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은퇴 선언 후 코치 생활을 시작한 NC 손시헌 코치. (사진=윤승재 기자)
[스포츠한국 창원=윤승재 기자] “시원섭섭하네요.”

베테랑 내야수 손시헌이 불혹의 나이에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2003년 두산의 육성 선수로서 시작했던 17년의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이제 그는 지도자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NC는 지난 11일 2020시즌 코칭스태프 구성을 확정 지으면서 손시헌의 은퇴 소식도 함께 알렸다. 그리고 손시헌은 내년 시즌 팀 코칭스태프 리스트에 2군 수비코치로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미 그의 손에는 펑고 배트가 쥐어져 있다. 손시헌은 약 2주 전부터 창원NC파크로 출근해 시즌 마무리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펑고를 받던 그였지만, 지금은 직접 펑고 배트를 휘둘러 선수들의 수비 훈련을 돕고 있다.

펑고 자세가 아직 어색하다며 마무리캠프에서 자세를 확실히 다져오겠다고 각오한 그. 현재 그는 어색한 펑고 자세뿐만 아니라 갓 2주째 접어든 코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창원NC파크에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손시헌은 “시원섭섭하면서도 홀가분하다”라고 짤막하게 은퇴 소감을 전한 뒤, “코치로 출근한 지 이제 두 턴이 지났는데, 내가 어떻게 선수들을 지도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다”라며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17년 동안의 선수 생활을 뒤로 한 채 이제는 한 발짝 물러서 파울라인 바깥쪽에서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을 지도하는 입장이 됐다. 오랜 시간 녹색 다이아몬드를 누비던 그였기에 벌써 파울라인 안쪽의 세상이 그립지는 않을까.

2003년 데뷔 시즌 앳된 모습의 손시헌. 이때부터 육성선수 신화가 시작됐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 두산 데뷔날과 NC 첫 가을야구 확정날 기억에 남아…못 이룬 우승 꿈은 지도자로

통산 1559경기 타율 0.272(4657타수 1265안타) 70홈런 31도루 550타점 546득점, 그리고 골든글러브 2회 수상(2005, 2009)까지. 손시헌이 2003년 데뷔 이후 17년간 프로에서 써 내려간 기록들이다.

2003년 두산에 육성 선수로 입단한 손시헌은 그해 당시 김경문 감독의 눈에 들어 주전 유격수로 발탁돼 ‘육성 선수 신화’를 써 내려갔다. 두산의 화수분 야구, 발야구의 선두주자로서 2000년대 후반 두산이 다시 상위권에 도약할 수 있게 만든 일등 공신 중 한 명이었다. 국내 최고의 유격수로 발돋움한 손시헌은 2014년 FA 자격을 얻은 뒤 NC로 이적, 이번엔 신생팀 NC를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산에서 9시즌(군 기간 제외), NC에서 6시즌. 오랜 기간 두 팀에 몸담으면서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까.

손시헌은 2003년 7월 1일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육성 선수로 입단한 그에게 프로 데뷔의 기회가 찾아온 날이기 때문이다. 손시헌은 “그날 아침부터 다 기억난다. 1군 첫 출근날이었는데 아버지가 ‘나가봤자 대수비로 나갈 텐데 마음 편하게 하고 가’라고 말씀하신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갔더니 선발 라인업에 올라 있더라. TV에서 보던 선배들이 우리 팀에서 뛰고 있고, 당시 삼성전이었는데 1루수에 (이)승엽이 형이 있었다. 그때 나눴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NC에서는 “팀이 첫 가을야구에 진출했을 때”라고 답했다. 그는 “(이)종욱이와 NC로 처음 이적할 때 술 마시면서 ‘신생팀인 이 팀을 첫 4강에 올려놓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라고 하고 창원에 내려왔다”라면서 “그런데 이적 첫해 목표를 달성했다. 종욱이와 ‘우리가 오자마자 목표를 달성했어’라고 기뻐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두 팀을 모두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한 그, 하지만 정작 우승 반지와는 인연이 없었다. 두산에서 두 차례(2005, 2013), NC에서 한 차례(2016) 총 세 차례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지만, 모두 고배를 마시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우승에 대한 아쉬움도 많을 터.

손시헌은 “선수 시절엔 우승과 인연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도자로서 인연이 있을지 누가 알겠나. 이번엔 지도자로서 도전해볼 생각이다”라며 빙긋 웃었다.

손시헌은 2003년 데뷔부터 2019년 은퇴까지, 17년 동안 두 팀에서 줄곧 등번호 13번을 달았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 국내 최고의 유격수가 달았던 등번호 ‘13번’ 물려받을 선수는 누구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손시헌은 2019시즌을 끝으로 선수 은퇴를 택했다. 이제 지도자로서 후배 양성에 본격적으로 힘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선배 그리고 코치의 시선으로 봤을 때 NC 선수 중 가능성이 많고, 키우고 싶은 선수가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손시헌은 “어쩔 수 없이 유격수에 많은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라면서 “잠깐 땜빵으로 맡는 것이 아닌, 10~15년 이상 한 자리에서 붙박이로 뛸 수 있는 유격수를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충분히 우리 팀에 있다”라고 말하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한편, 손시헌은 코치 생활 시작과 함께 데뷔 때부터 입어 온 ‘13번 유니폼’을 벗을 예정이다. 국내 최고의 유격수가 달았던 등번호인 만큼 그 번호를 물려받고 싶을 후배 선수들도 많을 터. 인터뷰 전부터 이미 기자의 귀에 두세 명의 지원자(?)의 이름이 들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손시헌 코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다소 의외의 인물이었다. 손시헌은 “벌써 나한테 정식으로 요청한 선수가 있다. 박준영이라고, 내년에 제댄데 군대에서 미리 요청을 해와서 (유니폼 배번)담당에게 얘기해뒀다”라고 전했다.

1997년생 박준영은 2016년 신인 1차지명으로 NC에 입단한 뒤 투수로 전향해 그 가능성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팔꿈치 인대 손상 진단을 받으며 긴 재활 기간에 들어갔고, 재활과 함께 고교 시절 주 포지션이었던 유격수로 다시 전향했다. 그리고 그는 재활기간 동안 군입대를 택해 지난해 4월 현역으로 입대했다.

손시헌 코치는 그에 대해 “투수를 했던 선수라 어깨가 강하다. 아마 시절에도 유격수로 시합을 더 많이 나간 선수라 수비 능력도 기대가 되는 선수다. 다만 타격은 본 적이 많이 없어서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비록 같이 뛴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손 코치였다. 유격수 포지션, 그리고 자신의 등번호를 물려받을 선수에 대한 손 코치의 애착을 엿볼 수 있었다.

손시헌 코치는 많은 훈련량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선수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 “많은 훈련량으로 탄탄한 기본기 갖춘 선수 육성할 것”

이제 막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손시헌은 향후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을까.

손시헌은 “많은 훈련량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선수를 육성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그는 아마 야구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아마 야구 현실이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기본기가 약한 상태로 프로에 오는 경우가 많고, 앞으로도 더 그럴 것 같다”라며 “어린 선수들의 훈련량이 그동안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훈련량을 더 늘릴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이동욱 감독의 기조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동욱 감독은 이번 시즌 마무리캠프의 목표로 “상황 대응 능력과 기본기를 다지는 데 힘쓰겠다”라고 전했다. 손시헌 코치도 이와 같은 기조로 훈련을 지도할 생각이다. 손 코치는“ 퓨처스 코치로서 감각적인 부분보다는 훈련량으로 기본기를 더 탄탄하게 다지게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과 사가 확실한 코치’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는 형 같지만, 안에서는 확실하고 엄격한 코치가 되고 싶다”라면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 더 많이 공부하고 선수들을 잘 키워서 퓨처스 코치로서 좋은 선수들을 1군에 많이 올려보내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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