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지도자들 곤혹스러움 호소… 여중농구팀 선수 수급 차질

지난 5월, 여자프로농구 구리 금호생명 사령탑으로 막 부임한 이상윤 감독은 새로 받은 명함을 좀처럼 건네는 일이 없다고 했다. 당시 우리은행 전 감독이었던 박명수 감독의 소속팀 선수에 대한 성추행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어 여자프로농구 감독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시선은 여전하다. 성폭력 실태를 고발한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가 연달아 방송되면서 여자농구팀을 이끌고 있는 남성 지도자들이 곤혹스러움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부도덕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이 전체 지도자의 모습인 양 비춰지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다. 나아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운동시키는 것을 꺼려하면서 중학교 여자농구팀은 선수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여자농구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범죄자 취급 당하기도…"

삼성생명 정덕화 감독은 “아무래도 잘못된 시선으로 볼까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선수들과 개인 미팅을 할 때도 반드시 오픈된 공간에서 하는 등 사소한 오해의 소지도 없애기 위해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주위에서 “이래서야 마음놓고 애들 농구시킬 수 있겠냐”는 얘기를 들을 때면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금호생명 이상윤 감독 역시 같은 마음이다.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른 이상윤 감독은 “어느날 아내가 ‘친구들이 남편 조심시키라는 말을 했다’며 우스개소리로 말하더라”면서 “모두 (박명수 감독과) 같은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팀 감독들보다 직접적으로 파장을 느끼고 있는 것은 중고등학교 지도자들이다. 방송을 본 학부모들이 농구시키기를 꺼려하고 있기 때문. 이 때문에 중학교팀들은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광 홍농중학교에서 농구팀을 이끌고 있는 심재균 감독은 “선수 스카우트를 하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면서 “초등학교 졸업반 학생 중에 신장 및 체격 조건이 좋은 학생이 있어 농구팀으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무려 6개월간 부모를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또 “시골 어르신들의 경우 방송을 보고 범죄자 취급을 하기도 했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2월까지 숭의여중 농구팀을 지도했던 김진홍 코치도 “학부모들이 여자 코치를 원해서 여자 코치가 있는 선일여중으로 옮겨간 선수가 몇 명 있었다”면서 “선수 스카우트에 제약이 많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겠다’는 학부모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여자프로농구 신세계에서 7년간 코치 생활을 했고 현재 동국대 감독을 맡고 있는 이호근 감독은 농구선수 딸을 둔 학부모다. 이호근 감독의 딸 민지(12)는 현재 선일여중에서 포워드로 활약중이다. 이 감독은 “농구를 시키는 부모 입장에서 지도자를 믿지 않으면 시킬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부모들이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성폭력에 고통받는 선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번에 바뀔 수는 없다. 구단, 연맹, 나아가 대한체육회와 국가가 나서지 않는 한 스포츠계 성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고, ‘죄없는’ 지도자들이 ‘죄인’ 취급을 받는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기업이미지’를 우선시하며 덮기에 급급했던 구단들도 실효성 있는 성폭력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구체적인 성폭력 방지책을 내놓을 수 없다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야 한다. 최근 금호생명은 52세의 정미라 코치를 수석 코치로 영입했다. 이십대 딸을 둔 정미라 코치는 국가대표 가드 출신으로 선수들의 기술 지도 뿐만 아니라 생활 속 조언자도 될 전망이다.

WKBL(여자농구연맹)도 실효성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있으나 마나 한 성폭력 상담 전화 ‘핫라인’을 개설한 뒤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는 식의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정확한 진상조사와 조사결과에 따른 징계, 재발방지 등의 체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단지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소문의 진위여부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한체육회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와 협약을 통해 ▲운동선수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 등 각종 인권 침해 실태 조사 ▲인권침해 확인 사안에 대해 징계 및 사법적 조치 촉구 ▲선수, 지도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장단기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협약만이라도 제대로 이행된다면, 첫 발은 떼는 셈이다.

법도 문제다. 선수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던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은 2년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검찰이 구형한 1년6개월의 징역형에 비해 낮은 형벌을 받은 이유에 대해 법원은 "전과가 없다는 점, 국가대표 감독 등 10여년간 여자농구에 기여했다는 점, 사건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했고 술을 마신 초범이라 해서 형이 가벼워진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재판 결과가 반복되는 한 성폭력도 반복된다는 사실을 법원은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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