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퓨처스(2군)리그 한화-LG전에서 사상 최초로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로봇심판)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왼쪽은 운영실에서 외야, 1, 3루에 위치한 카메라로 측정된 볼 판정 관련 데이터를 확인하는 모습. 오른쪽은 이날 경기 정은재 주심이심판이 음성 수신 결과에 따라 수신호로 스트라이크 콜을 하는 모습.
결론부터 말하면 ‘로봇 심판’은 현 시점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왜냐하면, 야구 산업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제도임에도 도입 여부에 관한 수백만 팬심(心)이 빠졌기 때문이다. 또 경기 주체인 선수들, 코칭스태프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4일 경기도 이천 LG 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LG-한화의 퓨처스(2군)리그 경기에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인 로봇 심판을 등장시켰다. 정은재 주심은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고 짧은 적막이 흐른 뒤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로봇 심판은 실제 로봇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경기장 내.외야에 설치된 3대의 카메라가 측정한 투구의 궤적과 위치 정보를 받아 자체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에 적용해 볼과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번 테스트에서 몇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주심의 판정은 평소보다 2초 느렸다. 로봇심판이 볼 판정을 하고 주심에게 전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때문이었다. LG투수 성재헌은 “공을 던진 다음 포수에게 되돌려받을 때 콜이 나와 템포 조절이 힘들었다”고 했다.

정은재 주심도 “심판과 선수가 판정을 기다리느라 경기의 긴박감이 낮고 맥이 끊기는 듯 했다”고 말했다. LG 류중일감독은 “무엇보다 경기의 박진감이 떨어지는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팀의 한 경기 투구수가 130구라면 양팀 합쳐 260번의 정지된 순간이 매 경기 일어난다. 경기 흐름이 이렇게 자주 끊기면 심각한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완벽하리라던 로봇의 판정이 의외로 일관성이 없었다. 정 주심은 “어떤 공은 존에서 많이 벗어났는데 로봇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그 공은 내가 볼이라고 선언해 보완했다”고 말했다.

또 현재 기술은 타자의 신장만을 기준으로 존을 설정한 만큼 예를 들어, 좌타자 강백호(kt)가 타격시 오른발을 옆으로 빼는 등 선수의 순간적인 타격폼 바꾸기의 세밀한 변화는 잡아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지난 4일 퓨처스(2군) 리그 한화-LG전에서 최초로 도입한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로봇심판)을 위해 1루 측에 설치된 로봇심판 전용 투구 추적 카메라. 외야, 1, 3루 총 3대의 카메라가 사전 측정된 마운드, 홈 플레이트, 베이스 등 고정 그라운드 위치 정보를 토대로 모든 투구를 실시간 추적한다.

KBO는 10월 17일까지 총 26경기의 2군 리그에서 로봇 심판을 시범 운영한 뒤 문제점을 보완, 2022년 1군 리그에 도입할 계획이다.

필자는 모 야구 동아리 회원 3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도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20명(59%)으로 찬성파 14명(41%)에 비해 더 많았다. 먼저, 찬성하는 쪽은 ‘공정’을 내세웠다. 오심으로 인해 선수들이 절대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어떤 이유든 그라운드에서 시비거리는 없애야 한다고 했다. 비디오 판독의 성공적인 정착을 꼽기도 했다.

반대파는, 판정시간 2초는 너무 길어 경기가 늘어지고 맥이 빠지는 걸 가장 우려했다(경기 시간이 6~7분 지연될 수 있음). 스포츠는 ‘사람냄새’가 나야 되는데 로봇이 경기의 주된 요소인 볼 판정을 장악해 버리면 관중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봤다.

야구가 미국에서 첫 도입된 1871년 이후 150년간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은 심판이 투구후 곧장 외치는 판정 덕분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 세상살이와 마찬가지로 불운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재미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필자의 견해를 덧붙이면, 주심의 주요한 권한을 로봇이 가져간다는 것은 절대 반대다. 기업체 CEO와 비유하면, 경영권은 있지만 인사권을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사권이 없는 CEO는 ‘반쪽 경영자’이듯이 볼 판정(인사권)을 배제당한 주심 역시 홈에서의 아웃, 세이프(경영권)가 주업무라면 권위는 반쪽, 아니 그 이상으로 줄어든다.

어떤 팬은 “야구장에 로봇 심판이 등장하면 야구를 싫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다. 야구장엘 아예 가지 않거나 집에서 경기의 하이라이트만 보는 팬들이 증가할 수 있다는 걸 KBO 관계자는 직시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서두에 이야기했지만 로봇심판 도입은 야구 산업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팬이나 선수단의 여론을 묻지 않고 강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올바르지 못한 처사다. 1000명 이상의 팬 여론조사를 했을 때 결과가 야구동아리 회원들과 다를수 있지만 20%만 반대한다 해도 그만큼 관중이 줄어들 수 있으니 도입 여부를 더욱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일단, 당장 여론조사를 실시해야 하지 않을까. 늦긴 했지만 야구 전문가들을 초빙한 공청회를 열면 더 좋다. KBO 관계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기대해본다. 본지 객원기자/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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