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재는 지난 13일 KBO 이사회 말미에 전격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사들은 곧바로 정지태 전 두산 구단주대행을 추천했다. 사진은 코로나19로 인해 시즌 개막 시기를 논의했던 올 상반기 이사회 모습.

올 연말 3년 임기가 끝나는 KBO(한국야구위원회) 정운찬 총재가 연임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은 약 두달 전부터 야구계에 파다하게 퍼졌다. 야구인들은 과연 정총재가 언제 자신의 거취를 밝히고 차기 총재가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의 촉각을 세웠다.

D-데이는 지난 13일이었다. KBO는 이날 이사회(사장단회의)를 열었다. 첫 의제인 포스트시즌 수익 배분에 관한 새로운 방침이 의결된 뒤 느닷없이 정총재가 “나는 연임 의사가 없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9명의 이사(한화 불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정지태 전 두산중공업 부회장을 차기 총재로 추천했다. 정 전부회장은 두산 구단주대행을 12년 지냈기 때문에 자격이나 능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구단주총회에서 재적회원 4분의 3(8명)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내년 1월부터 총재 임기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정 전부회장의 추천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KBO 규약을 어긴 게 가장 큰 문제다. 규약 22조 3항에 따르면 `미리 통지한 사항에 대해서만 의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를 어기고 사전 통지하지 않은 사항을 의결한 것(통지하지 않은 사항이라도 상정, 의결할수 있으나 이는 전원 출석에 한한다).

총재가 이사회에서 “연임않는다”는 의사를 밝힐지 어쩔지 사전에 모르는 상태에서 이사들이 마음대로 차기 총재를 내정해 추천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총재가 연임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뒤 1주일 후든 열흘 후든 다음 이사회에서 사전 통지한 안건으로 새총재 추천을 의결하는 것이 적법한 절차다. 그러면 왜 이사들이 일사천리로 ‘쿠데타식’으로 규약을 위반하며 의결을 했을까.

정치권 입김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총재 추천을 서둘렀다는 설(說)은 일단 많은 야구인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야구계에 오래 몸담아 야구 발전에 대한 비전이 있는 인사를 총재로 추대해야 프로야구 산업을 잘 이끌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전부회장은 적격자이면서도 ‘흠’이 있다.

정운찬 총재에 이어 KBO 총재로 추천된 정지태 전 두산중공업 부회장.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재직시 자회사인 두산건설에 부당지원한 배임 혐의로 고발돼, 서울중앙지검의 조사를 받고 있는 탓이다. 모 변호사는 “업무상 배임은 개인형사 책임을 진다. 수사 진행 상태에 따라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설수도 있다”고 말한다.

“임기중 사퇴 가능성도 있는, 사법기관에 고발당한 인사를 꼭 총재로 추천해야 되느냐”는 야구계의 반발이 있을수도 있는데 왜 정 전부회장이 추천됐을까.

여기에는 두산그룹의 극심한 경영난이 한몫을 한다. 두산베어스는 연 15억원에 달하는 KBO 회비를 10개 구단중 유일하게 내지 못하고 있다(언론보도후 11월중 납입을 뒤늦게 약속). 두산베어스 매각설도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두산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통합 마케팅도 계속 미뤄야 할 상황이다. 이 모든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두산 맨’을 총재로 추천하는 것이다.

일부 야구인들이 짐작하는 대로 정 전부회장을 추천하는 데는 두산 J사장(66)이 앞장섰다는 설이 유력하다. 정 전부회장이 총재로 취임하면 그 공로로 임기 말년의 J사장은 자동적으로 유임될 수 있다. 또 야구계에 떠도는 소문대로 K단장을 KBO사무총장으로 전출시키면 운영비도 절감할 수 있어 ‘1석3조’다.

그러면 사장 취임한 지 3년이 됐고 사장들 중 최연장자이지만 평소 야구계에 파워가 없던 J사장이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정 전부회장을 영입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Y대 동문 파워’가 있다고 믿을만한 소식통이 전한다. J사장을 비롯해 LG, SK(이사회 다음날 사장 교체), KT, 롯데 등 10개 구단 사장 중 무려 5명이 Y대 출신이어서 동문 파워로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당연히 당사자들은 부인하겠지만 그럴 개연성은 매우 큼).

이번 이사회의 ‘반란’으로 총재 지위가 격하된 것도 큰 문제다. 3년간 모신 총재가 사임한다면 예를 갖춰 명예로운 퇴임을 유도해야 했으나, “연임 않는다”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규약을 어기면서까지 차기 총재를 추천한 것은 이사회의 지나친 월권이다. 누구 말대로 “총재쯤은 우리 힘으로 날릴수 있다”는 오만함이 도사려 있다.

또 400억원에 달하는 KBO 기금이 훼손될수 있다는 것도 야구인들의 큰 걱정거리다. 순수 야구발전에만 쓰여야 할 기금이 포스트시즌 배당금 손실 보전, 부실구단 지원에도 쓰일수 있는 여지를 지난 이사회에서 남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KBO 이사들이 일 처리를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해 정치권에서 두 번째 입김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규약 위반, 고발당한 인사의 총재추천 등을 문제삼아 정치권 인사의 총재 추천을 각 구단에 압박할 수도 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사장들이라면 끝까지 외부인사 배척에 힘써 줄 것을 기대해본다. 본지 객원기자/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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