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물을 마실 때는 그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라고 했다. 2년 전 이대호(롯데, 4년 150억원), 최형우(기아, 4년 100억원)가 ‘FA(자유계약선수) 100억원’을 첫 돌파한 이후 해마다 한, 두명씩 ‘100억원 갑부’가 프로야구에서 탄생하고 있다.

웬만한 1군 주전들은 연봉 3억원이 넘어 구단 대표들보다 연봉이 더 많다. 이 혜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최동원(1958~2011) 등 선배들의 희생 위에서 이뤄졌다. 그러므로 10억원이든 20억원이든, 그 이상이든 ‘FA 대박’을 터뜨릴 때는 항상 최동원 등 초창기 선수 노조 (선수협의회) 창립 멤버들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최동원은 1988년 9월 30일 20여명의 선수들과 규합해 선수 노조를 만들려다 구단의 미움을 사 그해 11월 삼성으로 트레이드됐고 급기야 1990년을 끝으로 은퇴하고 말았다. 선수 노조는 구단들의 강경한 저지로 출발이 무산됐다.

이 와중에 당시 OB 베어스 박용오 구단주는 “선수 노조가 생기면 팀을 해체하겠다”는 강경 발언을 해 선수들의 움직임은 완전히 위축되고 말았다.

하지만 선수 노조가 시대의 사명인 걸 깊이 새긴 선수들은 2000년 1월 송진우(현 한화 코치)를 회장으로 내세워 선수협의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부산 사직야구장 근처에 세워진 고 최동원 롯데 감독의 동상 앞에서 어머니 김정자 여사가 최 감독의 7주기 추모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구단들의 강경 대응은 10년 전보다 더 거세 송진우 마해영 박충식 등은 방출 선수로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으로 선수협의회는 합법적 단체로 인정을 받았고 오늘날의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프로야구 선수협)’로 발전했다.

선배들의 희생과 용기 속에 탄생한 프로야구 선수협의 회장직이 20개월째 공석이다. 2017년 4월 이호준(현 NC 코치)이 사임한 이후 후임을 뽑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회장직이 오랫동안 공석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너도나도 부자가 돼, 힘들고 귀찮고 구단들의 눈총을 받는 자리를 외면하는 탓이다. 어려웠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다.

지난 3일 회장 선출을 위한 선수협 총회를 열었으나 선수들의 의견차로 투표조차 못했다. 내년 1월 2일 워크숍을 열어 재차 논의키로 했으나 회장이 뽑힐 지는 미지수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이만큼 배가 부른 것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희생한 덕분인데, 이제와서 나몰라라 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 회장 이호준은 말한다. “나는 뭐, 하고 싶어 했나? 순서가 오니 한 것인데…”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군말없이 수락해야 한다. 이젠 회장이 됐다고 해서 트레이드 되거나 방출될 일은 없다.

얼마남지 않은 1월 2일 워크숍에서 누군가 ‘십자가’를 지길 기대해본다. 야구 칼럼니스트/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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