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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강남=박대웅 기자] MVP를 수상한 영광스러운 날, 두산 김재환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김재환은 19일 르메르디앙 서울 다빈치볼룸에서 열린 2018 KBO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김재환은 지난달 15일과 16일 이틀간 올시즌 KBO리그를 취재한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언론사와 각 지역 언론사의 취재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투표에서 총 487점을 획득해 린드블럼(367점), 박병호(262점)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111명의 투표인단 가운데 51명이 그에게 1위표를 던졌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김재환의 MVP 선정은 문제가 될 부분이 없다.

김재환은 타율 3할3푼4리 44홈런 133타점 104득점 OPS(출루율+장타율) 1.062의 성적을 기록하며 두산이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오르는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생애 첫 홈런왕의 영광을 차지했고 타점에서도 1위에 오르며 2관왕에 등극했다. 역대 홈런왕이 MVP를 차지한 사례가 18차례나 있었다는 점에서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번 투표와는 무관한 시점의 일이지만 김재환이 한국시리즈 3차전부터 부상으로 빠진 뒤 결국 두산이 SK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 것에서도 김재환의 팀 내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타 팀 선수들 역시 김재환의 실력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신인왕을 차지한 강백호는 수비 시프트를 뚫어내는 김재환의 강력한 타구에 감탄했고, 호잉 역시 김재환을 가장 유력한 MVP로 꼽은 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기량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기량이 아니었다. 김재환은 2011년 국제대회에서 금지 약물을 복용해 적발된 적이 있는 선수다. 그가 복용한 테스토스테론은 스테로이드 계열 호르몬으로 근육을 빠르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약물이다. 비록 7년이 지난 일이지만 한 때 부정한 방법을 통해 KBO리그의 명예를 훼손했던 선수에게 MVP를 안기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도 끊임없는 논쟁이 됐다.

김재환이 MVP를 수상했지만 투표인단 사이에서도 그를 향한 시선은 소위 ‘모 아니면 도’였다. 실제 111명 가운데 51명이 그에게 1위 표를 줬지만 5위 이내에 어떤 표도 행사하지 않은 투표인단도 35명이나 있었다. 성적으로 놓고 보면 5위 이내에 들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의아한 결과이기 때문에 결국 금지 약물 복용 선수의 경우 어떤 활약을 선보여도 표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고 봐야한다.

김재환 역시 이같은 여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상대에 오른 직후부터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그런 책임 같은 것을 더욱 무겁게 짊어지고 앞으로 남은 인생 조금 더 성실하고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는데 그 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성실하게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스스로가 먼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시상식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김재환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먼저 민감한 부분을 거론한 부분에 대해 “워낙 이야기가 많았고, 그런 팬들의 말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조금 더 그들과도 약속을 해야겠다는 의미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냈던 것 같다”고 언급한 뒤 “앞으로 어떻게 극복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앞으로 얼마나 내가 좋은 생활을 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더 좋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김재환은 “아무래도 나보다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면서 “가족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본다. 사실 지금도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3년 동안 야구는 잘 됐지만 바깥 생활도 완전히 절제하고 안 좋은 이야기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과거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본인이 보여준 모습이었기 때문에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김재환의 생각이다.

김재환은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하루도 안 빠지고 후회를 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뒤 “야구장에 오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 그런 말들을 감수하고, 그 분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재환은 이날 부상으로 받은 3300만원 상당의 기아자동차 K7을 주변에 필요한 이에게 좋은 의미에서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재환은 “MVP를 받을지의 여부는 몰랐지만 만약에라도 받는다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고마운 분들이 정말 많았다.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 나도 그동안 받은 것이 많기 때문에 베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며 남은 야구 인생도 경기장 안팎에서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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