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제공
[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국가대표 테이블 세터’, 그리고 ‘역대 최고의 2루수’. 정근우를 상징하는 두 가지 대표적 표현이다.

실제 정근우는 SK 시절부터 리드오프 및 2루수를 오랜 기간 책임지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어왔다.

개인 통산 1719안타 가운데 1132안타를 1번 타순에서 기록했으며, 최근 10년 동안에도 리드오프 자리에서 이용규 다음으로 많은 868안타를 때려낸 선수다.

또한 2루수로도 통산 3번째로 많은 1545경기에 출전했으며, 3차례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박정태(5회)에 이어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바로 정근우다.

하지만 올시즌 정근우는 본인을 상징하는 위치가 아닌 어디에서든 제 역할을 해내며 베테랑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엄밀히 말해 시즌 초반 경쟁에서 밀려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4월 중순까지도 2할 중반대 타율에 머물렀고, 잠시 도약하는 듯 했지만 5월 이후 또다시 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타격보다 더 큰 문제는 수비였다. 수많은 실책이 쏟아지면서 한용덕 감독마저 “실책이 너무 많다. 공격도 중요하지만 수비가 기본이다”, “계속 놔뒀으면 또 실책이 나왔을 것 같았다”, “나이를 먹은 만큼 예전의 정근우가 아니다”와 같은 쓴 소리를 내뱉을 만큼 전혀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다.

6월에는 후배 강경학이 공격에서까지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결국 한 달 이상 2군에 머무르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후반기에 1군으로 복귀한 정근우는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개인의 욕심보다 팀 승리를 먼저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외야는 물론 1루수로 투입되는 상황까지 있었으나 더 이상 2루수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강경학의 성장에 반가움을 드러내며 후배에게 따뜻한 말을 전했다.

지명타자로 나설 때에는 수비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만큼 더욱 집중력을 가지고 타석에 임하고 있다. 올시즌 지명타자 출전 시 그의 타율은 무려 3할7푼7리(69타수 26안타). OPS(출루율+장타율) 역시 1.027로 압도적인 모습이다.

타순 역시 여전히 1, 2번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올시즌 4번과 8번을 제외하면 모든 자리에 배치되며 팀 사정에 맞춰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8일 두산전에서도 정근우는 3번 지명타자라는 다소 낯선 역할을 수행해야 했지만 4타수 3안타 2타점 2득점 1볼넷을 기록하며 해결사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냈다. 후반기 시작부터 지난 7일까지 한화 3번 타순에 배치된 선수들의 도합 성적이 타율 2할2푼7리(75타수 17안타) 1홈런으로 구멍에 가까웠기 때문에 정근우의 활약은 더욱 의미가 있었다.

사실 정근우는 올시즌 뿐 아니라 한화 합류 이후부터 놀라운 적응력을 앞세워 때때로 본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역할도 훌륭히 책임져왔다. 김성근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시기에도 중견수로 출전한 사례가 실제로 있었으며, 최근 5년 간 1~9번 전타석을 소화해냈다.

특히 3번 타자로 514타석을 채워 오히려 2번(485타석)보다 자주 배치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3번 타자로 나섰을 때 성적 역시 타율 3할3푼7리(436타수 147안타) 6홈런 74타점으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같은 적응력이 바로 ‘국가대표 테이블 세터’, ‘역대 최고의 2루수’와 같은 수식어 뒤에 감춰진 정근우의 진정한 클래스다.

타율 3할 본능을 찾아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5월까지 2할5푼3리에 그쳐 있던 정근우의 타율은 어느덧 2할9푼5리까지 뛰어올랐다. 3년 전에도 스프링캠프 도중 동료의 송구에 턱을 맞아 하악골 골절 판정을 받았고 5월까지 2할1푼5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결국 그 해 시즌 최종 타율은 3할1푼6리였다.

정근우도 더 이상 세월의 흐름을 이겨낼 수 없다는 평가가 몇 년 전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특히 올해는 급격한 노쇠화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보란 듯 기대에 부응해나가고 있다. 정근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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