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반도'로 연기인생에 새로운 전환점 맞아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여덟살 무렵, 제게 가장 큰 마음 속 공포는 '전쟁'이라는 두글자였습니다. 전쟁으로인한 죽음이 어린 저에게도 오랫동안 공포로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제가 평양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려고 하는데 일곱살 짜리 제 아들녀석이 그러더군요. 북한에 가지말라고... 왜그러냐고 했더니 북한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혹시 큰일나면 어떻게 하냐면서요. 30년도 더 전에 제가 가진 공포를 지금의 제아들도 똑같은 공포심으로 갖고 있다는 데 놀랐어요. 우리가 북한에 대해 가진 관념은 여전히 제 어린시절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화가났습니다."

차인표는 앉자마자 목소리를 높였고 마주앉은 탁자에서 몸을 기자 앞으로 공격적으로 디밀었다. 평소의 차분하고 정돈된 모습과는 사뭇달랐다.

영화의 흥행을 떠나서 '한반도'라는 영화에 꼭 참여해야할 명분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배우로서 어떤 캐릭터를 욕심내는 일이나 흥행 귀재 강우석 감독과의 작업에 기대를 갖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누구나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진지하지 못하고 터부시 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우리는 '통일'을 이야기하면 이쪽이다 저쪽이다를 따지다 금세 또 사그라들고 고리타분하다고 이내 한쪽으로 치워(put aside)버리는 일만 반복합니다. 영화가 줄수 있는 영향력과 효과, 파장이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의 것이란 걸 인정한다면 강 감독님이, 그리고 우리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말하고 싶은 통일에 대한 문제제기는 분명 오늘을 사는 시점에서 꼭 한번 해봐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차인표는 강우석 감독의 열다섯번째 영화 '한반도'를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얘기에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라기보다 자신의 소신과 평소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삼청동 한 카페에서 40여분간 쏟아낸 차인표의 폭포수같은 말들은 강감독에게 미안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작품의 선장인 강 감독보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나 통일 일본 미국에 대한 견해가 더욱 선명했고 상대방에게 설득력있었다.

'통일이여 오라'는 수동적, 능동적으로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어려서 불렀던 통일 노래를 예로 들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는 노래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한 얘기인지 몰라요. 그 노래를 보면 우리는 그저 남들이(미국을 포함한 주변 열강)우리한테 통일을 시켜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잖아요. 우리가 그저 수동적으로 통일을 기다려야 한다니...그건 아니죠. 우리가 나서야죠... "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 노래가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가 그런 수동적인 통일에 대한 자세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말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썼다면 반미를 강조했을 것

여기서 영화속 차인표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이고 국익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안고 있는 국무총리의 충실한 수하로 등장하는 국정원 엘리트 서기관 이상현이 국가 자존심을 중시하는 대통령과 외골수 국사학자 최민재의 편으로 선회하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연기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만큼 호연한 차인표로서도 이점은 분명 잘 알고 있을 문제였다. 그는 전적으로 감독의 생각을 존중한다고 신뢰감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은 이해를 위해 살짝 덧붙였다. 총리를 위시해 실리추구를 옹호하는 정재계 영향력있는 집단들의 부상이 시나리오상에 표현됐으나 이는 촬영에서 생략됐다. 다만 이상현이 총리와 미국 대사가 서로 밀담을 나누는 장면을 엿듣게 되는 장면은 편집됐다고 한다. 이상현의 신념변화를 받쳐줄 정황이 상당히 압축된 것이긴 하지만 큰 틀에서 보는 감독의 생각을 존중한다고 했다.

차인표는 다만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제가 썼다면 일본보다는 미국을 더 통일 반대세력으로 강조했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역사가 말해주듯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가 더 복잡미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말이다.

어느덧 불혹(不惑),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제가, 또 우리세대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해줄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역시 통일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세대에 통일이 안되면 정말이지 자식들을 이민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느덧 연기생활 13년이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해왔던 많은 작품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보통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사회적으로 뭔가 역할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최근까지 그런모습을 보여왔다. 입양을 실천했고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남북어린이 희망대사로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마음이 더 조급해졌어요. 오히려 뭔가 더 늦기전에 해놓고 떠나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죠."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던 차인표, 하지만 영화에 대한 무한애정은 놓치지 않았다. 월드컵을 통해 보여준 국민들의 하나된 모습은 단결력이 강한 민족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하는 차인표는 '한반도'가 바로 그런 응집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가슴으로 봐야할 영화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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