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작고한 배우 신성일 씨는 1960~70년대 최고의 은막스타였다. 총 출연 작품은 600편에 육박하며 최고 전성기였던 1967년에는 영화를 한해동안 47편이나 찍었다. ‘신성일’이라는 이름이 포스터에 걸리지 않으면 흥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에 47편이면 한달에 약 4편꼴. 영화 한편을 한달만에 찍는다 해도 신성일 씨는 겹치기 출연을 한 달에 네번씩 해야 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겹치기 출연이면 대사도 다 외우기 힘들고 연기력 집중도 힘들어 수준낮은 졸작(拙作)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겹치기 출연이 KBO(한국야구위원회)에 되살아나 야구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KBO는 지난달 26일 산하의 전문위원회 인사를 발표했다. 눈에 띄는 건 김용희 전 SK 감독(64)의 ‘3관왕’. 김 전 감독은 경기운영위원장에 임명된데 이어 규칙위원과 상벌위원에도 위촉됐다.

김시진 전 롯데감독(61)도 ‘3관왕’이다. 국가대표 전임감독을 뽑는 기술위원장을 맡은데 이어 경기운영위원에 유임됐다. 기존의 한국야구미래협의회(미래협) 위원까지 합치면 3개의 감투를 쓰게 됐다.

왜 갑자기 김용희, 김시진 전 감독이 야구행정의 달인으로 떠올랐을까?

두 사람은 경력이 엇비슷하다, 현역 시절 스타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지만 감독으로서의 업적은 뛰어나지 않다. 각각 감독을 사임한 후 구단 업무라든지 별다른 행정 업무를 맡지 않고 현장 생활만 계속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전문위원회에서 위원장의 책임을 맡은데 이어 다른 2개 위원회에 ‘겹치기 출연’을 하게 됐을까. 환갑을 넘긴 나이에 갑자기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 것일까. “그렇게 야구판에 인물이 없냐?”고 야구인들은 한숨을 내쉰다.

시즌중 KBO 리그 현장에서 활동하는 경기운영위원회를 빼고 전문위원회가 두 달에 한,두번 열리므로 3개 위원회에 나란히 소속돼도 업무를 수행하는데 별 지장은 없다. 그러나 명색이 전문위원회이므로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위원으로 선임돼야 하는데, 왜 이들 두명이 전문위원회의 위원직을 휩쓸며 ‘실세’가 된 것일까.

KBO 총재나 사무총장의 눈에 띄는 편애(偏愛)가 그 원인일 수밖에 없다. 김용희, 김시진 전 감독의 사람 됨됨이나 능력의 평가나 평판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그런데도 올들어 갑작스레 신임을 받게 됐다면 KBO 수뇌부의 ‘무한 신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야구계에는 이들만큼 능력을 갖춘 인사들을 찾아보면 많다. 그런데도 특정인을 편애한다면 야구계는 분열과 갈등이 어떤 형태로든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번 인사에 또다른 문제점이 있다. 전.현직 야구기자가 완전히 배제된 것. 프로야구가 연 800만 관중을 돌파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리그 운영의 체계화, 안정화를 이룬 건 1982년 창립이후 야구기자들의 헌신과 공로를 빼놓을수 없다.

또 기자들은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꿰뚫고 미래지향적인 발전책을 기사나 기명칼럼으로 제안하므로 최고의 전문가 그룹이다. 그래서 1990년 이후 전문위원회에 전.현직 야구기자가 한,두명씩은 꼭 위촉이 됐으나 이번에는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야구기자 출신인 장윤호 전 사무총장의 1년만의 중도하차에 따른 보복성 인사라면, KBO 수뇌부의 너무나 편협된 의식의 발로로 여겨진다.

전문위원회 말이 나왔으니 미래협의 운영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미래협 운영방침은 국가대표 운영 시스템과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및 부상방지 시스템 구축, 야구교육 및 저변확대, 상벌및 제재 등 한국 야구가 안고 있는 과제를 총괄한다.

시급한 현안이 많아 그 어떤 위원회보다도 막중한 조직인데, 위원장이 공석이다. 게다가 프로야구 발전책 마련이 급한 만큼 한번 회의를 할때마다 굵직한 성과물이 한두개씩 나오는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1월의 첫 모임에서 상견례에 그친데 이어, 2월 모임에서는 프로-아마 국가대표팀 운영의 향후 매뉴얼에 대한 협의만 나눴다고 한다. 거기에다 3월은 한달 쉬고 4월에 세 번째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한달에 두세번 모임을 가져도 시원찮을 판에 두달만에 모인다면, 위원들의 사명감과 임무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지난달 11일의 KBO 인사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무총장이 KBO의 자회사인 KBOP 대표를 겸임한데 이어, 시즌이 시작되면 눈코 뜰새없이 바쁠 클린베이스볼 센터장이 신설된 운영본부장도 맡았다.

KBOP 이사는 역시 신설된 KBO 경영본부장을 겸직하게 됐다. KBO내에서만 겸직자가 3명이나 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신성일 씨처럼 겹치기 출연을 능사로 한다면 업무의 전문성이나 효율성은 떨어지지 않을까.

시즌 오픈이 눈앞에 온 만큼 KBO의 새 바람을 기대해본다. 스포츠한국 객원기자/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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