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 연합뉴스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이다. 사실을 사실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KBO는 지난 25일 오후 야구회관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강정호(33)에 대한 징계를 심의했다. KBO는 개인자격으로 임의탈퇴 복귀를 신청한 강정호에 대해 과거 도로교통법 위반 사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리그 품위를 손상시킨 점을 들어 야구규약 151조에 의거, 선수 등록 시점부터 1년간 유기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 제재를 부과했다.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에서 뛰던 시절인 2016년 강정호는 서울 강남 근처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 그리고 이전 KBO리그 넥센 시절이었던 2009년과 2011년에 했던 두 번의 음주운전 사실이 함께 적발이 되면서 '음주운전 삼진아웃제(3아웃)'가 적용, 법원으로부터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전 두 번의 사례가 포함, 세 번의 명백한 음주운전 사실이 밝혀지면서 강정호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자발급이 어려워졌고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도 무너졌다. 2019시즌에 간신히 피츠버그와 재계약 했지만 시즌 후에 가차없이 방출됐다. 어떻게든 남아서 빅리그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메이저리그 개막이 미뤄졌고 갈 곳을 찾지 못한 강정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KBO리그 유턴을 결심, 원 소속팀인 히어로즈를 거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KBO에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전날 상벌위원회가 열렸고 징계 수위가 결정됐다.

KBO 상벌위원회. 사진=김성태 기자
KBO가 언급한 야구규약 151조 7항을 살펴보면 음주운전 3회 이상 발생시, 3년 이상 유기 실격처분을 받게 된다. 삼진아웃으로 실형을 받았으니 강정호의 음주운전은 분명 세 번이다. 하지만 KBO는 3년 이상이 아닌 1년 유기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 제제를 부과했다.

KBO 상벌위는 "강정호는 미국 메이저리그 소속이던 2016년 국내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후 조사 과정에서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의 음주운전 적발 건이 추가로 확인됐다. 상벌위원회는 과거 미신고 했던 음주운전 사실과 음주로 인한 사고의 경중 등을 살펴보고, 강정호가 프로야구 선수로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 같이 제재했다"고 말했다.

KBO는 2016년에 저질렀던 음주운전은 KBO리그 소속이 아닌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소속이었으며, 야구규약 151조가 2018년 9월 11일에 개정이 됐기에 소급적용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과거 미신고 했던 두 번의 음주운전 적발을 놓고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

규약 151조 6항에는 음주운전 2회 발생시, 위에 언급된 4개 항의 제재수준보다 가중된 처벌을 받는다고 적혀있다. 언급된 단일 항목 가운데 가장 높은 징계 수위는 음주 인사 사고로 출장정지 120시간, 봉사활동 240시간이 부여된다. KBO는 2회 음주운전 항목을 적용, 가중으로 처벌을 내렸고 1년(144경기) 유기 실격, 그리고 봉사활동 300시간 징계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강정호는 분명 삼진아웃, 세 번의 음주운전을 저질렀지만 KBO는 두 번의 음주운전에 해당하는 징계 수위로 결론을 내렸다. 이로 인해 강정호는 빠르면 당장 내년에 그라운드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소속팀 키움은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징계 수위가 나왔으니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야구규약 151조.
지록위마(指鹿爲馬)에는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환관이었던 조고가 뒤이어 황제 자리에 오른 이세황제의 권력을 앞세워 승상이 된 후, 자신이 황제가 되고자 밑에 있는 신하를 시험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어느 날, 조고는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것은 말이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황제는 "승상,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사슴 아닌가"라고 답했다.

그러자 조고는 "아니옵니다. 이것은 분명 말이옵니다"라고 말했고 곧바로 대신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신하는 말이라고 하며 조고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몇몇 신하들은 사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모두 은밀하게 처형했다. 이후 신하들은 무서워서 조고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의 규약을 적용한다면 세 번의 음주운전을 했기에 3년 유기 실격처분을 받는 것이 맞지만 해당 규약이 2018년에 개정이 됐기에 2016년 메이저리그 시절의 음주운전을 포함, 모두 소급 적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무리가 있다. 하지만 야구규약 부칙 제1조에 근거, 총재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다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보다 명확하게 제재를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KBO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KBO는 무엇이 무서워서 강정호라는 폭탄을 키움에 떠넘겼을까. 강정호나 혹은 강한 징계로 야기될 법정 다툼이 무서운 조고처럼 보였을까. 하지만 조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야심차게 클린베이스볼을 외쳤지만 음주운전에 관대한 KBO에 실망해서 프로야구를 떠나는 팬들이 아닐까.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를 치르면서 팬들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지만, 아직도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피츠버그 시절의 강정호. 스포츠코리아 제공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