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퍼즐'서 첫 주연 홍석천 "커밍아웃 후 자살 유혹 시달려"

청양의 농촌마을에서 태어난 홍석천은 어린 시절 비범한 아이였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던 그에게 놀랍고도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건 중학생 때였는데... 서른 살에 갑자기 커밍아웃을 하게 된 사연, 그 이후 약물에 대한 유혹과 자살까지 꿈꿨던 상황 등 방송에서 처음으로 고백하는 홍석천의 이야기를 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들어본다.

( 이하 방송 내용 )

▶ 진행 : 공지영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
▶ 출연 : 홍석천

- 고향은 어디인가요?

충청도에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고, 지금도 가족들과 친척들은 다 거기 계세요.

- 어렸을 때 고향의 풍경은?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지역으로 선정될 정도로 산과 물이 좋아요. 고추와 구기자, 칠갑산도 유명하죠. 칠갑산은 계곡이 깊고, 산 정상 쪽에 호수가 굉장히 멋있어요. 장곡사라는 절도 있고, 요새는 온천도 개발됐대요.

- 어렸을 땐 뭘 하고 놀았나요?

삔치기,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겨울엔 부대자루로 미끄럼타고, 냇가에서 썰매 타고, 스케이트 타고, 여름에 멱 감고, 아주 잘 지냈어요.

- 어렸을 땐 어떤 소년이었나요?

비범했죠. 하하. 워낙 시골이고 학생 수도 적어서 돋보이기 쉬웠어요. 그리고 어렸을 땐 참 고왔어요. 글짓기도 잘했고, 그림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공부도 잘해서 그 작은 동네에서 거의 신동 취급을 당했어요.

- 초등학교 무렵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됐다고요?

초등학교 4학년 사춘기가 막 시작될 때였어요. 저보다 한 살 많은 형한테 그런 느낌을 처음 갖게 됐는데, 같이 교회를 다니면서 이상하게 그 형과 많이 엮이더라고요. 하지만 어렸을 땐 잘 모르니까 그냥 마음으로만 좋아했죠. 그 후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 굉장히 버거웠겠어요.

네. 제 의지와도 상관없는 일도 있었어요. 사실 이런 얘기는 처음 하는 건데 어렸을 때 시골에서 남자친구들한테 성폭행을 당한 적도 있어요. 중학교 다닐 때였는데요. 야밤에 힘 꽤나 쓴다는 친구들 세 명한테 불려가서 으슥한 창고 옆에서 성폭행을 당했어요. 남들에게 얘기도 못하고 몇 년 동안 혼자 고민했죠. 저도 참 사연 복잡하고 굴곡이 심한 인생이에요.

- 왜 하필 홍석천 씨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한 건가요?

일단 제가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예쁨을 받았어요. 공부도 잘 하고 반장을 해서 좀 튀었어요. 목소리랑 몸매도 야리야리하니까 그 친구들은 한창 성적으로 폭발하던 때에 저를 대상으로 한 거죠. 제 인생에서 굉장히 힘든 시기였어요.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어요. 너무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어요. 그 일이 있은 후 오랫동안 앓았고 성적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고향에 가면 그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요.

- 그 친구들이 용서가 되나요?

전 용서가 돼요. 지나간 일을 용서 안 하면 제가 못 살 것 같아서요.

- 어릴 때 꿈이 배우였나요?

네. 부모님은 법대를 가라고 하셨는데 전 연극영화과가 가고 싶어서 막판까지 비밀로 했는데 선생님이 저희 부모님을 불렀어요. 얘는 딴따라 만들지 말고 더 좋은 학교로 보내야 한다고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와 밤새 얘기했어요. 아버지가 새벽까지 제 얘기를 들으시더니 "너를 믿는다. 네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면 허락하겠다."고 하셔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갈 수 있었어요.

-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요?

시골분인데도 불구하고 꽤 열려있는 분이에요. 자상하시고 얼굴도 굉장히 예쁘세요. 전 아빠를 닮고 싶었는데 엄마 쪽을 닮아서 얼굴이 큰 편이에요.(웃음) 그리고 예능적인 끼가 있는 분이에요. 그래서 내 아들을 밀어줘볼까,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나중에 말씀하시더라고요.

- 전국노래자랑도 나간 적이 있다고요?

단기사병 시절에 부대장님께서 "너밖에 나갈 사람이 없다. 나가서 상을 못 타면 혼날 것이고, 상을 타면 포상휴가를 준다."고 하셔서 변장을 하고 나갔는데 상을 탔어요. 당시 이현우의 꿈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연말 결선에서도 또 상을 타서 포상휴가를 받았죠.

- 95년 KBS 대학 개그제에서 동상 수상하면서 연예계에 공식 데뷔를 하셨는데요. 왜 연기자가 아닌 개그맨으로 데뷔하셨나요?

연기자 시험을 무척 많이 봤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꼭 막판에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개그 쪽으로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당시엔 학교 등록금도 필요했거든요. 상을 받으면 상금이 있잖아요. 그래서 개그맨 시험을 봤는데 덜컥 합격이 된 거예요. 하지만 저는 개그맨 사회에는 잘 적응을 못 하겠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디어를 내서 사람들을 웃기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그래서 개그맨은 그만 두고 다른 방송국의 개그작가로 들어갔는데,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 웃긴 작품을 써야 하는 거라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래서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다시 무대로 돌아갔죠.

- 주로 어떤 작품을 하셨나요?

한양대 최형인 교수님의 작품에 주로 출연했어요. 그때 설경구 씨, 유오성 씨, 이문식 씨, 권해효 씨 등과 함께 연기했어요. 참 희한한 게 잘 생긴 사람보다는 평범한 얼굴의 사람들이 연기를 잘 하면 연기력을 더 많이 쳐줘요. 너무 잘 생긴 사람은 연기를 잘 해도 외모에 먼저 눈길이 가니까요.

- 당시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요?

네. 엄청 했어요. 근데 사실 돈이 없어도 빈대 붙어서 버틸 수 있긴 해요. 버스비가 없어서 집에 못 들어가는 날에는 걸어서 홍대까지 가는 거예요. 거기 클럽이나 바에 들어가서 그냥 음악에 맞춰서 춤을 쳐줘요. 물론 맥주 사마실 돈은 없죠. 그냥 옆에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놀아주는 거예요. 그렇게 놀다보면 그분들이 맥주 한 잔 같이 하자고 해요. 그러면서 인생 얘기도 하고 밤새 있는 거예요. 그리고 새벽에 소주 한 잔 더 하자고 하면 포장마차에 가서 곡기를 달래고 아침에 학교에 가요. 그리고 학교 선배들한테 2000원만 달라고 하면 다들 주거든요.(웃음)

- 2000년에 커밍아웃을 하셨는데요. 당시 연기자로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는데, 무엇이 그런 과감한 선언을 하게 했나요?

말 안하고 조용히 지내는 게 저에게도 좋고 세상도 조용했을 텐데요. 당시 제 나이가 서른 살이었어요. 30년 세월 동안 내 정체성을 알아가면서 남들 눈치 보는 데 허비했다면 서른 이후에는 내 주관적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커밍아웃을 감행했을 때 나에게 들어오는 불이익을 따져보기도 했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어요. 목숨 걸고 했던 거니까요. 근데 결국 제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과감한 선택을 했어요.

그리고 한국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여러분의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 중에서도 있을 수도 있어요. 이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감춘 채 살아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누군가가 대표로 이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데, 제가 그 짐을 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아직은 젊으니까 다 잃어도 다시 출발할 수 있고, 또 분에 넘치게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것이 어떤 사명감을 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이후에는 예상대로 착착 진행됐어요. 하루 만에 방송 다 잘리고, 한국에서는 생활하기 힘들어지더라고요.

-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여자배우들과는 더 가까워졌는데, 남자배우들과의 관계는 많이 끊어졌어요. 거리를 두더라고요. 예전엔 친하게 지낸 사람이 연락도 안 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얼굴 부딪혀도 남들 시선 의식해서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더라고요. 아예 아는 척 안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 커밍아웃 후에 호주제 폐지 운동, 인권 운동, 파병 반대 운동, 민노당 가입 등 사회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셨는데요?

커밍아웃 전에는 제 개인적 성공과 인기를 생각하는 연예인이었죠. 어딜 가도 돈을 쉽게 벌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고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데에 머리를 썼어요. 하지만 커밍아웃 후에는 일이 없으니까 하나하나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주류에서 비주류로 가고 소수자 입장에 서보니까 주변에 얼마나 힘들게 사는 분들이 많은지를 알게 됐어요.

그런 분들 만나서 얘기하고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더라고요. 제가 일부러 그런 일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것밖에 할 게 없었어요. 그리고 관심이 갔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런 일을 하고 있는데 굉장히 의미 있어요. 커밍아웃을 통해 개인적인 성공을 꿈꾸는 시골아이에서 제 욕심이 없어진 사람이 된 거죠. 조금 더 여유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 것 같아요.

사실 그 전에는 수많은 위기들이 있었어요. 그 고통을 헤어날 수 없는 거예요. 나 혼자 대한민국 사회와 싸워야 한다는 느낌. 그게 너무 힘들어서 외국으로 도망가고도 싶었어요. 그리고 약 같은 나쁜 것에 대한 유혹이 있었어요. 워낙 많은 분들이 욕을 하시니까 집에서 한 달 동안 나가지 못한 적도 있어요. 담배와 술로 폐인처럼 지냈어요. 그리고 장래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저를 구석으로 몰았어요. 이 고통을 잊기 위해 제일 먼저 떠올랐던 방법이 약이었어요. 그 유혹을 극복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대신 담배를 엄청 피웠어요.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선 자살에 대한 충동까지 있었어요. 저희 집에서 한강이 보이는데요. 그 시절엔 이상하게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의 뉴스가 꼭 꽂히더라고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이겨냈어요.

- 어떻게 이겨냈나요?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죠. 부모님, 그리고 제 옆에서 저를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 단 한 사람이 주는 희망의 불빛이 제가 끈을 놓지 않도록 잡아주는 큰 힘이 되더라고요. 절대고독이라면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힘들 때 꼭 한 사람이 제 옆에서 손을 잡아줬어요. 제 옆에서 아무 조건 없이 항상 제 편이 되어 줬던 친구들에게도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 요즘 대학이나 군부대 등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강연을 많이 하신다고요?

우리 젊은이들이 개방된 성문화를 즐기는 것 같지만 얘기를 해보면 꽉 막혀있거나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허심탄회하게 오픈된 공간에서 얘기를 안 해요. 그래서 강연에서 그런 것들에 대해 주로 얘기해요. 또 최근엔 인권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해요. 군부대 내의 동성애 문제가 심각한데 자꾸 감추려고만 해선 안 돼요. 그 사람들을 격리하거나 특별대접해선 안 돼요. 있는 그대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대신 그들의 얘기는 절대 비밀로 해줘야 해요. 다른 사병들이 알았을 땐 왕따라든가 폭력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사실 군부대 내에서 자살하는 친구들도 꽤 있어요.

- 영화 을 통해 첫 주연을 맡으셨는데요.

주진모 씨, 문성근 선배님, 박준석 씨, 김현성 씨,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 명이 주인공이에요. 다섯 명의 인생 실패자들이 모여서 한탕을 노리며 은행 강도가 되는 얘기인데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배신하는 스토리가 굉장히 스타일리쉬하게 진행돼요. 14일에 개봉합니다.

-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의 기분은?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이분들이 나를 놀리나 싶었어요. 왜냐면 제 캐릭터가 저와는 거리감 있는 역할이거든요. 마초에, 욕쟁이에, 담배를 24시간 물고 있고, 마약딜러에, 여자를 거칠게 다루는 인물이에요. 근데 대본을 읽어보니 매력이 있더라고요. 미디어에 비춰지는 저는 여리고 부드러운 이미지인데, 사실 저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모습을 꺼내보자는 생각에 욕심을 냈어요.

- 영화 찍으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일단 제가 힘들었어요. 연기 때문이 아니라 주진모 씨나 김현성 씨나 박준석 씨가 워낙 인물이 훤칠해서 연기에 몰입이 안 되고 자꾸 시선이 인물로 가는 거예요. 하하. 농담이고요. 여자배우가 없어서 현장 분위기가 삭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서로 농담해가면서 굉장히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 3년 만에 연기를 한 소감은?

처음엔 감을 잡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영화 초반에 찍은 장면을 보면 후끈거려요. 감을 못 잡고 헤맸지만 중반 이후로는 잘 찾아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 배우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운전을 못해서 항상 주진모 씨 차를 얻어 타고 다녔어요.

- 왜 운전을 못 하시나요?

제가 워낙 시골사람이라 그런 데 욕심이 없고, 또 기계치에요.

-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꿈이나 계획을 꿀 수 있는 입장이 안 되더라고요. 예전엔 얼마든지 꿈을 펼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계획을 잡을 수 없는 게 계획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최근 인터넷에 제가 이의정 씨와 듀엣 앨범을 낸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전혀 아니에요. 그냥 밥 먹다가 농담 삼아서 "너 노래 다시 하면 오빠가 도와줄게"라고 얘기했던 걸 기사로 썼더라고요. 의정이 아프다는 게 다 쇼 아니냐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로 그런 거 아니에요.

▶ 진행 : 공지영
▶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 (월~토 오후 4시 5분~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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