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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대전=박대웅 기자] “어쩌다가 또 30분이 흘렀네요.”

경기 전 인터뷰 시간을 20분대로 줄여보겠다고 밝힌 SK 염경엽 감독이 계획보다 10분 더 초과된 시간을 확인하자 머쓱하게 웃었다.

하지만 염 감독은 “(감독 복귀 후) 4개월 동안 고민했던 생각들을 꺼내놓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며 취재진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가 지난 14일 한화와의 시범경기를 앞두고 이토록 오랜 시간 언급한 이야기는 바로 ‘강한 2번’ 타자에 대한 생각이었다.

지난해 SK는 한동민이라는 강한 2번 타자를 앞세워 초반부터 상대 투수들을 압박하며 리그 최고의 화력을 뿜어냈다. 2번으로 총 408타석에 들어선 한동민은 타율이 2할9푼7리로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시즌 총 41홈런 중 33홈런을 폭발시켰다. 96타점 장타력 6할4푼6리 등을 기록하며 강한 2번의 정석이 되는 모습을 선보였다.

2019시즌을 앞두고 키움이 박병호를 2번에 배치시키는 실험을 하는 등 여러 구단들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SK는 올시즌에도 한동민을 2번에 배치시키는 것을 기본 틀로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한 명이 더 추가된다. 바로 지난해 12월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고종욱이 그 주인공이다.

한동민(좌)과 고종욱(우). SK 와이번스 제공
고종욱은 한동민과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2015시즌 10홈런이 커리어 하이로 남아 있고, 통산 장타율도 4할4푼3리로 한동민과는 1할 이상의 갭이 있다. 대신 4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는 등 발이 빠르고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 전통적인 2번 타자 역할에 어울리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염경엽 감독은 “올시즌 2번 타순에는 한동민과 고종욱을 번갈아 기용하게 될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최근 2번 타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야구 통계전문가 톰 탱고의 이론을 살펴보면 2번 타자 자체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1, 2, 4번 타자에 3, 5번 타자까지 총 5명이 핵심이다. 이들을 어떻게 뭉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염 감독은 이어 “1, 2번 쪽에 치우치는 것은 한 타석이라도 더 세우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1, 2, 4번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클린업 히터, 즉 기둥이 되는 4번을 무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 2번이 나가고 4번이 불러들이는 것도 방법만 다를 뿐 점수를 내는 하나의 방법이다”고 두 방안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또한 염 감독은 “(한)동민이를 2번에 배치했을 때 홈런을 기대하는 쪽이라면 (고)종욱이는 볼넷을 얻거나 도루를 하는 등 전략적인 방법을 통해 1점을 노리는 쪽이다”면서 “어느 쪽의 확률이 더 높을지 선택하는 것이 결국 벤치의 몫인데 어쨌거나 선택의 폭은 넓어지게 된다”며 여러 득점 루트를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결국 한동민을 2번에 놓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지만 선수가 1년 내내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만큼 상황에 따라 고종욱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 염 감독의 전략이다.

염 감독은 “탱고의 이론에서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면 결국 타자의 컨디션을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강타자라고 하더라도 10타수 무안타를 기록 중인데 2번에 넣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또한 많은 안타를 기록하고도 저득점에 그치는 상황이 나온다면 타순 조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뒤 흐름을 매끄럽게 연결시킬 수 있는 배치를 만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진기. SK 와이번스 제공
한편 염경엽 감독은 강한 2번 타자와 관련된 대화에서 정진기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정진기는 시범경기 맹활약을 바탕으로 개막전 선발로 출전하는 등 기회를 얻었지만 타율 2할4푼4리 3홈런 17타점 33득점으로 다소 아쉽게 시즌을 마쳤다. 2017시즌에 이어 2년 연속 본인이 가진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염경엽 감독은 “사실 팀 내에서 2번에 가장 적합한 선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정)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2번에 강한 타자를 세운다는 것은 작전 대신 공격을 펼친다는 의미인데 병살타 등으로 흐름을 끊을 경우 그 여파가 3~4회까지도 갈 수 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의 마이크 트라웃처럼 홈런을 치면서 도루도 20개까지는 가능한 선수가 2번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 팀에서는 (정)진기가 적합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단 염 감독은 정진기가 훗날 팀의 강한 2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기 감각을 확실하게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염 감독은 “경기 감각 문제 때문에 진기를 한동안 2군에 두는 것도 고민을 하고 있다. 올해도 선발로 나서지 못할 경우 1년 간 똑같은 아쉬움을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을 바꿔보는 것도 필요하다”며 “스프링캠프에서 누구보다 많은 훈련을 했고 기량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연습과 시합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테스트를 해본 뒤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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