가 동치성이 탈옥하려던 감옥에 떨어져 벽이 무너진다는 설정이다. 자칫 그 탈옥의 설득력이 약해질 위험이 다분하다는 점은 장감독이 연극에서 차용했을법한 상상력의 매력이요 관객에게 던져질 아이러니다.

그것은 전작 '박수칠때 떠나라'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과학수사에 열을 올리는 수사팀이 허탕치고 결국 신들린 무당이 범인을 맞춘다는 역설과 또한번 조우하는 듯하다.

장진의 남자, 장진 사단의 에이스 정재영은 '아는 여자'의 주인공 동치성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거룩한 계보'에서 전설의 칼잡이 동치성이 되는 재미있는 설정이다. 물론 김주중이나 정순탄도 마찬가지로 과거 장진감독의 영화 캐릭터 이름을 따왔다.

장진 감독 특유의 엇박자 아이러니 유머는 여전히 영화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고 조폭세계를 섬짓하리만치 파고든 대사와 설정은 전반적인 코믹한 분위기속에서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다.

정재영은 장감독의 가장 믿음직한 에이스 답게 전라도 투박하고 거친 남자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며 기를 내뿜는다. 그는 전작 '마이캡틴 김대출'에서 경상도 경주 사투리를 유감없이 쓰더니 이번에는 전라도 토박이 같이 변신했다. 동물적 연기 감각을 가진 정재영에게 충무로에서 평가하는 부분이 무엇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정준호의 변신이다. 그동안 꽃미남같은 곱상한 외모와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리는 왕자님 캐릭터에 익숙했던 정준호는 그 역할의 굵기(?)에 개의치 않고 작품에 올인한 모습이다. 전적으로 장진감독에 대한 신뢰가 컷다지만 투톱영화로 알려진 것과 달리 정준호의 역할이 작게만 느껴져 다소 불만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영화의 '結'에서 그가 쏟아붓는 연기 내공은 장진감독이 TV스타 정준호를 장진스타일의 캐릭터로 구현하는데 성공 확신을 갖게 한 밑거름임을 입증하고 있다.

역시 장진 감독의 숨은 병기 류승용은 오랜 연극활동으로 쌓은 공력을 이미 '박수칠때 떠나라'에서 보여줬고 이번 영화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밖에도 배우들의 전라도 사투리 선생노릇을 자청하며 웃음코드를 유발시키는 중견연기자 이한위나 연극 '품바'의 원조 정규수, '서편제'의 김규철 등 쟁쟁한 조연들이 영화속에서 제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다만 연기파 배우들이 많고 이들에 대한 배려차원이었던지 아니면 '계보'에 대한 설명 부분이 필요해서인지 다소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은 옥의 티다.

'우정'이란 들키지 않고 그에게 하고 싶은 선물들을 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영화로 구현해낸 장진 감독은 이제 온전히 흥행영화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15세 이상 관람가.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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