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옥상'서 단독 주연 맡고 노심초사… "우울한 분이 300만명쯤이면 좋겠어요"

영화배우 봉태규(25)는 갈수록 특별한 존재가 돼간다. 툭 까놓고 말해 그저 그런 외모에, 그저 그런 체격이다. 그렇다고 스타일이 남다른 것도 아니다. 예전 같으면 언감생심 배우를 꿈꿨을까 하는 생각도 가질 만큼.

그런 그가 급기야 단독 주연을 맡았다. 16일 개봉하는 '방과 후 옥상'(감독 이석훈, 제작 씨네온 엔터테인먼트)에서다.

숱한 단역,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의 인상적인 조연을 거쳐 '광식이 동생 광태'를 통해 투톱 주연까지 꿰차더니 이제 봉태규 이름 석자가 맨 앞에 분명하게 새겨지는 단독 주연까지 맡게 된 것.

'방과 후 옥상'은 봉태규를 놓고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억세게 운없는 남궁달이 '왕따탈출' 클리닉에서 '수학'한 후 전학 온 첫날 학교 '짱'을 건드리는 바람에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절박한 탈출기를 담았다. 남궁달을 연기한 봉태규는 직접 가서 봐야 한다. 얼마나 딱 맞게 연기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재미와 함께 알싸한 느낌이 전해진다.

"개봉을 앞두고 이렇게까지 떨릴지 몰랐다. 피를 말리는 심정이다"고 말하는 봉태규를 만났다.

◇ "나중에 재평가받고 싶지 않다. 바로 지금 받았으면 좋겠다"

어찌 부담이 되지 않겠나. 배우로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인데.

"이렇게까지 많은 오락프로그램에 나가본 적이 없어요. 누군가 저에게 '안쓰러워 보일 정도'라고 그러시더군요. 하하. 지금까지 영화 흥행은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와주신다면 뭐든 할 것 같아요."

그는 "나중에 재평가받는 영화로 남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는 좋은데, 흥행에선 고배를 마셨던 몇몇 작품이 있다. 서둘러 종영된 후 부랴부랴 '○사모'라며 관객의 자발적 모임이 결성되기도 한다. 그런 영화는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은 개봉할 당시 평가받고 싶다는, 흥행도 되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사다.

"우울하지만 기분을 풀고 싶은 사람이 전국에 한 300만쯤 되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 다 우리 영화 보면 기분이 풀릴 텐데."

◇ "처음엔 단독 주연이라 거절했다"

단독 주연을 맡기까지 정말 죽도록 노력했다. 쉬운 길이 아니었다. 대중 앞에서야 할 배우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보낸다는 건.

"알아달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너무 몰라줄 땐 힘들었어요. 그걸 버텨낸 힘은 '객기'죠. 아무리 옆에서 안된다고 말려도, '아냐 내가 맞아'라고 말하는 객기요."

또한 운도 따랐다는 것도 감사히 여긴다.

"이 바닥이 그렇잖아요. 다른 분야는 정말 죽도록 노력하면 최소한 소기의 성과는 거두는데 여긴 아무것도 못 얻을 수 있어요. 제가 이만큼 온 건 노력도 노력이지만 운이 따른 거죠."

'광식이 동생 광태' 촬영 초반인 작년 2월께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다. 거절했다. 단독 주연이었기 때문이다. 4월25일 '안녕 UFO'의 김진민 감독이 전화를 걸어왔다. "뭐하냐"고 물어서 "TV 본다"고 대답했다. 그 날을 확실히 기억하는 건 즐겨보던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신해철이 처음 등장한 날이기 때문.

끝날 때쯤 다시 김 감독이 전화해 불러냈다. 그 자리에 '방과 후 옥상'의 프로듀서가 나와 있었다. "몇 달이 지났기 때문에 당연히 이미 캐스팅이 끝났을 줄 알았어요. 이석훈 감독님 단편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죠."

이 감독의 단편 '순간접착제'를 보고 팬이 됐다.

"이런 사람이 장편을 만들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그의 영화에 내가 출연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생각만 해도 흥분되더라구요."

◇ 작품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첫 주연을 맡고 달라졌다. 그 자신 오랜 무명 세월을 거쳤기에 조연이든 단역이든 동료 배우의 연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배우 대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간섭을 많이 했다.

"제가 동료 배우에게 가장 주문했던 건 '오버하지 말자'였어요. 이미 상황이 웃긴데 배우까지 오버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죠. 직접 말하지 못할 때는 감독님이나 스태프에게 대신 전해달라고도 했습니다."

충분히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굳이 다른 것까지 집어넣으려 한다면 '과유불급'. 이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애드리브를 준비해와도 그 신 안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덕택에 코미디 영화이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영상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졌다. 이 감독은 철저한 준비로 촬영분량 중 25분 가량만 편집했을 정도로 꼭 필요한 분량만큼 찍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코믹 버전이라는 일부의 평가에도 단호하게 말한다. "캐릭터가 달라요. 유약하지도, 순수하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놀림 받는다고 화내지도 않고, 짜증내지도 않나요?"

맞다. 영화 속 남궁달은 방과 후 옥상에서 학교 짱과 한판 붙는 걸 피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쓴다. 선생님 앞에서 담배도 피우고, 자신보다 못한 친구를 괴롭히기도 한다. 반드시 착한 약자가 아니라는 것.

"제 자신의 연기에 대한 만족도는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우리 영화가 어떤 영화에도 꿀리지 않는다는 건 자신할 수 있어요. 번듯한 자식을 보며 '잘나디 잘난 내 자식입니다'라고 말하는 부모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배우로서 앞으로 보여줄 게 무궁무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봉태규에게서 실력이 밑받침된 패기를 분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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