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 연출… "만화 원작에서 인생을 뽑아내려 했지요"

2004년 장편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을 통해치밀한 구성력과 독특한 영상을 선보였던 최동훈 감독이 영화 '타짜'(제작 싸이더스FNH)를 촬영 중이다.

허영만 씨의 인기 만화 '타짜'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점, 백윤식ㆍ조승우ㆍ김혜수ㆍ유해진 등 쟁쟁한 배우들이 참여한다는 점, 무엇보다 최 감독이 시나리오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는 점 등으로 영화계의 관심이 높다.

25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최 감독은 "반강제적으로 맡기는 바람에 3년 만에 원작을 다시 읽었는데 만화로 볼 때는 재미있었지만, 시나리오로 쓰려니 무척 힘들었다"며 "각색 작업이 3개월이면 될 줄 알았으나 1년이나 걸렸다"고 힘들었던 작업을 토로했다.

다음은 최동훈 감독과의 일문일답.

--아직까지 신문에 연재중인 인기만화인데 원작과 어떤 차이점이 있나.

▲1부에서 4부까지 모두 봤지만 난 1부가 가장 재미있다. 연재만화이다 보니 수많은 인물이 나왔다 사라지는데 이를 한 판에 꿰는 게 신경이 많이 쓰였다. 150명의 등장인물을 30명으로 줄였고, 원작에서 '인생'을 뽑아내려 했다.

타짜의 인생 결말은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다. 칼리토나 스카페이스 같은 경우 자신의 성공을 향해 달려가다 장렬히 죽는데 그건 너무 상투적이라 느꼈다. 난 이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간다.

--김혜수 씨가 연기하는 정 마담의 역할이 가장 달라졌다. 정 마담의 내레이션이 영화 시작과 끝을 맡는 등 중요한 인물이 됐다.

▲원작의 정 마담은 수동적이다. 정 마담의 캐릭터를 바꾸면서 이 영화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정 마담은 타짜(노름판에서 속임수를 잘 부리는 사람)가 아닌 유일한 설계자다. 또한 고니(조승우 분)는 정 마담을 통해 세상의 일부분을 배우게 된다. 그 배역을 외향적인 이미지가 센 김혜수 씨가 맡게 돼 굳이 정 마담을 세게보이게 하지 않아도 됐다. 내면을 끌어내기 용이하다.

--처음부터 고니 역에 조승우 씨를 염두에 뒀다고 했다. 조승우를 망가뜨려보고 싶다고 했는데.

▲승우 씨는 실제로도 차분하고 착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 조승우를 망가뜨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조승우가 좀 더 활달해 보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망가뜨린다는 건 인물이 갖고 있는 고상한 격을 없앤다는 건데, 실없이 웃고 행동하는 인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역시 조승우 씨가 가진 매력이 있더라. 아무리 망가져도 끝까지 자신의 '저지선'을 갖고 있다.

--원작자 허영만 씨는 만났다고 들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딱 한 마디 하셨다. "원작이랑 똑같이 찍으면 안돼. 원작이랑 똑같으면 누가 영화보러 가겠어"라고. 정말 멋있는 분이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실제 타짜들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달라진 것이 있나.

▲일부러 집어넣지 않았다. 그들의 리얼리티를 따라가려 하지 않았다. 타짜들을 만나면 종국에는 모두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영화의 자문에 응해준 장병윤 선생이 허영만 작가와 김세영 작가('타짜'의 스토리 작가)를 만났던 분이다. 원작이 충분한 취재를 해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화투는 치나. 조승우 씨의 손 대역을 감독이 할 때가 있었다는데.

▲영화를 준비하며 영화아카데미 친구들과 포커나 고스톱을 쳤다. 그러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대사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극중 고광렬의 대사는 거의 친구들과의 고스톱판에서 나온 것들이다.

혼자서 모포 깔아놓고 이 장면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며 화투패를 만지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웃음). 조승우 씨와 유해진 씨와 누가 밑장을 더 잘 까는지 해보았고 이를 모니터로 지켜봤다. 처음엔 내가 잘했는데, 이젠 승우 씨가 더 잘한다.

--출연진이 모두 쟁쟁한 배우다. 이런 배우들을 모아놓으면 경쟁심이 드러날 텐데.

▲저녁은 백윤식 선배랑 먹고, 후식은 김혜수 씨랑 먹고, 술은 조승우ㆍ유해진씨랑 먹는 식이다(웃음). 많은 배우들이 나오니까 오히려 배려를 한다. 모두 선수들이라 하나를 주고 두 개를 받을 줄 안다. 이를테면 평경장 대사를 즉석에서 고니에게 주고, 고니 대사를 평경장에게 줘도 불만이 없다. 다들 연기를 하며 자기가 편한 방법으로 이끌어낼 줄 안다.

--'범죄의 재구성'에 대한 신뢰로 염두에 뒀던 배우들이 다 캐스팅됐다. 부담감도 적지 않을 텐데.

▲'범죄의 재구성' 때는 처음 시나리오를 건넨 배우들에게 다 거절당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뜻한 대로 배우가 구성됐다. 내가 꿈꿨던 대로 이뤄져 좋다. 아마 부담감은 (제작사) 차승재 대표가 느끼지 않을까.

--사기, 도박. 이런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만화 '타짜'도 쓰다 보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써지는 것 같았다. 내가 앨프리드 히치콕을 좋아하나 보다. 국문과 출신이어서 그런지 이야기를 떼었다 붙였다하는 게 재미있다.

요즘은 어린 시절 생각을 많이 한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깡촌 출신이다. 촌놈 떠벌리듯 이야기하는 게 좋다. 거칠고 세련되지 않은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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