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의사를 밝힌 김기태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 김기태 감독의 동행야구가 약 4년 반 만에 막을 내렸다. 2015년 KIA타이거즈의 지휘봉을 잡은 김기태 감독은 2017년 우승을 일궈내며 3년 재계약에도 성공했으나, 2018년 5위, 그리고 2019년 5월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결국 자진 사퇴했다.

이유는 당연히 성적 부진 때문이었다. 올 시즌 KIA의 성적은 13승1무30패, 1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30패 고지를 밟았다. 승률은 0.302로 3할도 간당간당한 처지다. 김기태 감독은 30패가 되기 전 16일 경기 직전 자진 사퇴를 선언했으나, 승리의 특효약이 되진 못했다.

세대교체 실패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KIA의 주전 선수들은 대부분 30대들이다. 특히 30대 후반의 최형우와 이범호, 김주찬 등 노장들의 성적에 의존하는 처지다. 30대 라인에 들어선 안치홍, 김선빈 등도 덩달아 부진에 휩싸이자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부진이 깊어지자 박찬호, 이창진 등 뉴페이스들이 두각을 드러내며 희망을 주나 싶었지만, 이는 순리가 아닌 요행에 가까운 세대교체였다. 젊은 선수들의 1군 경험 시간을 차근차근 늘려가며 자연스레 세대교체를 이룬 것이 아니라, 베테랑 선수들의 극심한 부진 속에 어린 선수들을 급하게 투입하며 급작스럽게 이뤄진 세대교체이기 때문이다.

2017년 우승 이후, 우승 멤버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 속에 팀 리빌딩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지적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결국 우승 감독 김기태는 세대교체 실패, 왕조 구축 실패와 함께 타이거즈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선수들의 헹가레를 받고 있는 김기태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 2015년 타이거즈 리빌딩의 시작, 그 중심엔 김기태 감독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보면 김기태 감독은 타이거즈의 세대교체를 이뤄낸 감독이기도 하다. 2015년 부임 직후부터 김기태 감독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팀 리빌딩에 들어간 덕에 KIA는 2017년 그 효과를 맛볼 수 있었다.

김기태 감독 부임 당시 KIA는 리그 최약체로 꼽힐 정도로 아쉬운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안치홍-김선빈 키스톤콤비가 동반 입대로 팀을 이탈했고, 중견수 이대형까지 놓아주면서 센터라인에 큰 공백이 생겼다. 김주찬, 이범호 등 베테랑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소수의 그들만으로 팀 전력을 대폭 상승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김기태 감독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부임 3년차인 2017년을 바라보고 차근차근 리빌딩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에 김 감독은 김호령과 박찬호, 노수광 등 뉴페이스들을 발굴해 과감하게 주전에 투입하면서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차근차근 리빌딩을 이어가던 KIA는 2017년 그 방점을 찍었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바탕으로 안치홍-김선빈의 군 제대, 베테랑 최형우 영입, SK와의 4대4 트레이드 등 대대적인 전력 보강이 이뤄졌다. 표면상으로는 외부 영입이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했지만, 노수광, 이홍구 등 체계적인 리빌딩 속에 잘 성장한 덕에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명기, 김민식 등 뉴페이스들이 합류한 KIA는 2년 전 송은범의 보상선수로 한화에서 데려온 임기영까지 1군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리빌딩의 방점을 찍었다. 그렇게 KIA는 투타 완벽한 조화 속에 8년 만에 그리던 우승을 차지했다.

16일 KIA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지휘하고 있는 김기태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 우승 이후 리빌딩 전무했던 KIA, 왕조 구축+세대교체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친 김기태 감독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KIA의 리빌딩은 여기서 멈췄다. 2018시즌을 준비하면서 KIA는 우승 멤버들을 붙잡는 데 힘썼을 뿐, 새로운 전력 보강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무엇보다 이범호, 김주찬 등 노장들의 노쇠화가 서서히 진행되는 가운데 별다른 외부 영입 없이 내부 자원의 성장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우승 멤버들에만 의존한 탓에 내부 자원들이 성장할 기회가 없었다. 최원준 정도만이 멀티플레이어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기회를 잡았을 뿐, 포지션 대부분 우승 멤버들이 주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부진할 때 대신할 카드가 많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은 적은 경험에 아쉬운 모습만 보이다 2군으로 내려가기 일쑤였다.

결국 김기태 감독과 KIA는 왕조 구축과 세대교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며 우승 2년 여 만에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 다소 실험적인 선수 기용과 임창용 등 베테랑 선수와의 불화설까지 이어지며 김기태 감독을 벼랑 끝까지 몰았다. 베테랑 선수들과의 적절한 조화 속에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일련의 사태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김기태 감독은 반등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한 채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우승 감독의 씁쓸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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