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로케중인 영화 '중천'의 이곽 역… "사람이 좋아 선택한 작품이지요"

영화 '데이지' 개봉 전 만났던 깔끔한 복장의 정우성이 아니었다. 27일 중국 헝뎬 촬영소 인근 숙소인 그랜드호텔 국제콘퍼런스센터에서 만난 정우성은 수염을 약간 길렀고 캐주얼한 복장의 편안한 차림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작년 10월 이후 6개월 넘게 머물며 영화 '중천'(감독 조동오, 제작 나비픽처스)을 촬영중이다. 짬짬이 영화 홍보와 CF 촬영 등에 나선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

'중천'은 통일신라 말 혼란기, 귀신을 볼 수 있는 처용대 일원이었던 이곽이 살아 있는 채로 중천(죽은 자가 저승으로 가기 전 49일간 머무는 곳)에서 죽은 연인과 똑같이 생긴 천인 소화를 만나 목숨을 걸고 그를 지키려는 무협 판타지 영화다.

정우성은 이 작품에 대해 "사람이 좋아 선택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비트' '태양은 없다' '유령' '무사' 등 그의 대표작 네 작품의 조감독을 맡았던 조동오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기 때문이었던 것. 나비픽처스의 조민호 대표, 김성수 감독과도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다.

영화 '중천'에 대해 그는 "기본적으로 러브스토리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기억'이라는 화두로 이 영화를 바라보았다"고 말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천'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사람이 좋았다. 조민환 대표, 김성수 감독도 있지만 '성격 안 좋기로' 충무로에서 유명한 김성수 감독 밑에서 8년을 버틴 조동오 감독이 입봉(첫 연출)한다는데 어찌 합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웃음).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결정했다.

'비트'를 촬영하면서 '태양은 없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결정했고, '태양은 없다' 찍으며 고려시대 무사와 노예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서 '무사'를 결정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보고 선택한 영화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데이지' '새드 무비' 정도다.

--중국에서 무협영화를 또 찍는데 '무사' 때와 비교해서 어떤가. 힘들지 않나.

▲그때나 지금이나 힘든지 모르겠다. 물론 몸이야 힘들어 보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모험하는 듯한 느낌이다. '무사' 때 그들의(중국인의) 땅에 있지만 오히려 우리 영화에 그들이 초대된 것이었다. 그 당시 나름대로 좋은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중천' 프로젝트가 가능해졌다.

밤 시간에 대부분 촬영이 이뤄져 밤낮이 바뀐 게 가장 힘들다. 오후 4시부터 촬영 준비해 5~6시 촬영을 시작하고 밤새 촬영한 후 낮에 쉰다. 그래서 늘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무사'에서는 직접 칼에 맞는 등 리얼한 액션이 소개됐는데 '중천'은 무협 판타지여서 액션이 다른가.

▲다른 배우들은 와이어 연기가 많이 들어간다. 판타지 장르이기 때문에 칼도 환상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난 살아 있는 인간이어서 여전히 땅을 기고, 칼을 힘들게 빼야 한다. 내가 와이어 연기를 할 때는 가끔 악을 쓰고 날아갈 때다. 상대에게 삼지창을 맞고 나가 떨어질 때 같은.

--사실 한국에서 몇 차례 무협 판타지 영화가 제작됐지만 크게 성공한 작품은 없다.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판타지라는 장르는 새로운 개척 단계였다. 기술력과 비주얼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중천'에서 기술력과 비주얼은 내용을 보여주는 전달 수단으로만 존재할 뿐 캐릭터와 내용이 살아 있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전생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내게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지만 '기억'이라는 화두를 던져줬다. 관객이 내포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데이지'에 이어 액션 영화를 많이 찍고 있다. 어느 게 더 맞나.

▲난 비도 좋고, 눈도 좋다. 장난감 총도 좋아하고, 장난감 칼도 좋아한다(웃음). 난 액션 영화배우가 아니다. 그렇지만 둘 다 내게 맞다고 믿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지만 '나한테 잘 어울린다'는 믿음을 갖고 임한다.

--'중천'의 이곽이란 역할은 배우 정우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캐릭터인가.

▲배우로서 늘 캐릭터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내가 여태까지 영화를 하면서 얻어왔던 것, 배우 정우성이 추구해왔던 캐릭터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캐릭터다.

--'데이지'의 전지현과 '중천'의 김태희를 비교하자면.

▲전지현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감성적 접근을 한다. 이에 비해 김태희는 분석하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의 이성적 접근을 한다. 그래서 태희씨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다. 처음엔 가상의 공간인 이 상황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보였다. 연기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느끼는 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개인적인 질문이지만 결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나. 이제 나이가 30대 중반이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결혼하지 않으면 결혼이 아주 늦어진다고 말을 하는데 그런 것 같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니 일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긴다. 난 늘 영화속에서 사랑의 판타지 속에 살아간다. 20대 때 느끼는 감성과 지금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인간 정우성으로 느끼는 사랑에 대한 감성이 달라진다. 30대가 되면서 사랑에 대해 겸손해졌다고 할까.

사랑보다는 일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생각 같아서는 '중천' 끝나고 내 영화 만들어 내가 출연하고, 그 후 다른 영화를 또 찍고 싶다.

--이제 연기 경력 10년이 훌쩍 지났다. 초심과 달라진 것이 있나.

▲작업에 임하는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할 줄 아는 방법을 배웠고, 즐길 수 있는 마음자세가 돼 여유로워졌다. 내게 영화는 여전히 신기하다. 내가 연기한 장면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그 순간이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영화는 내게 '감독'이라는 꿈을 꾸게 해줬다. 할리우드의 '드림웍스'란회사 이름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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