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KS)가 끝난 지 1주일이 됐지만, 두산의 패배(2승 4패)는 두고 두고 아쉽다. ‘어우두(어차피 우승은 두산)’가 어쩌다가 ‘어우두(어쩌다 우승 두번)’로 바뀌었나.

올해 압도적인 정규시즌 1위 두산은 역대 최다승 타이(93승51패), 팀 타율 신기록(0.309)을 세웠다. 2위 SK와의 14.5 게임차는 1~2위 역대 최다 승차. 거기에다 시즌 실책수는 77개로 리그에서 가장 적었다.하지만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이로 인해 2015, 2016년 우승이 평가절하돼 ‘어쩌다 우승 두 번’한 운만 좋은 팀으로 전락해버렸다.

두산은 2015년 정규시즌 3위를 하고도 KS에 진출, 1위 삼성을 4승1패로 눌렀다. 당시 삼성은 해외 도박 파문으로 윤성환(다승 3위·17승)과 안지만(홀드 1위·37개), 임창용(세이브 1위·33개)이 뛸 수 없었다. 2016년 4전 전승을 거둔 상대인 NC는 그해 하반기 승부 조작, 음주운전 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러나, 올해는 막강 전력을 바탕으로 SK 팬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야구인과 언론, 팬들은 두산의 우승을 의심치 않았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두산이 KS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 보며 “어, 올해도 우승이 어렵겠는데...”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두산 덕아웃에 있던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6차전서 결승 홈런을 터뜨린 SK 한동민의 환호를 침울하게 바라보고 있다.

*먼저, 일본 프로야구 교육리그 참가가 득(得)이 아닌 독(毒)이 됐다. 10월 14일 정규시즌을 마친 두산은 KS 1차전(11월 4일)까지 21일간의 휴식기가 있었다. 지난 1989년 준플레이오프가 이후 생긴 ‘사다리 시스템’의 병폐로 너무 긴 정비 기간은 경기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래서 택한 게 10월 19일부터 1주일간의 일본 교육리그 참가. 얼핏 절묘한 선택으로 보였다. 우리의 1.5군격인 일본 프로야구 교육리그 참가팀은 더없이 좋은 스파링 상대였다. 두산 선수들이 짐을 꾸리고, 공항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고, 비행기로 이동하며 왕복 3,4일을 허비한 건 시간이 철철 남은 탓에 논외로 치자.

하지만 아무리 연습경기라 하더라도 외국팀과의 대전이므로 전력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온힘을 다한 투구 탓인가. ‘필승조의 핵심’인 김강률이 오른쪽 아킬레스건 파열로 조기 귀국, 전열에서 완전 빠져 버렸다. 다른 선수들도 승리를 위해 경기중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두산이 KS 1~6차전 수많은 찬스에서 번번이 병살타가 터지고 실책이 잦는 등 예상밖의 졸전을 보인 것은 일본 교육리그에서 불행이 싹튼 게 아닐까.

*여기에 더 위험한 게 있었다. 두산이 교육리그를 마치고 귀국하기 하루 전인 10월 25일, 일본 동남쪽에 위치한 사이판에 26호 태풍 ‘위투’가 강타해 현지는 아수라장이 됐고 한국 여행객 1400여명은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정부에서 군 수송기를 급파하는 비상조치를 택한 덕분에 여행객들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이 태풍이 다행히 필리핀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그렇지 만약 일본쪽으로 향했다면? 두산 선수들은 군 수송기를 타고 귀국할뻔 했다. 자칫하면 KS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KS 준비기간중 ‘해외 원정’을 택한 건 너무나 위험천만하다는 사실을 각 구단은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한국야구위원회에서도 두산의 해외 이동 승인을 심각하게 검토했어야 했다).

경기 감각 회복이 급선무라면, 나머지 9개 구단의 2군들이 좋은 상대다. 타구단에게 소정의 출전비 내지 승리수당을 주면 박진감 있는 경기가 펼쳐질 수 있다.

*무리한 야간 연습경기도 악수로 보인다. 두산은 10월 30일 오후 6시30분 KS에 대비해 청백전을 가졌다. 큰 경기를 앞둔 팀들이 늘 하던 청백전이어서 당연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그러나 기온이 문제였다. 청백전이 열린 시간의 잠실구장 기온은 영상 9도였으나 바람이 약간 불어 체감온도는 7도 이하로 떨어졌다.

정형외과 의사들은 7도 이하에서 피칭이나 타격 훈련을 하면 근육이나 뼈에 손상이 올 확률이 높다고 진단한다. 홈런왕(44개)인 4번 타자 김재환이 옆구리 부상으로 3차전부터 빠지고 주력 선수들이 KS에서 빈타를 보인 것은 야간 청백전의 후유증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난 10월 30일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대비한 청백전을 갖기전 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잠실구장 기온은 영상 9도로 다소 쌀쌀한 날씨였다.

*지난 8일 인천 문학구장의 4차전이 비로 취소되자 SK 선수들은 가볍게 몸을 풀고 귀가했다. 하지만 뜻밖에 1승 2패로 몰린 두산은 오후 4시부터 무려(?) 두시간이나 투타 훈련을 했다. 이 훈련이 무리였다는 것은 KS 결과가 잘 말해준다.

*5차전에서 비디오 판독 대상이 아닌 ‘보크’와 ‘누(壘)의 공과’에 대해 어필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본 두산 벤치는 우승을 그냥 날려 버린 셈이 됐다.

두산이 1-0으로 앞선 3회초 2사 3루서 박종훈은 보크로 보이는 반칙성 투구를 저질렀으나 두산 벤치에서는 지적이 없었다. 만약 보크였다면 3루 주자가 들어와 2-0으로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7회말 SK 김성현은 좌중간 안타를 날렸는데 두산 외야수들이 더듬거리는 사이 3루까지 내달았다. 중계화면상으로는 2루를 밟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두산 벤치가 이를 어필했다면 1-1 동점에 그쳐 승부는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두산 벤치는 어쩐 일인지 외면을 하고 말았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을까? 두산 벤치가 동요했기 때문이다. KS가 열리기 전 KT가 두산 이강철 수석코치의 감독 영입을 발표해 버린데다 두산 코치 2명이 이 수석코치와의 동행을 기정사실화 해버렸고, 일본인 고토 고지 코치도 일본행을 선언한 상태였다.

공필성 코치의 롯데행도 소문이 이미 났다. 이러니 두산 벤치 분위기가 KS 기간 내내 어수선했고, 보크와 ‘누의 공과’를 놓쳐 버리는 참으로 한심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KT에서 두산 수뇌부에 이강철 수석코치의 영입을 알렸을 때, “KS 종료후 발표”를 못박았다면 이런 자중지란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는 한용덕 수석코치의 한화행 소문이 이미 야구계에 파다하게 퍼졌으므로, KS 열리기전 발표가 당연했을 수 있지만 올해는 ‘비밀 유지’가 충분해 미리 발표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두산의 참사는 감독의 잘못 짠 훈련 일정과 이로 인한 파행적 경기 운영이 주된 원인이지만, 구단 사장과 단장의 책임 역시 간과할수 없어 보인다. 야구의 흐름을 제대로 꿰뚫어 보는 수뇌부라면 일본 교육리그 참가부터 말렸어야 했다.

취임후 1년이 좀 지나 업무 파악이 더딘 사장은 ‘야구 박사’인 단장에게 모든 걸 일임했고, 단장은 ‘월등한 시즌 1위의 기쁨’에 도취해 KS 대비에 소홀한 것은 아니었을까. 야구 칼럼니스트/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