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16년이라는 세월은 비교적 인정받을만한 커리어를 쌓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현역 활동 기간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는 길이다.

물론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함께 땀방울을 흘리고 경쟁을 펼친 것은 아니지만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도 어느덧 16년 동안 선수들이 만드는 각본 없는 드라마에 생기를 불어넣는 감초 역할을 맡아왔다.

흥미롭게도 현 시점에서 16년의 시간을 더할 경우 정우영 캐스터의 한국식 나이는 정확히 60세가 된다. ‘최소’ 그 순간이 찾아올 때까지는 경쟁력을 유지해 계속해서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다.

정우영 캐스터와의 인터뷰 ⓛ편에서 그가 걸어온 발자취, 그가 남긴 멘트들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면 인터뷰 ②편에서는 그가 앞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미래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다.
정우영 캐스터의 “굿바이 굿바이 굿바이” 멘트 뒷이야기 [인터뷰ⓛ]

사진=박대웅 기자
▶‘줄이기’와 ‘만들지 않기’

지금껏 인상적인 멘트를 자주 만들어낸 정우영 캐스터지만 그는 권성욱 캐스터의 ‘좌측 담장’, 임용수 캐스터의 ‘간다’처럼 멘트의 주인공을 떠올릴 수 있을만한 짧고 굵은 본인만의 트레이드마크는 가급적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선배 캐스터들의 장점은 본받되 그들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고정된 단어 사용은 가급적 지양했다.

“과거에는 1년에 5개씩 새로운 표현을 준비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평창 올림픽 중계를 하는 동안 느낀 것이 많아요. ‘올림픽의 목소리’와도 같은 배기완 국장님과 한 달 정도 같이 숙소를 쓰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 수를 줄이자’, ‘만들지 말자’라는 두 조언이 크게 와 닿았어요.”

“수 년 전부터 억지로 무언가를 갖다 붙이기보다 자연스럽게 상황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왔는데 조언을 들은 뒤 더욱 확신이 생겼죠. 배 국장님의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중계를 들으면 정말 내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껴요. 한 마디가 가지는 힘 자체가 다르거든요. 저도 그런 측면에서 말 수를 줄이는 쪽으로 가려 했고, 올시즌 중계 때 그런 부분을 적용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선배 스포츠 캐스터들, 영혼의 파트너 해설위원

이처럼 현재는 본인이 생각한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정우영 캐스터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는 선배 스포츠 캐스터들로부터 줄곧 영감을 받아왔고, 그들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저도 2006년 가을이 되기 전까지는 한명재, 임용수, 권성욱 선배의 야구 중계를 듣던 한 명의 야구 팬이었어요. 언제나 세 분의 중계를 비교해보며 들었죠. 특히 2006년 겨울 한명재, 임용수 선배의 중계는 정말 DVD도 없던 시절이라 비디오를 떠서 테이프가 닳도록 봤던 기억이 있네요.”

그는 먼저 한명재 캐스터에 대해 한 때 같은 회사 선배로서 너무나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기존 야구 중계가 라디오-TV의 뚜렷한 구분 없이 전형화 된 스타일로 이뤄졌다면 한명재 캐스터의 낮게 읊조리는 억양과 톤은 한국 야구 중계의 스타일 자체를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한명재 캐스터의 이같은 인토네이션을 참고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권성욱 캐스터에 대해서는 인플레이 상황에서의 활기찬 모습, 생동감 넘치는 중계에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임용수 캐스터 특유의 푸근함은 ‘난 절대 저렇게 못해’라고 스스로를 항복하게 만들만큼 흉내조차 내기 힘든 특색이라 설명했다. 본인은 그저 겉멋이 잔뜩 든 허세 가득한 스타일일 뿐이라며 미소를 드러냈다. 그마저 일명 자본주의 미소임을 강조한다.

정우영 캐스터 SNS
정우영 캐스터는 SBS스포츠에서 함께 야구 중계를 담당하고 있는 해설위원들에 대해서도 차례로 입을 열었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2007년부터 워낙 오랫동안 함께 했기 때문에 제게는 정말 친근한 분이에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기존에 듣지 못했던 해설 스타일이다보니 비난이 과하다는 말도 처음에는 나왔는데 현재는 많이 사라졌죠. 사실 칭찬도 할 줄 아는 분이시고 또 비난이라기보다는 비판이고 관심이라 생각해요. 어쨌든 우리 시대의 톱이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안경현 해설위원은 눈이 정말 빨라요. 일반인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에요. 툭툭 던지는 한 마디가 조금 깊이 들여다봤을 때 ‘어, 정말로 그랬나?’라고 뒤늦게 느끼게 만들죠. 선수들의 미묘한 타격폼 변화, 연습 과정의 변화 등을 빠르게 캐치하시고 감도 좋으신 분이에요.”

“최원호 해설위원은 4년을 함께 하면서 제 개인적 바람이지만 투구에 관한 이상을 펼칠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여러 운동 역학박사 학위를 따셨는데 소위 투구 폼 뿐 아니라 전반적인 투구 운영의 청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이상이 현실과 만났을 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들었을 때에는 너무 좋은 내용이 많아서 꼭 그 이상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이종열 해설위원은 누구보다도 가장 친근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실물까지도 미남이시고, 날카로운 분석력까지도 갖췄죠. 칼럼 활동도 하고 있는 중인데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을 지니셨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공중파에서 함께 호흡한) 이승엽 해설위원은 기본적으로 전국민의 성대모사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뚜렷한 특징이 있다는 뜻이고, 해설위원으로서는 강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대중성의 클래스가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정우영 캐스터 SNS
▶선수들과는 적절한 거리, 동명이인 정우영들과의 에피소드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스포츠 중계는 단순한 정보 전달 뿐 아니라 선수들의 그라운드 밖 흥미로운 에피소드 소개 등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정우영 캐스터는 의외로 선수들과의 친분이 썩 두터운 편은 아니라고 털어놨다.

“제가 친근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이 아니라서 10년 가까이 오랜 기간 본 사이가 아니라면 친밀하다고 할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아요. 구단에 한두 명 정도 있는 정도죠. 선수와 친밀하다고 해서 중계에 크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친분 과시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뒷이야기는 팟캐스트 등 다른 경로를 통해 잘 전달될 수 있다고 봐요.”

“어느 한 선배가 LA 다저스 리포터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신이 전달해주는 정보들은 사석에서 나오는 정보 같은데 보통 친밀도가 아니고서는 알아내기 어려운 정보 같다. 혹시 선수들과 사석에서도 만나느냐’고. 그랬더니 그 리포터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냐는 듯 ‘나는 야구장 안에서만 이야기를 나눈다’고 대답했대요. 저 역시 그게 옳다고 생각해요. 처음 일할 때부터 공식적인 자리에서 질문을 해왔고, 물론 가끔 만나는 선수들도 있지만 사석에서 따로 업무적인 정보에 대해 묻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우영 캐스터에게도 각별한, 그리고 특별한 인연을 가진 스포츠 선수들이 있다. 바로 ‘동명이인 정우영들’이다.

축구계에는 이미 국가대표 정우영과 FC 바이에른 뮌헨의 정우영까지 잘 알려진 선수가 두 명이나 있다. 야구계에도 서울고를 졸업하고 2019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15순위로 LG에 지명된 정우영이 내년부터 프로 무대를 밟는다. 최근 스포츠 캐스터 정우영이 야구 선수 정우영과 함께 식사를 하는 사진이 야구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길어지는데 MBC스포츠플러스 시절 나름의 사명감이 있어서 한국도 누군가는 어떤 이슈가 나오면 찬반이 갈리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SNS를 통해 도발적 의견도 많이 냈었죠. 그런데 어느 시점에 제 이름을 검색해보니 연관 검색어에 축구선수인 경희대 정우영이 뜨더라고요. 제가 욕을 많이 듣던 시기인데 ‘내가 이렇게 논란을 만들면 이 친구에게도 짐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름이 같은 분들 때문에라도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정우영 캐스터는 스포츠계에 동명이인이 등장할 때마다 그들만큼은 관계를 유지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졌고, 우연한 계기를 통해 식사를 함께 하거나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연을 쌓았다.

“경희대 정우영은 현재 국가대표로 성장했고, 이제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서 밥도 먹고 고기, 냉면도 먹어요.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는 정우영도 돌아오면 밥을 먹기로 했죠. LG 투수 정우영의 경우 제가 오래 전 리틀 야구를 중계했을 때 결국 프로까지 지명 받지 못한 동명이인 선수가 한 명 더 있었거든요. 그게 참 안타까웠고, 언젠가 동명이인이 프로에 온다면 꼭 밥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바로 이번에 그 기회를 가지게 됐습니다. 어쨌든 동명이인 정우영들을 위해 앞으로 늘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정우영 캐스터 SNS
▶마이크를 내려놓을 그 날

1975년생인 정우영 캐스터는 지난 몇 년 동안 본인과 비슷한 또래의 야구 선수들이 현역 유니폼을 벗는 모습을 줄곧 지켜봐야 했다. 가슴 허전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그 기분을 물었는데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호준이 저와 동갑인데 은퇴를 했을 때 참 애틋했어요. 40대가 넘은 선수들은 1년마다 힘들어하는데 임창용 선수는 어떤 마음일지 짐작이 안 가네요. 비슷한 또래들이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한 점은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안타깝기도 해요. 하지만 커리어라는 것에 있어서는 오히려 지금 입단한 선수들에게 더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정우영 캐스터가 이같은 언급을 남긴 이유는 현재 프로에 막 진입한 선수들이 먼 훗날 유니폼을 벗기 시작할 때가 본인 역시 마이크를 내려놓을 시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LG 정우영을 만나서 고기를 사준 것 외에는 딱히 줄 것이 따로 없어서 번역한 책을 선물했어요. 거기에 써준 문구가 있는데 ‘최소 같이 은퇴하자’였거든요. 강백호 등 현재 대형 신인들이 KBO리그에 영원히 남을 기록을 세울 때와 비슷한 시점에 저도 은퇴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커리어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방송 환경까지 허락돼 정년을 채운다면 16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더라고요. 선수들도 16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면 성공적인 커리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 무렵이면 강백호가 400홈런 정도를 치고 있을 때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정우영 캐스터는 현재 루키들이 모두 은퇴할 먼 미래, 그 이후까지도 마이크를 계속해서 잡고 싶은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마이크를 내려놓은 이후 꿈꾸는 제2의 삶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제가 빈 스컬리(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중계 캐스터)처럼 되지는 않더라도 만약 업계에서 경쟁력이 남아 있다면 경력을 최대한 오래 이어가고 싶은 바람이에요. 물론 추한 모습으로 남아있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요. 만약 은퇴를 하게 되면 아내와 캐나다에서 당분간 살 것 같습니다. 아내가 캐나다 교포인데 저 하나만을 바라보며 18년째 한국에 혼자 나와 살고 있거든요. 한국에서의 일이 끝나면 저 역시 아내의 나라에서 아내가 원하는 시점까지는 사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해야 할 당연한 예의인 것 같아요.”

스포츠의 세계, 캐스터의 세계로 수다를 떠는 동안 약 1시간 45분의 인터뷰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정우영 캐스터에게 마지막으로 스포츠의 매력과 캐스터의 매력을 하나씩 물었다. 또한 이날 인터뷰 소감을 클로징 멘트처럼 직접 표현해줄 것을 요청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며 잠시 생각에 빠진 그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스포츠는 불확실성의 매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 않을까요? 스포츠 캐스터는 경기장에 직접 찾아오시는 팬들과 더불어 1번 시청자라고 생각해요. 가장 먼저, 가까이에서 경기를 보며 상황을 전달하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죠. 오늘 인터뷰는 정우영의 누드 사진을 찍는 느낌이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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